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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재 재고가 동났다, 구리는 1주일치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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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공급망 불안에 우크라이나 전운이 겹치면서 원자재 재고가 급속히 줄고 있다. 한해 100만t의 알루미늄을 만드는 러시아 브라스크 알루미늄 제련소에서 근로자가 작업하고 있다. [타스=연합뉴스]

공급망 불안에 우크라이나 전운이 겹치면서 원자재 재고가 급속히 줄고 있다. 한해 100만t의 알루미늄을 만드는 러시아 브라스크 알루미늄 제련소에서 근로자가 작업하고 있다. [타스=연합뉴스]

“모든 것이 동났다(We’re out of everything).” 세계적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원자재 리서치 책임자 제프 커리의 발언이다. 원유와 구리, 심지어 커피까지 대다수 원자재 재고가 급속하게 줄어들면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진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운이 짙어지며,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에 육박했다.

1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블룸버그 원자재 현물 지수’가 올해 들어 10% 이상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지수는 농산물과 에너지, 금속 등 23개 원자재 현물 가격을 추종한다.

블룸버그 상품 현물 지수.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블룸버그 상품 현물 지수.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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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의 심각성은 원자재 상당수가 ‘백워데이션(선물이 현물보다 싼 현상)’ 상태라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백워데이션은 매수자가 공급할 물품을 바로 확보하기 위해 현물에 큰 프리미엄을 지불하면서 현물가가 선물보다 비싸지는 현상이다. 대표적인 공급 부족 신호다.

미 시장조사업체 리피니티브에 따르면 구리와 원유 등 현재 23개 선물 중 9개 종목이 백워데이션 상태에 빠져있다. 골드만삭스의 니콜라스 스노든 원자재 분석가는 “가장 극단적인 재고 상황”이라면서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금속과 농산물, 에너지까지 재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데, 상황이 가장 좋지 않은 건 구리다. 다양한 업종에서 쓰이는 구리의 글로벌 재고는 40만t이 조금 넘는다. 이는 전 세계 소비량의 1주일 미만 수준이라고 FT는 보도했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구릿값은 t당 1만40달러를 기록해 전년 대비 20% 가량 올랐다.

바닥난 구리 재고.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바닥난 구리 재고.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알루미늄 가격도 지난 9일 t당 3265달러까지 오르며 13년 만에 최고가를 찍었다. 골드만삭스는 “2023년이면 시장의 알루미늄 재고가 바닥난다”며 “알루미늄 가격이 1년 안에 t당 40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예상했다. 농산물 재고도 빠르게 줄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커피 원두다. 고급 원두인 아라비아 커피 재고는 22년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가격이 올 초보다 13% 상승했으며, 전년 대비로는 두 배 이상 급등했다.

최진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라니냐 발 남미 가뭄과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농산물 가격은 올해 상반기 더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함께 세계 밀·옥수수 주요 수출국이다. 향후 미국의 경제 제재 등이 이뤄지면 지난 2014년 때처럼 러시아가 밀가루 수출 제한 등에 나설 수 있는 만큼 추가 상승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국제 유가도 배럴당 100달러 턱밑까지 갔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3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3.6% 오른 배럴당 93.1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8년 만에 최고치다. 같은 날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브렌트유(4월물)는 4.0% 오른 95.045달러를 기록했다.

WSJ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미국의 제재 등으로 인해 러시아의 원유 수출 감소로 이어지며 가뜩이나 취약한 상태인 원유 수급 균형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의 원유 수출 감소분을 대체할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최진영 연구원은 “미국 셰일업계도 일부 증산 움직임을 보이지만, 실제 증산까지는 시차가 있는 만큼 실제 생산량이 늘어날 때까지는 4~5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국제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치솟으면 올 상반기 세계 경제성장률이 현재 전망치(4.1%)의 4분의 1 수준인 0.9%까지 낮아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전 세계 인플레이션은 기존 전망치(3%)의 배가 넘게 뛴 7.2%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FT는 “원자재 가격 급등은 인플레 압력이 높은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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