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도룡뇽 산다는 부암동 계곡…능금마을서 만난 할머니

중앙일보

입력 2022.02.23 11:00

[더,오래] 김현정의 부암동 라이프(13)

드라마 ‘커피프린스’에 이선균 집으로 나오기도 했던 산모퉁이 카페를 끼고 쭉 걸어가다 보면 여시제가 나오고 백사실 계곡으로 가는 입구가 나온다. 도롱뇽, 버들치가 산다는 1급수인 계곡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능금 마을이 있다. 부암동이 서울 도심에 시골이라는 별칭이 있지만 이 마을이야 말로 강원도 어느 시골 마을에 들어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산속에 텃밭이 여기저기 있고, 오래된 집들이 띄엄띄엄 보인다. 우리 가족은 이 동네에 오면 만나는 할머니가 있다. 아이와 산책길에 마을에 들어섰다 만난 할머니를 몇 년째 만나고 있는 것이다. 여름철에 가면 직접 딴 오이를 몇 개 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이와 산책길에 마을에 들어섰다 만난 할머니를 몇 년째 만나고 있다. 여름철에 가면 직접 딴 오이를 몇 개 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사진 김현정]

아이와 산책길에 마을에 들어섰다 만난 할머니를 몇 년째 만나고 있다. 여름철에 가면 직접 딴 오이를 몇 개 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사진 김현정]

조선시대 인조의 셋째 아들인 인평대군이 중국에서 능금 씨를 가져다가 심었다 해서 능금 마을이라고 이름이 붙였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는 이 마을은 임금에게 바치는 귀한 능금이 생산되었다고 한다. 1970년대까지는 살구, 자두 등도 키우는 과수원 마을이었다고 한다.

연희동에 살던 할머니는 26살 이 마을에 와서 76살인 지금까지 40년 동안 살았다고.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던 마을은 ‘박정희 대통령을 죽이려 왔다’ 던 ‘김신조’가 내려오고 나서 한 동안 시끄러웠다고 한다. 어려운 시절, 방 한 칸 만들어 집이라고 살면서 꽤 많은 가구가 있었는데, 김신조 사건 이후 서류상으로 땅이 아닌 사람은 다 내쫓겼다고 한다. 근처에 군부대가 주둔하고 민감한 지역이 되면서 군사보호구역 및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이기 시작했다. 주민의 재산권이 제한되고 지금과 같은 마을이 된 것이다.

할머니는 “지금은 25가구 정도만 남았는데 이제 다들 나이가 들어 한 사람씩 가”라고 말한다. 얼마 전에도 능금마을에서 태어나 여기서 계속 살았던 80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자식들은 다 강남에 살아 빈집으로 남겨뒀다 한다. 그렇게 빈집이 몇 집이 있는데 자식들이 팔지는 않고 가끔 텃밭만 몇 가지 심어 두고 왔다 갔다 한다고.

5살인 우리 딸은 할머니만 사는데 왜 이렇게 차가 많은지 물어본다. 그러고 보니 자동차가 5대 정도 보인다. “할머니 차는 없고, 저 위에 사는 집 차도 있고, 저 아랫집 차도 있어. 저 차는 요 앞에 산 위에 있는 집 차고” 설명해주신다. 할머니들은 텃밭에 농사를 짓고 오가는 등산객에게 팔기도 하고, 아랫집 할머니는 도로가에 두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팔기도 한다고 했다. 부암동 주민센터 옆에 매일 자리 잡고 철마다 나오는 야채나 나물을 파는 할머니 세 분이 능금마을에서 온다는 얘기를 들은 참이었다.

70-80대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나라 근현대사가 다 묻어있는 것 같다. 한 사람 인생에 대하드라마 한 편이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사진 김현정]

70-80대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나라 근현대사가 다 묻어있는 것 같다. 한 사람 인생에 대하드라마 한 편이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사진 김현정]

할머니 집 앞에는 평상이 하나 놓여있고 옆에는 계곡이 흘렀다. 우리는 평상에 나란히 앉아 오이를 서걱 서석 잘라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자기가 자라고 싶은 데로 꼬부라진 오이는 수분이 제법 꽉 차서 맛이 좋았다. 70~80대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나라 근현대사가 다 묻어있는 것 같다. 한 사람 인생에 대하드라마 한 편이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내가 이렇게 생겨먹어도 우리 집안의 ‘유’씨에 유관순 열사도 있고, 나의 큰 아버지가 초대 국회의원을 하며 헌법을 만들어 놓으셨지”로 시작해 지금으로는 생각지도 못할 일들을 묵묵하게 뱉어내신다. “우리가 살 때는 마마나 홍역이나 유행병도 길게 가봐야 6개월이었는데 코로나는 2년을 가니, 원 참…” 하며 요즘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도 한 마디가 뼈가 있다.

한참을 앉아 수다를 떨다가 일어서는 김에 “할머니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었고 오이 좀 사 갈게요” 했더니 어디서 잔뜩 들고 오신다. “식구가 3명이라 다 못 먹어요, 조금만 주세요”해도 “다 들고 가”하며 바구니에 있던 오이를 다 털어내신다. 여기가 서울인가 착각이 든다. 어디 인심 좋은 촌구석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인사를 여러 번 하고 올라온다. 능금마을과 끝자락에 영화 ‘은교’를 촬영한 곳이 있다. 능금마을의 풍경과 좀 동떨어져 보이는 이 집은 제법 마당이 넓고 집도 번듯하다. 지난번 할머니가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를 크게 하는 분이 사는 곳이라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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