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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통한 평화' 北에 먹히려면? 칼집에만 꽂힌 국방비 54조 [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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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의 픽 : 힘을 통한 평화

기원전 4세기 디오니시오스 2세는 이탈리아 남쪽의 섬 시칠리아에서 가장 큰 도시인 시라쿠사의 참주(僭主ㆍ독재자)였다. 그는 측근인 다모클레스를 호화로운 연회에 초대했다. 앞서 다모클레스가 자신의 부와 권력을 부러워한다는 얘길 들었던 터였다.

한국은 지난해 9월 15일 세계서 7번째로 자체 개발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잠수함 발사시험에 성공했다. SLBM은 북핵을 억제하는 첨단ㆍ정밀 무기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이 같은 무기를 여차하면 쏘겠다는 의지를 북한에게 보여주는 데 소홀했다는 지적이 있다. 국방부

한국은 지난해 9월 15일 세계서 7번째로 자체 개발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잠수함 발사시험에 성공했다. SLBM은 북핵을 억제하는 첨단ㆍ정밀 무기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이 같은 무기를 여차하면 쏘겠다는 의지를 북한에게 보여주는 데 소홀했다는 지적이 있다. 국방부

디오니시오스 2세는 다모클레스에게 자신의 옥좌에 앉도록 했다. 옥좌 위에는 날카로운 칼이 가느다란 말총 한 올에 묶여 매달려 있었다. 다모클레스는 화들짝 놀랐다. 여기서 유래한 ‘다모클레스의 칼’은 권력자는 겉보기 달리 늘 위기에 놓여있다는 고사(故事)다.

그런데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1961년 9월 25일 유엔(UN) 총회에서 취지와 다르게 인용하면서 용례가 바뀌었다. 그는 당시 “모든 남자, 여자, 그리고 아이들은 다모클레스의 핵칼 아래 살고 있는데, 이 칼은 실의 가장 얇은 부분에 매달려 있으며, 우연이나 착오, 광기로 언제라도 끊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발적 핵전쟁의 위험을 경고한 것이다.

실제로 그의 연설 1년 후 미국과 소련은 쿠바 미사일 위기로 핵전쟁의 문턱까지 가다 멈췄다.

그러나 미ㆍ소간 공포의 균형 덕분에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세계는 비교적 평화로웠다. 물론 6ㆍ25 전쟁과 같은 국지 전쟁은 일어났지만, 강대국끼리 무력으로 충돌한 사례는 없었다. 핵 억제력이 역설적으로 가져온 평화인 셈이다.

그런데 한반도는 억제의 실패 사례가 벌어질 위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핵실험ㆍ장거리 미사일 발사 중단이라는 모라토리엄의 전면 재고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정초부터 6차례 단거리탄도미사일과 극초음속미사일을 쏴대던 북한은 지난달 30일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인 화성-12형을 발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두고 북한이 “모라토리엄 선언을 파기하는 근처까지 다가갔다”고 말했다. 그가 집권 후 공들여왔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부도 위기에 몰린 상황을 자인한 것이다.

사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기반부터 튼튼하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힘을 통한 평화는 우리 정부가 추구하는 흔들림 없는 안보전략”이라며 “강한 군, 강한 국방력이 함께 해야 평화로 가는 우리의 길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화는 결코 저절로 주어지지 않고, 우리 스스로 만들고 지켜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후 문 대통령은 군 관련 행사 때마다 ‘힘을 통한 평화’를 강조했다. 한반도 평화를 이루려면 안보 불안을 없애야 하며, 결국 튼튼한 국방이 평화 진전의 밑바탕이라는 게 문 대통령의 인식이다.

한마디로 힘을 통한 평화를 쌓은 뒤 그 위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가동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럴싸한 공법이지만, 결과는 부실 공사였다. 힘을 통한 평화로 북한을 제대로 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방비로 54조원(올해 기준)을 넘겼다. 스텔스 전투기인 F-35A를 들여왔고, 파괴력이 엄청난 재래식 탄도미사일인 현무4도 개발했다. 그런데도 북한은 한국이 첨단ㆍ정밀 무기를 자신에게 휘두를 거라 믿지 않는 듯하다..

억제가 통하려면 한국이 첨단ㆍ정밀 무기 사용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북한에게 끊임없이 알려야 한다. 그래야만 북한이 한국의 억제 의지를 확신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위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그 반대로만 해왔다.

예를 들면 국방부는 북한이 핵ㆍ미사일로 공격하면 가차 없이 보복한다는 작전 개념인 ‘대량응징보복(KMPR)’이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며 ‘압도적 대응’으로 용어를 ‘순화’했다. 북한은 한국의 결기가 약해졌다고 읽을 수 있는 구실이다.

앞으로 한국이 F-35A보다 더 센 첨단ㆍ정밀 무기를 갖더라도 북한이 두려워하지 않을 가능성을 열어줬다. ‘칼은 계속 칼집에 꽂힐 것’이란 북한의 오판이 굳어질 수도 있다.

이는 결국 북한의 행동반경을 넓혀주면서 동시에 한국의 억제력을 깎아내린 자충수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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