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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만 하면 '푸틴 지지율' 급등…"이번 우크라는 다르다" 왜

중앙일보

입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끝내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체스 게임의 말을 움직이려는가.

우크라이나를 향한 서방의 군사적 지원이 이어지자 러시아는 육·해·공군을 총동원한 대규모 군사훈련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지난 26일(현지시간) 러시아 타스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국경 근처와 흑해·북극해 해역에서도 대규모 군사훈련을 진행 중이다. 이제 우크라이나 사태는 스테일메이트(stalemate)를 지나 ‘게임 개시’로 치닫는 분위기다. 스테일 메이트란 체스에서 양측 모두 수가 막혀 승자가 가려지지 않아 무승부로 끝내는 경기로 일각에선 푸틴 대통령이 이 같은 대치상황 자체를 의도한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현재 양측에서 고조되는 군사 엄포는 누구도 물러서기 쉽지 않게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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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러시아의 14배, 국방비 지출은 17배가 넘는다. 세계 최강 군사·경제 대국을 상대로 한 푸틴 대통령의 ‘배짱 행보’는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마이클 코프먼 미 해군분석센터(CNA) 러시아군 전문가는 지난달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은 무력을 통한 정치적 목적 달성에서 그 어떤 정치 지도자들보다 뛰어난 성적을 얻어왔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21세기 차르’로 불리는 오늘날의 푸틴을 만든 결정적 순간들에 3차례 전쟁이 자리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앞쪽)이 나치 독일 침공 76주년인 2017년 크렘린궁 옆 무명용사의 묘에서 폭우를 맞으며 헌화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앞쪽)이 나치 독일 침공 76주년인 2017년 크렘린궁 옆 무명용사의 묘에서 폭우를 맞으며 헌화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정치 신인 푸틴’을 알린 2차 체첸 전쟁

지난 1999년 8월 9일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에 의해 총리로 임명될 때까지만 해도 푸틴은 정치 신인이나 다름 없었다. 1975년 대학 졸업 후 러시아 정보기관 KGB에서 활동한 그는 1990년 독일 통일 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왔다. 이후 아나톨리 소브차크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한다. 그가 1996년 중앙정부로의 진출을 결정한 뒤 2000년 대통령직에 오르기까지 4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 배경엔 옐친 전 대통령의 총애 외에도 2차 체첸 전쟁에서 보여준 푸틴의 ‘강한 러시아의 향수’가 있다.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의 사임으로 대통령 대행에 임명된 푸틴의 2000년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의 사임으로 대통령 대행에 임명된 푸틴의 2000년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1999년 8월 7일 이슬람 원리주의의 분파 와하비즘을 추종하는 지도자 샤밀 바사예프가 체첸과 다게스탄을 합친 이슬람 공화국 건국을 시도하면서 체첸 전쟁이 다시 발발했다. 옐친 대통령은 사태가 발생한지 이틀만에 그해 5월 임명된 세르게이 스테파신 총리를 해임하고, 그 자리에 푸틴을 앉혔다. 스테파신이 낙마한 주된 이유론 옐친의 퇴임 후 그 일가 장래를 보장할 인물로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 꼽히지만, 1차 체첸 전쟁에서 실패한 옐친의 입장에선 강한 러시아의 모습을 보여줄 총리가 필요했다.

헬무트 콜(오른쪽) 전 독일 총리와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 2001년 9월 러시아 모스크바 근교 바르비카에 있는 옐친의 집에서 만나는 모습. [AP=연합]

헬무트 콜(오른쪽) 전 독일 총리와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 2001년 9월 러시아 모스크바 근교 바르비카에 있는 옐친의 집에서 만나는 모습. [AP=연합]

이때 푸틴은 ‘알카골릭(알코올중독자)’이라는 옐친의 별명으로 대변되던 약한 러시아와의 결별을 보여줬다. 그는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에 대량파괴 무기를 동원하는 등 무자비한 공격을 퍼부어 총리 지명 5개월 만인 2000년 2월 그로즈니 입성에 성공했다. 신인 푸틴은 이를 계기로 그해 5월 첫 대선에서 53% 득표율로 대통령직에 올랐다.

