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명단공개(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어두운 밤(석)에 사람을 분별하기 어려워 입(구)으로 아무개라고 부른다는 뜻에서 「명」자가 생겨났다. 이름은 사람의 존재를 확인하는 상징이다. 「존재를 확인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명예를 인정한다는 뜻도 된다.
우리의 선인들은 누가 성인이 되면 벌써 그 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기를 주저했다. 자나 호를 지어 율곡이 어떻고,다산이 어떻고 한 것은 괜히 멋을 내서 하는 일이 아니었다. 이름을 귀하게 여기는 경명사상 때문이다.
서양사람들의 이름을 가만히 새겨보면 우리와는 다르다. 천하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성 하나만 놓고 보면 『우리 선조는 대장장이(스미스)였소』하는 뜻이다. 영국의 대철학자 존 S 밀도 역시 방앗간집(밀) 후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필경 조상이 산지기였던가 보다. 카터는 수레꾼이라는 뜻.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부끄러워하는 일은 없다. 문제는 지금 자신의 존재가 어떻고,지난날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더 긍지를 갖는다.
모르긴 해도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에 헤어진 이름이여! 부르다 내가 죽을 이름이여!』하는 소월의 시를 번역해 서양사람들에게 들려주면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구태여 그 뜻을 새기지 않아도 이 시의 비장함을 느낄 수 있다.
바로 그 이름이 때없이 수난을 당하는 곳이 우리 사회다. 세상이 험난한 탓도 있지만 너나없이 자신의 이름을 우습게 여기는 풍조도 깔려 있다. 지조나 자존심도 없이,제 이름값도 못하며 너절하게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여기에 한술 더 뜨는 것이 관청이다. 걸핏하면 누구의 이름을 공개하겠다고 공갈 아닌 공갈을 치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자다,호화생활자다,하다 못해 침침한 이발소에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의 이름을 공표하겠다고 한다.
다행히 뒤늦게 취소하기는 했지만 민주사회에 살면서 죄가 밉다고 사생활과 인격까지 미워할 수는 없는 일이다.
투기가 괘씸하고,퇴폐 이발소가 가증스러우면 법대로 엄하게 다스리면 끝난다. 그것을 자손만대에 두고 망신을 주려는 것은 국민을 아끼는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