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아이가 '어린이집 유급' 시켜달래요…위례신도시 '공사판 학교'

중앙일보

입력

10일 3월 개학을 앞둔 서울 송파구 덕수고등학교의 공사가 진행중이다. 장윤서 기자

10일 3월 개학을 앞둔 서울 송파구 덕수고등학교의 공사가 진행중이다. 장윤서 기자

“아이가 ‘엄마, 나 어린이집 계속 다니면 안 돼?’ 물어봐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자녀를 둔 워킹맘 A씨는 지난해 위례신도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 입주했다. 입주 당시만 해도 A씨 가족은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이 가득했지만, 신학기가 다가오면서 설렘은 불안함으로 바뀌었다. 아이가 입학해야 할 학교가 개학을 3주도 채 남기지 않은 지금까지 지어지지 않아서다. A씨는 “아이한테 학교가 없어서 한 달 동안 집에 있어야 한다고 했더니 아이가 크게 실망했다”고 토로했다.

3월 위례 신도시에 개교하는 초·중·고교의 공사가 지연되면서 학부모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주민이 3월 개학을 앞두고 이달 입주를 시작했는데 학교가 지어지지 않아 학생 1700여명이 갈 곳을 잃었다. 교육청은 3월 한 달간 초등학교 수업을 전면 원격으로 전환하는 등 대책을 마련했지만 계속되는 공사로 학생들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공사판 학교, 초등생은 원격, 중학생은 고교서 수업

10일 찾은 위례신도시 학교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덕수고는 내부 인테리어 및 외부 시설 공사 중이다. 운동장 부지에는 흙더미가 쌓여있고 작업자 10여명이 곳곳에서 공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새로 생기는 위례솔초·중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강당을 공유하는 이들 학교는 아직 골조공사도 마무리되지 않아 학교 형태를 갖추지도 못했다.

서울시교육청은 2월 말까지 덕수고 본관 공사를 마무리해 3월 정상등교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초등학생은 3월 한 달간 전면 원격수업을 진행해 4월에 개학한다. 특히 중학생은 1학기 내내 덕수고에서 수업을 받아야 한다. 각 학교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방침을 지난달 학부모들에게 안내했다. 해당 지역 교육지원청은 “학부모들과 협의가 이뤄진 사항”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날 취재진이 만난 학부모들은 “협의가 아닌 통보였다. 갈 곳이 없으니 다들 체념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지난주 덕수고를 답사했을 때 내부공사는 끝난 상태”라고 말했지만 시공사 측 설명은 다르다. 현장 작업자들은 “착공부터 늦어졌다”고 했다. 한 관계자는 “아직 (내부 공사도) 다 안 됐다. 2월 말 준공을 맞추려고 주말에도 나와서 일한다”고 말했다.

10일 위례 신도시에 신설된 위례솔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공사가 진행중이다. 장윤서 기자

10일 위례 신도시에 신설된 위례솔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공사가 진행중이다. 장윤서 기자

학부모 "공사판에 아이 등교 걱정된다"

학부모들이 가장 걱정하는 건 안전 문제다. 위례솔초에 입학 예정인 자녀를 둔 A씨는 “4월에 개교한다 해도 옆에 위례솔중의 공사가 계속돼 소음이나 분진이 발생하게 된다”고 걱정했다. 덕수고 역시 한파로 연기된 운동장 공사를 3월까지 계속한다면 학생들이 공사판을 지나 등교해야 한다. 또 다른 학부모 B씨는 “최근 날림 공사 논란이 있어 더욱 우려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면 원격수업으로 인한 학습결손과 돌봄 공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A씨는 “원격수업 기간 동안 체험학습을 신청하고 친정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겨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B씨는 “원격수업은 코로나19처럼 재난 상황에 불가피하게 하는 것이지 지금 상황에선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일부 학부모들은 인근 학교 전학을 알아보고 있지만 이마저도 해당 학교 학부모들의 반발로 쉽지 않다고 한다.

신도시 늘어나는데 학교 설립 갈등 계속

위례 학교 과밀방지를 위한 학부모 연합회 소속 학부모들이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서울시 교육청의 과밀학급 문제 해결 촉구! 강동송파교육지원청의 행정절차 무시한 행정예고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위례 학교 과밀방지를 위한 학부모 연합회 소속 학부모들이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서울시 교육청의 과밀학급 문제 해결 촉구! 강동송파교육지원청의 행정절차 무시한 행정예고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앞서 남위례, 동탄 등 다른 신도시에서도 학교 신설 문제를 두고 교육당국과 주민 간 갈등이 반복돼왔다. 주민들은 이번 북위례 지구도 인근 산빛초의 신설이 무산되면서 위례솔초·중 인가가 늦어졌다고 주장한다. 이번 달 입주 예정인 C씨는 “신도시는 청약에 유리한 다자녀 가구가 많다. 교육부가 지역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4000세대 기준’만 놓고 학교 설립을 무산시켰다”고 토로했다.

현행법상 새로 초등학교를 지으려면 인근에 4000세대 이상의 주거단지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생기는 신도시에서도 이 정도 규모의 대단지는 찾기 힘들다. 서울 강동송파교육지원청은 지난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교육부 중앙투자심사위원회(중투위)에 산빛초 설립 심사를 신청했지만 승인되지 않았다.

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산빛초와 함께 위례솔초의 인가가 늦어지면서 절차가 지연된 게 첫 번째 이유”라며 “착공 이후로도 철근 수급이 미뤄지고 공사 인부가 코로나19에 확진되는 등 문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교를 미룰 수는 없어 최대한 안전하게 공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대체수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교육지원청은 오는 7월 중투위에 산빛초 설립 심사를 재신청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중투위에선 세대 수뿐만 아니라 기존 학교에 재배치가 가능한지 등 여러 조건을 고려한다. 올해는 학급당 학생 수가 줄어드는 등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