ADVERTISEMENT

[View & Review] 커지는 우크라 리스크…원유 수입 5위 한국 “문제는 에너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현실화되면서 북해산 브렌트유가 장중 한때 99.5달러까지 오르는 등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있다. 국제유가가 100달러에 육박한 것은 7년여 만이다. 사진은 23일 서울의 한 주유소에 게시된 유가정보 안내판. [뉴스1]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현실화되면서 북해산 브렌트유가 장중 한때 99.5달러까지 오르는 등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있다. 국제유가가 100달러에 육박한 것은 7년여 만이다. 사진은 23일 서울의 한 주유소에 게시된 유가정보 안내판. [뉴스1]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충돌 위기가 고조되자 정부 움직임도 바빠졌다. 당장 영향은 적지만 사태가 장기화하면 충격파를 피할 수 없다. 정부는 원유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 비축유를 방출하고, 유류세 인하 조치도 연장하기로 했다.

23일 오후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울산 석유비축기지를 방문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국제유가가 추가 상승하고 수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국내 석유 수급 악화 시 비축유 방출 등이 즉시 착수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국제유가 상승세가 3월에도 지속될 경우 (4월 말 끝날 예정이었던) 유류세 및 액화천연가스(LNG) 할당관세 인하 조치의 연장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국제유가추이(2.22).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국제유가추이(2.22).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관련기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군에 우크라이나 동부 진입을 명령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22일(현지시간)엔 싱가포르 현물시장에서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4.28달러 상승한 96.01달러를 기록했다. 이날 영국 브렌트유 값은 장중 한때 99달러대로 올라서는 등 100달러 돌파 초읽기에 들어갔다. 2014년 9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국내 석유제품 가격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 집계에 따르면 23일 서울지역 휘발윳값은 L당 1807.99원으로 한 달 사이 100원 가까이 올랐다(1월 23일 1716.05원). 기재부가 유류세 20% 인하 조치 연장을 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량.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한국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량.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의 무력시위를 “우크라이나 침공(invasion)”으로 규정하며 경제 제재 시작을 선언했다. 러시아 주요 국책은행을 제재 대상에 올리고 금융 거래를 전면 차단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때를 뛰어넘는 고강도 경제 제재를 이어가겠다고 예고했다.

미국은 물론 유럽연합(EU), 일본도 러시아를 대상으로 한 경제 제재를 공식화했다. 한국 정부도 경제 제재를 검토 중이다. 미국은 한국을 포함한 우방국에 금융 제재와 함께 수출 통제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수출 통제 대상은 안보와 밀접한 반도체, 전자·정보통신, 센서, 레이저, 항법, 항공·우주 분야 핵심 제품이다. 다만 소비재는 제외한다. 반도체가 들어가긴 했지만 소비재인 자동차·휴대폰 등은 수출 제재 대상이 아니다.

한국의 러시아 우크라이나 교역 비중.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한국의 러시아 우크라이나 교역 비중.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억원 기재부 제1차관은 이날 오전 열린 범부처 우크라이나 사태 비상대응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대(對) 러시아·우크라이나 교역 비중과 금융 부문 익스포저(특정 지역 또는 기관과 연계된 금융 거래 금액)가 크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할 때, 한국 경제에 미치는 단기적 영향은 제한적”이라면서도 “긴장이 더욱 심화되거나 장기화될 경우 원자재 등 공급망 차질, 금융시장 불확실성 확대, 실물 경제 회복세 제약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한국 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국무역협회 무역통계를 보면 지난해 한국의 대 러시아 수출액은 99억8000만 달러(약 11조9000억원)다. 수출 대상국 가운데 12위로 전체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5%에 불과하다. 수입 규모도 크지 않다. 지난해 대 러시아 수입액은 173억5700만 달러로, 비중은 2.8%에 그쳤다. 우크라이나가 한국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미미하다. 64위 수출국으로 수출 비중은 0.09%, 수입은 0.05%에 그칠 정도다. 러시아와 직접 연계된 한국 금융 거래(익스포저)도 전체 0.4% 수준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수출 통제 요구 품목 중 대 러시아 수출액이 큰 건 반도체다. 연 7500만 달러 수준으로 한국 전체 반도체 수출 금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문제는 에너지다.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9억6015만 배럴 원유를 사들인, 세계 5위의 원유 수입국이다. 사실상 에너지 수요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으로선 이번 사태로 인한 악영향을 피하기 어렵다. 미국·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3대 산유국으로 꼽히는 러시아 대상 경제 제재가 본격화하면 에너지 수급에 비상이 걸릴 수 있다. 곽병열 리딩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부 자원의 공급난에 따른 가격 급등은 피하기 힘들고, 관련된 공급망 병목 현상은 장기화될 수 있어서 글로벌 금융시장으로의 영향은 보다 중기화될 것”으로 진단했다.

한국이 지난해 수입한 원유 가운데 러시아산은 5375만 배럴로, 비중은 5.6%다. 중동·북미·호주 등 다른 수입선으로 충분히 돌릴 수 있는 양이다. 하지만 러시아산 가스·원유 수급난에 따른 연쇄 효과까진 막을 수 없다. 다른 지역 가스·원유로 수요가 몰리고, 사태 확산에 따른 불확실성까지 겹치며 국제유가가 더 치솟을 전망이라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의존도가 비교적 큰 사료용 밀·옥수수 등 곡물 수급도 비상이다.

홍 부총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악화 등으로 원자재 가격이 추가 상승할 경우 기업의 원가 부담 완화를 위해 업계 수요를 반영해 원자재 할당 관세 인하폭·대상 확대를 적극 검토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 차관도 원자재·곡물 수급과 관련해 “대체 여력이 제한적인 품목의 경우 국내 생산, 수입선 다변화를 조속히 추진하겠다”며 “곡물 수급 애로와 업계 부담 경감을 위해 업계 차원의 사료 원료 배합 비중 조정, 안전 재고 일수 확대(30→60일) 추진과 함께 정책자금 금리 인하 등 조치도 검토해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