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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도 무속 보도로 여론 형성"…'김건희 통화 공개' 결정문 논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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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부인 김건희씨의 ‘7시간 녹취’ 방송을 허용한 이유로 “2017년 최순실 때도 보도로 여론 형성에 기여했다”고 결정문에 명시해 논란이 되고 있다. 김씨 무속인 발언을 놓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측의 ‘김건희=최순실’ 프레임을 그대로 인용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서다. 해당 재판장은 과거 윤석열 검찰총장 당시 공개 비판을 한 바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 연합뉴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 연합뉴스

김건희 ‘쥴리 의혹’도 허용…法 “이미 국민적 관심사”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수석부장판사 송경근)는 지난 19일 김씨가 열린공감TV를 상대로 낸 방영금지 및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을 “공적 영역과 전혀 무관한 오로지 사생활 부분”“김씨와 제3자의 대화”만 인용하고 녹취 대부분의 방송을 허용했다.

재판부는 “유튜브 채널 ‘서울의 소리’ 촬영기사 이명수씨가 김씨와 대화를 몰래 녹음한 뒤 신의에 반해 공개한 행위가 일부 취재윤리 위반 소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방송이 갖는 공공의 이익보다 우월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같이 결정했다. 지난 14일 서울서부지법이 MBC 스트레이트 방송에서 김씨 개인 의혹과 수사 중인 사안은 배제하도록 결정한 것보다 방송 범위가 넓어진 셈이다.

재판부는 이른바 ‘쥴리’ 의혹과 관련해서도 개인 사생활 문제가 아니라며 보도가 가능하다고 했다. 재판부는 “김씨의 결혼 전 유흥업소 출입과 동거 의혹의 경우 단순히 결혼 전 개인적인 사생활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 검찰 간부와의 커넥션, 뇌물 수수 의혹 등과 얽혀 이미 국민적 관심사가 된 사안”이라고 썼다.

“김씨 무속인 발언…평소 합리적 판단하는지는 검증 대상” 

MBC 스트레이트 화면 캡처

MBC 스트레이트 화면 캡처

재판부는 특히 김씨의 무속인 관련 발언을 언급하면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비유한 부분은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녹취 중 김씨가 “내가 웬만한 무속인보다 낫다. 점을 좀 볼 줄 아는데 우리가 청와대 간다”고 발언한 내용이다.

재판부는 이 발언을 인용하면서 “‘누가 어떻게 대통령에 당선될 것인지’라는 국가적,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이슈에 관해 김씨가 평소 객관적 근거에 기반한 합리적 판단을 하고 있는지 여부를 유권자들이 공론의 장에서 검증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2017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당시에도 ‘무속인’ ‘기치료’ 등이 모든 신문·방송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됐고, 국민이 사건 내용을 판단하고 여론을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며 사례로 언급했다.

법조계에선 이를 두고 “여당 정치인들이 앞다퉈 김씨를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씨에 빗대 총공세를 펴는 상황에서 법원이 결정문에서 비슷한 입장을 드러낸 건 부적절하다”란 지적이 나왔다. 이재명 후보 캠프와 여당 지휘부가 방송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최순실의 아류를 보는 느낌”“두 사람이 똑같다”(안민석 민주당 선대위 총괄특보단장) , “김씨는 최순실과 오방색을 떠올려 큰 문제”(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등의 발언에서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광주 KBS 인터뷰에서 “대통령을 윤석열 뽑는 것인지 김건희를 뽑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이런 시대로 갈 수는 없다”며 “주술과 마법 같은 데 의존하는 나라가 되어서는 나라가 크게 위험이 처할 것”이라고 했다.

재판장, 윤석열 검찰 향해 “독재 정권 기시감” 비판한 전력

법조계에선 이를 놓고 송경근 재판장이 과거 윤석열 검찰을 두고 독재정권이라고 비판한 이력과 연관성을 거론하기도 한다. 송 재판장이 여러 차례 ‘윤석열 검찰’에 대한 반감을 공공연히 드러낸 것은 물론 2020년 말 판사 사찰 문건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민사1수석부장판사로 보임한 송 재판장은 2020년 말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국면에서 판사 사찰 문건이 논란이 될 때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당시 대검이 판사사찰 의혹 관련 압수수색을 진행한 감찰부의 절차를 문제 삼아 감찰부에 대한 역조사를 벌인 것을 두고서다. 청주지법 부장판사였던 송 판사는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독재정권·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기시감이 든다”며 “법관을 사찰했다고 충분히 의심할 만한 정황이 나왔으니 전국 법관 대표자회의에서 논의해보자”는 글을 적었다.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직무배제 자체를 놓고서 국민적 논란이 뜨거울 때라 현직 판사의 실명 비판 글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헌정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징계 청구 및 직무배제로 극한 갈등을 겪었던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연합뉴스

헌정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징계 청구 및 직무배제로 극한 갈등을 겪었던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연합뉴스

전주지법 군산지원장 시절인 2018년 3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조사 직후 서울고법 부장회의가 “검찰 수사에 넘기는 건 재판 독립이 침해될 수 있다”는 반대 입장을 내자 강하게 비판하는 장문의 글을 쓰기도 했다.

송 재판장은 당시 “고등부장들은 지난 정권 때 무엇을 했냐”며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수밖에 없다”며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이런 성향 때문에 지난해 2월 인사 때 김명수 대법원장이 주요 사건을 심리하는 서울중앙지법 민사수석부장으로 ‘코드 인사’를 했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한 검찰 간부는 “특정 정치인에 대해 이미 공개적으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낸 판사가 해당 재판을 맡아 결론을 내렸다면 재판이 공정하지 않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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