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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벌이도 뿌리친 1200리 우정…장흥 목부·남양주 목수 황소고집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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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독자 서비스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기억과 추억,
그리고 인연을
인생 사진으로 찍어드립니다.

아무리 소소한 사연도 귀하게 모시겠습니다.
'인생 사진'은 대형 액자로 만들어 선물해드립니다.
아울러 사연과 사진을 중앙일보 사이트로 소개해 드립니다.

사연 보낼 곳: https://bbs.joongang.co.kr/lifepicture
               photostory@joongang.co.kr
 ▶11차 마감: 1월 31일

풀만 먹인 소 다운 소를 키우겠다는 형의 꿈을 위해 목수인 아우가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섰습니다. 두 할배의 우정이 진하디진합니다.(왼쪽 조영현 대표, 오른쪽 오효석 목수)

풀만 먹인 소 다운 소를 키우겠다는 형의 꿈을 위해 목수인 아우가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섰습니다. 두 할배의 우정이 진하디진합니다.(왼쪽 조영현 대표, 오른쪽 오효석 목수)

저는 그를 5년 전 처음 만났습니다.
지인이 주선한 송년회 모임에서 처음 본 후,
의기투합해 형과 아우가 되었죠.

형은 전남 장흥의 ‘풀로만 목장’ 조영현 대표입니다.
아우인 저는 경기도 남양주의 목수이고요.

목부와 목수라서 하는 일이 서로 다릅니다.
더구나 거주지가 전남 장흥과 경기 남양주니
멀어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죠.

우리 둘은 주로 페이스북에서
소소한 일상을 들여다보며 정을 나눕니다.
비록 하는 일이 달라도
비슷한 생각과 가치관으로
희로애락을 공유하죠.

‘풀로만 목장’은
말 그대로 풀로만 소를 키우는 목장입니다.
소의 전 생애에 걸쳐
좋은 풀인 알팔파와 라이그라스만을 먹입니다.

형님은 ‘소는 소답게 키워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새로운 형태의 목장을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한겨울인데도 장흥엔 풀이 파릇합니다. 이 모두 소에게 줄 풀입니다. '풀로만의 꿈'은 풀에서 비롯된 겁니다.

한겨울인데도 장흥엔 풀이 파릇합니다. 이 모두 소에게 줄 풀입니다. '풀로만의 꿈'은 풀에서 비롯된 겁니다.

12여 년 전 아무 연고도 없는
전남 장흥에 내려와 기틀을 잡고
2020년에는 제2 목장까지 확장해
사육두수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오래전 건초유통업에 종사했던 형님은
한우 관행 사육의 문제,
동물복지,
한우 소고기 등급제 등
근원적 문제를 고쳐보고자
직접 소 키우기에 나섰다고 합니다.

형님의 꿈인 목장에 들어서면
우선 소똥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풀만 먹여 소를 키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형님은 소에게 음악을 들려줍니다.
때론 형님이 직접 소를 위해
알프호른(Alphorn) 연주를 합니다.

이렇듯 소가 행복하고
소를 키우는 목부가 행복해서
결국 소비자가 행복하도록 하는
‘풀로만의 꿈’을 형님이 키워온 겁니다.

그런데 얼마 전 형님의 페이스북에
심상치 않은 글이 떴습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후계자로 삼아
서로 삶을 나누었던 젊은 축산인이
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풀로만의 꿈’을 이를 후계자의 변고는
형님에게 큰 상실감으로 다가갔나 봅니다.

평소 강철 체력으로
사시사철 냉수마찰로 몸을 단련해 왔던 형님이
응급실 왕래 끝에 인공으로 심장에 자극을 주는
페이스 메이커를 달게 되었고
기계에 적응하기까지
3~6개월 정도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 소식을 보고
저는 이튿날 짐 싸 들고 장흥으로 향했습니다.
형님의 일을 대신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형님의 심장박동수가 올라가지 않도록,
심장이 기계에 적응하도록 하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 겁니다.

소를 소답게 키워
대한민국 최고 한우 명가로 자리 잡는
‘풀로만의 꿈’이 이뤄지도록
미력이나마 보태려고 내려온 겁니다.

‘풀로만 목장’ 조영현 대표의 꿈을 응원하기 위해
인생 사진을 찍어주십사 사연을 신청합니다.

남양주 목수 오효석 올림


조영현 대표는 알프호른( Alphorn )을 들고 오효석 목수는 쇠스랑을 들고 포즈를 취했습니다. 알프호른은 알프스의 목동들이 연주하는 악기입니다. 조 대표는 알프호른 연주가이자 요들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조영현 대표는 알프호른( Alphorn )을 들고 오효석 목수는 쇠스랑을 들고 포즈를 취했습니다. 알프호른은 알프스의 목동들이 연주하는 악기입니다. 조 대표는 알프호른 연주가이자 요들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장흥 ‘풀로만 목장’에서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경기 남양주에 사는 목수와
전남 장흥에 사는 목부의 우정,
자그마치 거리가 500여 km니
거의 1200리 우정인 겁니다.

