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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어떻게 안전 합의하나" 옹벽아파트 입주민 첫 집단행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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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판교A아파트 입주민 203명이 21일 오후 성남시청을 방문해 은수미 시장과 면담을 요구했다. 입주민 제공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판교A아파트 입주민 203명이 21일 오후 성남시청을 방문해 은수미 시장과 면담을 요구했다. 입주민 제공

국내 아파트 단지 중 유례가 없는 50m 높이의 수직 옹벽 앞에 들어선 경기 성남시 백현동 판교A아파트(전용면적 84~129㎡, 1223가구) 입주민들이 성남시에 안전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 아파트는 옹벽 안정성 검증 문제로 입주 8개월이 지나도록 준공(사용허가)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일부 주민들이 개별적으로 성남시에 민원을 제기한 적은 있지만, 집단행동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아파트 입주민 안모씨 등은 21일 오후 203명의 입주민 서명이 담긴 면담 신청서를 은수미 성남시장에게 제출했다. 이들은 "성남시청 주택과와 시장 비서실에 여러 차례 민원을 제기했지만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해 입주민들의 연대 서명을 받아 정식 면담을 요청하게 됐다"며 "옹벽의 안전 문제에 대한 시의 입장을 듣고 싶다"고 밝혔다.

 성남시 백현동 판교A아파트 공사 당시 모습. 땅을 30m가량 깊게 파고 산을 수직으로 깎아 50m 높이의 옹벽을 만들었다. 사진은 2019년 아파트 공사 현장 항공뷰. 네이버지도

성남시 백현동 판교A아파트 공사 당시 모습. 땅을 30m가량 깊게 파고 산을 수직으로 깎아 50m 높이의 옹벽을 만들었다. 사진은 2019년 아파트 공사 현장 항공뷰. 네이버지도

옛 한국식품연구원 부지에 들어선 이 아파트는 산을 거의 수직으로 깎아 조성했고, 일부 동들은 높이 50m, 길이 300m에 달하는 옹벽과 불과 10m 안팎의 거리에 있다. 대장동과 비슷한 시기인 2015년 2월부터 사업이 진행됐는데, 이 과정에서 성남시가 4단계 종 상향(자연녹지→준주거)과 용도변경(민간임대→분양) 등을 해줘 민간사업자에 대한 특혜 의혹이 일고 있다.

지난 6월 임시사용승인만 난 상태에서 입주를 시작한 이 단지 주민들은 현재 옹벽과 붙은 커뮤니티 시설 등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옹벽의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7년 건축 심의 과정에서도 일부 심의위원들이 안전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지만, 재심사 끝에 통과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지역이 편마암 지대로 점토가 충전된 단층들이 많이 발달해 붕괴위험이 있다고 주장한다.

성남시는 "시행사인 아시아디벨로퍼 측에 전문기관 2곳의 옹벽 안정성 연구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는데, 전문기관 2곳 중 한국건축학회 보고서만 제출했고 한국지반공학회 보고서는 제출하지 않아 사용승인 신청을 반려한 것"이라고 밝혔다.

판교A아파트 주민들은 준공 승인이 나지 않아 옹벽과 붙은 커뮤니티 시설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김원 기자

판교A아파트 주민들은 준공 승인이 나지 않아 옹벽과 붙은 커뮤니티 시설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김원 기자

시행사는 미준공으로 입주민들에게 잔금 10%를 아직 받지 못했다. 지난해 6월 성남시를 상대로 준공 승인을 해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성남시)의 이 사건 처분은 원고(시행사)가 옹벽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보완 조치를 하지 않았음을 이유로 한 것"이라며 "입주자 전체의 생명과 재산 보호, 쾌적한 주거생활 확보의 공익이 사용검사 신청 반려로 인해 원고가 입게 되는 손해보다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입주민들은 면담 요청서에 "소송이 진행되고 있지만 정작 그 당사자인 입주민들은 중요한 정보로부터 소외됐다"며 "우리가 '주인'인데 '객'이 다투는 걸 옆에서 지켜보는 것 같아 억장이 무너진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최근 성남시에서 '시행사와 입주민만 합의하면 소송을 취하하고 준공을 내주겠다'고 해 시행사 실무진이 한밤중에 입주민들을 불러 모았다"며 "이 자리에서 시행사는 미준공에 대한 사과 한마디 없이 졸속으로 합의를 보려고 시도했다"고 주장했다.

시행사 측은 입주민들에게 '(성남시에) 더는 준공 관련 민원을 넣지 않는다'는 조건에 대한 합의를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입주민 안모씨는 "시행사 전무가 입주민 100여명 앞에서 '2월 안에 합의를 보고, 3월 대통령 선거 전에는 준공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했다"며 "도대체 대선과 준공이 무슨 관계가 있으며 주민 안전이 달린 문제를 '합의'로 넘어갈 수 있다는 건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파트 분양당시 모델하우스에 있던 아파트 모형도. 모형도상으로는 옹벽이 높지 않게 보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아파트 11층에서도 옹벽이 바로 앞에 보일 정도로 높다. 포스코건설

아파트 분양당시 모델하우스에 있던 아파트 모형도. 모형도상으로는 옹벽이 높지 않게 보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아파트 11층에서도 옹벽이 바로 앞에 보일 정도로 높다. 포스코건설

백현동 옹벽 아파트 문제는 이번 대선 레이스의 주요 쟁점 중 하나다. 지난 11일 대선후보 TV 토론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이 아파트 개발 특혜 의혹을 놓고 설전을 벌였다. 당시 윤 후보는 "백현동 식품연구원 부지에 50m 옹벽이 올라간 것을 묻겠다"며 "이 아파트 개발로 업자는 3000억원가량의 특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 후보는 "관련 규정에 따라 처리했고 불법이나 잘못된 것 없는 것으로 결론 났다"고 응수했다.

입주민들은 "건물에 대한 하자보수는 시행사와 입주민의 몫이지만, 안전과 생명에 대한 책임은 국가의 몫이다. 이에 대한 성남 시장의 설명이 듣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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