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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주의·과장·사기…과학자는 왜 그랬을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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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4호 21면

사이언스 픽션

사이언스 픽션

사이언스 픽션
스튜어트 리치 지음
김종명 옮김
더난

2010년 11월 29일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홈페이지에 공지사항 하나를 띄웠다. “외계 생명체의 존재에 대한 우주생물학적 발견과 관련해 중대 발표를 하기로 결정했다. 발표는 미국 동부 시간으로 2일 오후 2시이며 이전까지 세부 내용은 배포되지 않을 것이다.”

외계인 존재 관련 발표가 있을 거라는 기대가 가득했다. NASA는 소속 연구원인 펠리사 울프-사이먼 박사와 애리조나주립대 공동 연구진이 과학저널 ‘사이언스’ 최신호에 기고한 논문 내용을 공개했다. 생명체의 필수 원소 중 하나인 인(P) 대신 독성을 가진 비소(As)로 생존하는 박테리아를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울프-사이먼 박사는 “우주에 존재할 수 있는 생명체에서 어떤 것이 가능할지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세계로 가는 문을 열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NASA의 발표 직후 많은 과학자가 결과에 대해 회의론을 제기했다. ‘사이언스’를 통해 옹호와 반박이 오갔다.

미국항공주우국(NASA)도 잘못된 실험 결과를 토대로 중대 발표를 한 적이 있다. [AP=연합뉴스]

미국항공주우국(NASA)도 잘못된 실험 결과를 토대로 중대 발표를 한 적이 있다. [AP=연합뉴스]

1년 반이 지난 2012년 7월 8일 ‘사이언스’는 “새로 연구를 진행한 결과 기존 논문과는 달리 박테리아의 생존을 위해 인을 비소로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스위스연방공과대 연구팀의 재현 실험을 통해 해당 박테리아도 생존에 인이 필요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원 실험이 잘못된 원인으로는 ‘시료 오염’이 지목됐다. 울프-사이먼 박사와 NASA는 왜 무리수를 뒀을까. ‘지속적으로 자신들이 의미 있는 연구를 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던 것’(207쪽)이라는 게 이 책의 저자인 심리학자 스튜어트 리치의 분석이다.

책 제목인 『사이언스 픽션』(원제 ‘Science Fictions’)은 원래 뜻(공상과학소설)과 달리 ‘소설 쓰는 과학’쯤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저자는 책의 부제이기도 한 ‘사기, 편견, 부주의, 과장이 진실 탐색을 저해하는 방법’을 소개한 뒤, 그 원인과 개선책을 제시한다. 책에 소개된 사례를 보면 ‘무엇이 진리이며, 무엇을 믿어야 하나’ 싶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개선하려는 과학계의 자정 작용에 안도한다. 이런 책이 나온 것이나 ‘비소 생명체’ 해프닝이 바로 잡힌 것 모두 자정 작용의 사례라 할 수 있다. 책에 소개된 부정 사례에는 낯익은 게 많다. 검찰 수사로 이어진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인간 배아 복제 줄기세포’ 연구가 대표적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의 베스트셀러 『생각에 관한 생각』에 수록된 ‘프라이밍(priming) 현상’ 연구, 스탠퍼드대 교수인 심리학자 캐럴 드웩의 베스트셀러 『마인드셋』에 담긴 ‘성장 마인드’ 개념, 심리학 실험의 고전인 필립 짐바르도의 ‘스탠퍼드 감옥 실험’ 등도 조작 또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사례로 꼽힌다. 사람 목숨을 앗아갔던 생명과학 분야의 연구 부정 사례도 소개한다.

저자는 문제 해결의 단서로 ‘머튼 규범(Mertonian Norm)’을 인용한다. 1942년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이 주창한 과학 연구를 위한 ‘도덕적, 기술적 처방’ 네 가지다. ▶과학적 지식은 누가 발견했건 그 지식을 찾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 옳다면 모두 같은 가치를 가진 지식이라는 ‘보편주의’ ▶과학자는 돈, 정치, 이념, 개인적 이해, 명성 등을 얻기 위해 과학계에 종사해서는 안 된다는 ‘사심 없음’ ▶과학자는 지식을 서로 공유해야 한다는 ‘공동체성’ ▶어떤 것도 신성 불가침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과학적 주장도 절대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조직적 회의주의’다. 이 네 가지 머튼 규범은 과학자뿐 아니라, 높은 수준의 직업윤리가 필요한 일을 한다면 새겨들을 만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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