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밭에서'- 이상국(1946~ )
무는 제 몸이 집이다
안방이고 변소다
저들이 울타리나 문패도 없이
흙 속에 실오라기 같은 뿌리를 내리고
조금씩 조금씩 생을 늘리는 동안
그래도 뭔가 믿는 데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완성해 가다가
어느 날 농부의 손에 뽑혀나갈 때
저들은 순순히 따라 나갔을까, 아니면
흙을 붙잡고 안간힘을 썼을까
무밭을 지나다가
군데군데 솎여 나간 자리를 보면
아직 그들의 체온이 남아 있는 것 같아
손을 넣어보고 싶다
날씨 칼칼해지도록 무밭 배추밭은 시퍼렇게 대견합니다. 난 무밭 배추밭이 왜 그렇게 예쁜지 꽃구경은 몰라도 일부러 고랭지 채소밭 구경 가고 싶을 때 있습니다. 가난의 유전 때문인가? 민틋한 무 하나 뽑아 보면 놀랍게도 실뿌리 서너 개가 전부입니다. 상근기의 수행인 듯. 어석어석 무 씹으며 시 낭송 같은 걸 하면 어떨까요. 무 뽑혀 나온 자리 생각하면서. 울음이 나올까요?
<장석남.시인>장석남.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