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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행안부 ‘지자체장 간선제’ 특별법 뜬금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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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1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법률안 제안 설명을 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의 간선제 도입을 추진해 주민 직선제 정신에 어긋난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김상선 기자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1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법률안 제안 설명을 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의 간선제 도입을 추진해 주민 직선제 정신에 어긋난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김상선 기자

6월 지방선거 앞두고 혼란 키울 무리수

주민이 직접 뽑는 자치 정신 훼손 우려

시·도지사와 시·군·구청장 등 지방자치단체장을 현행 직선제 외에 지방의회가 간접 선출하는 방안 등을 주민이 선택하도록 하자는 특별법 초안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주민의 선택권을 높여주자는 취지라지만, 아직 지방자치가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상태인 데다 6월 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혼란을 키울 수 있어 졸속 추진을 경계한다.

논란은 전해철 행안부 장관이 지난 1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된 특별법 초안 내용을 공개하면서 촉발됐다. 이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자체의 기관 구성 형태를 다양화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는데, 지자체장 선출 방식을 현행 주민 직선제 외에 세 가지 방안을 추가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첫째 안은 지방의원이 아닌 행정·경영 전문가 등이 지원하면 이들 중에서 지방의회가 지자체장을 선출하는 방식이다. 미국 일부 주에서 시행 중인 모델이다. 둘째는 지방의회가 지방의원 중에서 지자체장을 뽑는 영국식 내각제 모델이다. 셋째는 지자체장은 주민이 직접 뽑되 지자체장의 인사·감사·조직·예산 편성 권한을 지방의회로 분산하는 일본식 모델이다.

특별법 추진이 느닷없다는 비판에 대해 행안부는  2020년 12월 국회를 통과해 지난 1월 13일 시행된 개정 지방자치법에 따른 후속 조치 차원이라고 해명했다. 개정 지방자치법 4조에는 ‘법률로 정하는 바에 따라 지자체장 선임 방법을 포함한 지자체의 기관 구성 형태를 달리할 수 있다’는 내용과 ‘지방의회와 집행 기관의 구성을 달리하려는 경우에는 주민 투표를 거쳐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다.

행안부는 특별법을 일사천리로 추진하려는 태세다. 지난 9~10일 전국 광역·기초 지자체를 대상으로 온라인 설명회를 진행했고, 24일까지 각 지자체에 의견을 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행안부 관계자는 “특별법이 통과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로 구성되는 민선 8기 지자체에는 적용되지 않고 2026년 민선 9기부터 적용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행안부의 ‘과속 입법’에 대해 전문가들도 우려하고 있다. 간선제를 허용하면 주민 직선제를 핵심으로 1991년 부활한 지방자치제의 기본 정신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방 토호들이 지방의회를 장악한 상황에서 지방의회가 단체장을 선출하면 권한이 더 비대해져 견제와 부정부패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지방자치제도의 근간을 바꾸는 특별법을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불과 3개월여 남은 민감한 시점에 추진하는 의도가 수상하다. 민주당 당적을 보유한 전해철 행안부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려온 정치인이다. 6월 지방선거 이후에 더 면밀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부작용을 두루 점검한 뒤에 다시 거론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