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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백신 시위 극우세력 결집 조짐…캐나다, 첫 비상사태법 발동

중앙일보

입력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코로나19 백신 의무화 반대 시위대로 인한 자국 내 혼란이 장기화하자 비상사태법(Emergencies Act)을 발동했다. 이에 따라 캐나다 연방정부는 앞으로 30일 간 시위대에 강경 제재를 가할 수 있게 됐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14일(현지시간) 캐나다 오타와에서 방역 패스 반대 시위와 관련해 기자회견하고 있다. 트뤼도 총리는 코로나19 방역 규제에 반대하는 시위사태에 대해 비상사태법을 발동했다고 밝혔다. [AP=뉴시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14일(현지시간) 캐나다 오타와에서 방역 패스 반대 시위와 관련해 기자회견하고 있다. 트뤼도 총리는 코로나19 방역 규제에 반대하는 시위사태에 대해 비상사태법을 발동했다고 밝혔다. [AP=뉴시스]

14일(현지시간) 글로브 앤 메일 등 캐나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트뤼도 총리는 대국민 연설을 통해 “경제와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위험한 시위가 계속되도록 둘 수는 없다”며 “이를 막기 위해 비상사태법을 발동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연방 정부는 강제수단을 통해 시위대를 해산시킬 수 있고, 트럭 등을 견인하기 위해 견인차 회사를 동원할 수 있다. 법원의 명령 없이 시위에 참여한 트럭 기사의 은행 계좌를 동결시킬 수도 있다. 다만 트뤼도 총리는 “군 병력을 동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법 적용은 지정된 시간 이내, 일부 지역에 국한된다. 합리적이고 상황에 비례한 수준으로 집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12일(현지시간) 캐나다 윈저와 미국 디트로이트를 연결하는 앰배서더 다리 입구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 의무화에 반대하는 캐나다 트럭 운전사들과 경찰이 대치하고 있다. [AFP=뉴스1]

12일(현지시간) 캐나다 윈저와 미국 디트로이트를 연결하는 앰배서더 다리 입구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 의무화에 반대하는 캐나다 트럭 운전사들과 경찰이 대치하고 있다. [AFP=뉴스1]

캐나다에서 비상사태법이 발동된 건 지난 1988년 법제정 이후 처음이다. 이 법은 연방 정부가 지방 정부의 권한을 일시적으로 제한하고,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광범위한 비상조치를 시행할 수 있도록 한다. 기존의 전쟁 대책법(War Measures Act)의 적용 범위를 일부 제한해 대체한 것으로, 다른 어떤 연방법으로도 국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경우에만 발동할 수 있다. 법의 효력은 선언 즉시 발생하지만, 비상사태 유지를 위해선 일주일 이내로 캐나다 하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앞서 전쟁 대책법의 경우 지난 1970년 현 트뤼도 총리의 부친인 고(故) 피에르 트뤼도 당시 총리가 선포한 것이 평화 시 발동한 유일 사례였다. 당시엔 퀘벡주 분리 독립 세력이 영국 외교관을 납치하는 등 위기 상황에서 테러 진압이 목적이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트뤼도 총리가 캐나다 수도 오타와를 2주 넘게 마비시킨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매우 이례적인 조처를 했다”며 “비상사태법 발동으로 연방 정부는 일시적이지만 엄청난 권력을 위임받게 됐다”고 전했다.

백신 반대론자가 ″여기가 북한이냐″는 피켓을 들고 앰배서더 브리지 농성 현장에서 시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백신 반대론자가 ″여기가 북한이냐″는 피켓을 들고 앰배서더 브리지 농성 현장에서 시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번 사태는 캐나다 정부가 지난달 15일 트럭 기사들에게 미국과 캐나다 국경 간 이동 시 코로나19 백신 접종 증명서 제출을 의무화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반발한 트럭 기사들이 ‘자유 호송대’란 이름의 시위대를 결성해 지난달 29일부터 수도 오타와를 시작으로 밴쿠버·토론토 등에서 농성을 벌여왔다. 특히 시위대가 한때 캐나다와 미국을 잇는 앰배서더 브리지를 봉쇄하면서 손실이 커졌다. 연간 6000억 달러(약 717조원) 규모의 교역량이 오가는 국경 다리는 봉쇄 6일 만인 13일 오후 늦게 운행이 정상화됐다. CNN에 따르면 시위에 참여한 일부 인원은 권총, 방탄복, 탄약 등을 소지했다.

앰배서더 브리지가 위치한 온타리오 주정부가 해산 명령을 거부할 시 최대 1년의 징역과 함께 10만 캐나다달러(약 94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겠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지만 시위행렬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을 모방한 시위가 캐나다 내 주요 도시와 호주·뉴질랜드·프랑스·네덜란드 등으로 번지고 있다. 14일 USA투데이는 “캐나다 트럭 기사들의 시위가 미국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며 “지난 주말 뉴욕주 버팔로에 수십 대의 차량과 수백 명의 인파가 몰려들어 ‘내 몸에 대한 선택은 내가 내린다’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고 전했다. 또 매체에 따르면 현재 미국 내 극우 세력의 지원을 받는 국민의 수송대(People’s Convoy)라는 단체는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를 출발해 내달 초 수도 워싱턴DC에 도착하는 대규모 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캐나다 퀘벡‧앨버타 등 일부 주지사들은 “비상사태법 발동이 오히려 시위대를 자극할 수 있다”며 반발하는 중이다. 오타와 시위 주동자 중 한 명인 타마라 리치는 AP통신에 “어떤 위협에도 겁먹지 않고, 전선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캐나다 설문조사기관인 앵거스 리드 연구소(Angus Reid Institute)가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캐나다 성인 162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2%가 트럭 기사들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답했다. ‘시위를 이어가야 한다’는 여론은 22%, ‘잘 모르겠다’는 6%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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