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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엔 시위대, 겨울엔 빙판길…부암동 더는 아름답지 않았다 [더오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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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현정의 부암동 라이프(9)

임신을 하고 보니, 부암동 산책길이 더 이상 아름답게만 보이지 않았다. 임신 초기, 윤동주 문학관 근처를 산책하다 출혈이 있었던 경험으로 휴직을 하고 2주를 누워있었다. 그 후로도 아이를 잃을까 걱정스러워 윤동주 문학관 근처로 가지 못했다. 몸이 무거워진 뒤에는 산을 오르고 내리는 게 힘들어서 산책을 할 수가 없었다. 평지를 찾아서 걸어 다녔던 것 같다. 임신한 몸으로 출퇴근 길에 언덕길을 오르내리는 것도,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만만하지 않았다.

눈이 오면 부암동 언덕길은 빙판으로 변해 낙상 사고 위험이 높아졌다. [사진 김현정]

눈이 오면 부암동 언덕길은 빙판으로 변해 낙상 사고 위험이 높아졌다. [사진 김현정]

나라도 어수선했다. 대통령 탄핵 시위와 탄핵 반대 시위가 끊이질 않던 2016년, 그때이다. 임신 초기였을 때 한 번은 시위 신고를 하지 않은 탄핵을 반대했던 시위대가 청와대 앞 도로를 막는 바람에 효자동으로 버스가 들어가지 못했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나는 버스에서 내려야만 했다. 버스도 택시도 들어오지 않았다. 난감했다. 게다가 지난달 산책길에 출혈이 있어 아이를 잃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던 나는 걸어갈 수도 없고 차를 탈 수도 없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했다. 길에는 시위대와 경찰들이 어수선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가게 들어가기도 마땅하지 않았다. 얼른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청와대를 지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천천히 걸어갔다. 시위대와 경찰, 여러 사람과 부딪혀 혹시 문제라도 생길까 봐 배를 감싸 안으며 조심조심 걸어왔다. 청운동에 다다랐을 때, 버스가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도저히 탈 수가 없었다. 다들 버스를 기다리던 상황이라 승객을 태우지도 못하고 버스가 지나가기도 했고, 태우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밀어 넣으며 몇 명 타지 못했다. 임신한 몸으로 사람들과 몸을 밀치며 타기에는 위험해 보였다. 결국 청운중학교를 지나 산을 하나 넘어 걸어서 집에 올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소나기는 왜 내리는 건지. 어디 들어가 비를 피할 수도 없는 청운중학교가 있는 그 언덕길을 지나고 있는데 말이다. 좀 서러웠다. 그 이후로도 시위대로 자주 차에 갇혀 있는 적도 있고, 걸어간 적도 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임신 중반기에 접어든 한겨울, 눈이 많이 내렸을 때이다. 밤사이 내린 눈에 기온이 낮아 언덕길은 빙판길이 되었다. 남편이 먼저 출근을 하고 나도 출근을 하려고 길을 나섰다. 눈이 많이 내려서인지 우리 집 골목길까지 제설 작업이 이뤄지지 못했고 언덕길이 눈이 쌓인 채 그대로 얼어있었다. 살금살금 언덕길을 내려가는데 얼음 위에 쌓인 눈이 바람에 날려 얼굴을 때렸다. 생각보다도 바닥이 더 미끄러워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 다리와 양팔을 옆으로 벌리고는 그 자세 그대로 내려가지도 올라가지도 못하고 한참을 서 있었다. 때마침 눈을 치우려고 나온 이웃 어르신이 손을 잡아줘서 언덕길을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다. 최근에 안 사실이지만, 빙판길에 넘어져 팔, 다리가 부러진 이웃들이 여러 있었다.

처한 상황이 달라지자,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던 부암동이라는 곳이 한순간에 불편한 동네가 됐다. 임신 기간은 시작에 불과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생존의 문제와 맞닿을 정도로 이 공간이 어려웠다. 영유아 시기를 보내는 것은 인고의 시간이었다. 놀이터도 하나 없는 부암동에서 차도 없이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홀로 육아를 하는 것은 도를 닦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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