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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점’ 멀었다는데…정부, 방역 고삐 풀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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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6호 01면

거리두기 완화를 두고 방역 전문가의 경고와 소상공인의 아우성 사이에서 고심하던 정부가 결국 어정쩡한 타협책을 내놨다. 사적 모임은 지금처럼 6명까지로 제한하되, 다중이용시설의 영업시간은 기존 오후 9시에서 오후 10시까지로 1시간 늘리기로 한 것이다. “민생 경제의 어려움을 고려한 최소한의 조정”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지만 대폭 완화를 기대한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불만이 터져 나온다. 반면 방역 전문가들은 “확진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11만 명에 육박한 18일,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을 ‘사적모임 인원 6인, 영업 제한시간 오후 10시’로 조정한다고 발표했다. 새로운 거리두기 방침은 19일부터 다음 달 13일까지 3주간 적용된다. 접촉자 추적 관리를 위한 QR 코드, 안심콜, 수기 명부 등은 중단하고 접종 확인용 QR 코드만 유지한다. 청소년 방역패스는 한 달 연기해 4월부터 시행한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9주째 이어진 사회적 거리두기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극심한 고통이 누적되고 있는 현실도 외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루 11만 명에 육박하는 코로나19 신규확진자가 발생한 18일 서울 송파구청 상황실 모니터에 전국 지역별 확진자 수가 표시돼 있다. 정부는 이날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을 기존 ‘6인, 오후 9시’에서 19일부터 3주 동안 ‘6인, 오후 10시’로 일부 완화한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하루 11만 명에 육박하는 코로나19 신규확진자가 발생한 18일 서울 송파구청 상황실 모니터에 전국 지역별 확진자 수가 표시돼 있다. 정부는 이날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을 기존 ‘6인, 오후 9시’에서 19일부터 3주 동안 ‘6인, 오후 10시’로 일부 완화한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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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열린 일상회복지원위원회에서 방역 전문가들은 유행 정점을 확인할 때까지는 거리두기를 유지하거나 최소한도의 조정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원회에 참석한 한 방역 전문가는 “대부분 방역분과 위원들은 ‘아직 정점도 확인 못 한 상황에서 더 강화했으면 했지, 완화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달 들어 일주일마다 신규 감염자 수가 두 배로 뛰는 ‘더블링’이 발생하고 있다. 위원회에서 활동해온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16일 위원직을 사임하며 반발하기도 했다. 사퇴 전날 이 교수는 “이미 현장은 지옥”이라며 “최소한 정점은 찍고 나서 거리두기 완화를 논의해 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영업시간 완화는 오미크론 대유행에 기름을 붓는 조치가 될 수 있다. 영업시간 제한이 사적모임 제한보다 방역에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도 있다. 질병관리청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지난해 12월 31일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다중이용시설 영업시간을 오후 9시에서 10시로 한 시간만 연장해도 확진자 규모가 97%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사적모임 인원 제한을 4명에서 8명으로 늘려도 영업시간을 오후 9시로 유지하면 유행 규모는 59%만 늘어났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시간을 늦추는 것보다 여러 옵션 중에서 차라리 6인에서 8인 늘리는 것이 나았다고 본다”면서 “역대 코로나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데 거리두기를 1시간이지만 푼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정부는 이 연구 결과를 토대로 방역 정책을 설정했다. 이번에 정부가 전문가와 과학적 근거를 무시하면서까지 영업시간을 완화한 건 정치적 고려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좋게 말하면 경제 활성화를 위한 것이겠지만 실제로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영업자들의 압박 때문에 거리두기를 완화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도 “오미크론 변이의 중증화율이 아무리 낮다고 하더라도 미접종자, 고위험군에는 매우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서 “거리두기 조정안이 자칫 경계 완화 메시지로 읽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확진자 매주 두 배로 급증 … 전문가 “의료 시스템이 감당 어려울 수도”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에 따르면 이날 0시 기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10만9831명으로 집계됐다. 누적 175만5806명이다. 전날보다 1만6696명 늘어나며 일주일 전인 지난 11일(5만3920명)의 2배, 2주 전인 지난 4일(2만7437명)보다 4배로 늘었다. 방역당국은 이달 말 하루 확진자 수가 13만~17만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국가수리과학연구소 모델링 결과에 따르면 정점 시기는 늦춰지고, 정점은 더 높아져 내달 중순께 최대 27만명에 달할 전망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방역당국은 민생 경제의 어려움을 고려해 생업 현장에서 가장 요구가 컸던 영업시간 제한을 오후 9시에서 10시로 1시간 연장하는 조정만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유행시설 등 1그룹과 식당·카페 등 2그룹의 운영시간은 당초 오후 9시에서 오후 10시로 완화한다. PC방 등 3그룹과 기타 그룹의 영업시간은 기존처럼 오후 10시다. 사적모임은 기존대로 최대 6인이 유지된다. 식당·카페의 경우에만 미접종자 1인 단독이용이 가능하다. 이기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제1통제관은 “다음달 13일 이전이라도 감소세로 전환되면 더 완화할 수도 있고, 위기 발생 상황이 지속한다면 강화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달 1일부터 적용할 계획이었던 청소년 방역패스는 현장 준비 여건 등을 고려해 한 달 연기한 4월 1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당초 일정대로 시행하기에는 지역별로 다른 상황 때문에 혼선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달 연기했다”며 “이 기간 중 법원의 항고심 등은 결론이 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법원은 지난달 14일 서울시, 지난 17일 경기도에서의 청소년 방역패스 효력 집행정지를 결정했다.

당초 정부는 영업시간 제한 완화와 함께 사적 모임 인원도 6명에서 8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했다. 감염 억제보다 위중증 관리에 집중하는 오미크론 체계로 전환한 상황인 데다 자영업자와 여당의 완화 요구도 거셌기 때문이다. 김부겸 총리도 “용기 있는 결단”을 언급하며 대폭 완화를 예고했다. 하지만 결정을 앞두고 신규 확진자 수가 폭증하며 단숨에 10만명 선을 넘어가자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자영업자의 반발을 고려해 대폭 완화를 요구해 온 여당에선 실망스럽다는 반응이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페이스북 글에서 “3차 접종자에 한해 자정(24시)까지 영업을 허용해야 한다”면서 “신속히 중대본에서 재논의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일단 완화로 가닥을 잡은 상황에서 향후 관건은 환자 증가세, 특히 위중증 환자가 얼마나 늘어나느냐다. 이기일 중대본 제1통제관은 “3월 2일쯤 중환자가 1000명 이상 (나올 수 있고), 2500명까지 예측하고 있다”며 “2000명 정도는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으며, 2500명까지도 (감당)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거리두기 완화 등의 영향으로 정점이 더 빨라지고 가파르게 올라갈 가능성이다. 김우주 교수는 “중증도가 5분의 1로 줄었다고 하더라도 절대 환자 수는 4~6배는 늘 것”이라며 “환자 한 명이 병상을 차지하면 사망 또는 회복까지 3~4주가 걸린다는 것을 생각하면 의료 시스템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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