그의 불도저 진압은 2002년에도 반복됐다. 체첸 반군이 전세를 전환하고자 모스크바 국립극장을 점령하고 850여 명을 인질로 붙잡았을 때 푸틴은 테러리스트와 타협을 거부했다. 인질 129명이 희생당한 무리한 진압 작전은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서방에선 푸틴이 정치적 위기를 겪을 것으로 내다봤지만 러시아 국민은 그가 물러서지 않는 모습에 열광했다. 푸틴은 2004년 재선에서 71.3%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러시아는 이후 유가가 오르고, 2000년대 중국 경제의 급성장으로 세계 원자재 가격도 치솟는 등 ‘유례없는 황금기’를 누렸다.

국내를 넘어 ‘서방과 맞서는 지도자’가 된 푸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연말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는 이날 “서방이 1990년대 우리에게 동유럽으로 1인치도 확장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나토는 뻔뻔하게 5번이나 우리를 속였다”며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라는 게 왜 협박이 되는가”라고 반발했다. [AFP=뉴스1]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연말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는 이날 “서방이 1990년대 우리에게 동유럽으로 1인치도 확장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나토는 뻔뻔하게 5번이나 우리를 속였다”며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라는 게 왜 협박이 되는가”라고 반발했다. [AFP=뉴스1]

푸틴은 2008년 3연임 금지에 막혀 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에게 대통령 권좌를 물려주고 자신은 총리이자 실질적 ‘상왕’으로 군림했다. 공교롭게도 이때 그의 두번째 전쟁이 벌어진다. 러시아 남부 국경과 맞닿아 있는 조지아(옛 그루지아)가 그해 8월 자국 내에서 독립하려던 친러 성향의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에 대한 진압을 시도하자 푸틴은 조지아를 침공해 5일 만에 항복하게 만들었다. 조지아 전쟁 개시일인 8월 8일은 2008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이 있던 날로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올림픽 개막식에서 러시아 침공 사실을 들었다.

조지아 전쟁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 정책에 대한 푸틴의 무력 시위이기도 했다. 1990년 독일 통일 당시 서방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비에트 연방 공산당 서기장에게 “나토의 관할 영역은 동쪽으로 나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았다. 소련이 무너진 후 1999년 체코‧폴란드‧헝가리를 시작으로 2004년 러시아와 직접 국경을 맞대는 발트3국(라트비아·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까지 줄줄이 나토에 가입했다.

조지아 전쟁은 나토가 2008년 4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조지아, 우크라이나 두 나라의 나토 가입 염원을 환영하며, 나토의 외무장관들이 (가입 절차의) 다음 순서인 멤버십행동플랜(MAP) 적용 시기를 결정한다”는 선언문을 채택했을 때 예고된 것인지 모른다. 여름올림픽 기간 벌어진 전쟁에 세계는 경악했지만 2008년 9월 러시아 내 푸틴의 지지율은 역대 최고 수준인 88%까지 올라갔다.

지난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 석방을 지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 석방을 지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EPA=연합뉴스]

2012년 대선에 다시 출마한 푸틴은 64%의 비교적 낮은 지지율로 당선되자 2014년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하면서 과거의 공식을 반복했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유가가 하락하고 루블화의 가치가 추락하는 등 러시아 경제가 곤두박질쳤지만, 러시아 국민은 푸틴이 문제가 아닌 해결책이라 여겼다. 크림합병 이후 푸틴의 지지율은 다시 80%대를 회복했다.

“미·나토 과거와 달라…푸틴, 기존 공식으론 실패할 수도”

동유럽·발트해에 배치된 나토군 병력 규모.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동유럽·발트해에 배치된 나토군 병력 규모.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도 푸틴 대통령은 기존 3차례의 ‘전쟁 승리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25일 CNN에 따르면 러시아 공영방송에선 푸틴 대통령이 여전히 서방의 위협에서 러시아를 지킬 구원자로 그려지고 있다.

다만 실제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이번엔 푸틴식 성공 공식이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러시아는 최근 조지아,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낮은 군사적 비용과 적은 사상자를 내는 모델을 사용했다”며 “미국과 나토가 우크라이나에 수십억 달러를 지원하고, 각종 무기를 보내고 있는 현 상황에선 심각한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저명한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은 최근 NYT 기고문을 통해 이렇게 경고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점령하면 그곳은 또 다른 아프가니스탄이 될 것이다.”

2014년 크림 합병 이후 미국·나토의 우크라이나 지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2014년 크림 합병 이후 미국·나토의 우크라이나 지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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