먼저 사연을 보낸 오효석 목수에게 물었습니다.
“목수로서 주문받은 일 없습니까?
이리 목수 일을 작파하고
여기서 이러셔도 되는 겁니까?”

“주문받은 일 없습니다. 백수 할아버진걸요.”
대답하는 오 목수의 목소리가 유난히 작았습니다.
슬쩍 조영현 대표를 눈치를 보는 듯했습니다.
오 목수는 평상시 워낙 목소리가 걸걸한 데
갑자기 나지막이 말하니 뭔가 미심쩍었습니다.
사실 일이 없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상황인 겁니다.

조 대표가 참다못해 말했습니다.
“일당이나 사례비 같은 소리를 하면
그냥 남양주로 올라가 버린다고 으름장이네요.
참말로 희한한 사람입니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아우죠.
억만금을 줘도 싫다면 안 하는 성격이고요.
아무튼 이렇게 아우가 와서 숨통이 트였어요.”

결국 오 목수는 자신의 힘을
더 필요한 데 쓰는 게 맞다고
스스로 판단한 건가 봅니다.

겨우내 소에게 먹일 건초더미 위에서도 형과 아우는 뛰어다닙니다. 둘은 스스로 ‘손자를 둔 할배’라 자칭하면서도 활동력이 젊은이 못지않습니다.

겨우내 소에게 먹일 건초더미 위에서도 형과 아우는 뛰어다닙니다. 둘은 스스로 ‘손자를 둔 할배’라 자칭하면서도 활동력이 젊은이 못지않습니다.

조 대표에게 건강 상태가 어떤지 물었습니다.

“이를테면 장비를 다 세팅하고
맞추는 중이라고 보면 됩니다.
한 3개월 정도 1차 세팅 기간이고요.
이후 또 3개월 더 조정하면서
지켜봐야 한다는 게 의사의 말이고요.
몸이 추워지면 안 되니
요즘같이 추운 오전에는
눈 딱 감고 안 움직입니다.
그 바람에 아우가 고생이죠.”

“소가 몇 마리입니까?”
“모두 110마리 정도 됩니다.
1목장은 비육하는 친구들이고
2목장은 번식을 위한 친구들입니다.
아우는 2목장을 책임지고 있죠.”

오 목수가 책임지고 있는 2목장에서
소에게 풀 주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모두 두 가지 풀을 나눠줬습니다.
“라이그라스는 일종의 밥이고,
알파파는 일종의 반찬이라 생각하면 됩니다.”며
오 목수가 설명을 곁들였습니다.

특히 알파파를 나눠줄 때
풀의 무게까지 저울에 재서 나눠줍니다.
골고루 나눠 주기 위해서 무게를 재는 겁니다.

건강이 여의치 않은 조 대표에게 오효석 목수는 천군만마입니다. 영하의 추운 날인데도 오 목수는 아랑곳없이 반소매 차림으로 땀을 흘립니다.

건강이 여의치 않은 조 대표에게 오효석 목수는 천군만마입니다. 영하의 추운 날인데도 오 목수는 아랑곳없이 반소매 차림으로 땀을 흘립니다.

다 나눠 주는 데만 거의 두시간입니다.
다 나눠주고서는
라이그라스를 골고루 펴서
바닥에 말리는 작업까지 합니다.
이는 소들의 다음 식사를 위한 준비입니다.
모두 합하면 세시간 남짓입니다.
오 목수가 움직인 거리를 체크해 보니 10km가 넘습니다.

한번은 13.4km까지 움직인 적도 있다고
오 목수가 귀띔했습니다.
고작 한 끼 식사에 이만큼의 노동력이 필요한 겁니다.

조 대표에게 사료를 먹이면
자동화 시스템으로 쉽고 간편하게 먹이를 줄 텐데
왜 이리까지 하는지 물었습니다.

“사람이 고기만 먹으면 병 걸리기에 십상이죠.
소도 마찬가지입니다.

빨리 살찌우려
알곡이나 배합사료만 준다면 어찌 될까요?
살을 빨리 찌게 하는 정도가 아니고
억지로 마블링을 만들게 하는 거죠.

사실 소가 어릴 때 좋은 풀을 먹여서 키우면
자연스레 근육 사이에 지방 전구세포라는 게 생겨요.
이게 건강한 소의 에너지 원이죠.
이렇게 건강하게 자란 소가 소다운 소가 되는 겁니다.
건강한 소를 먹어야
사람도 건강해지는 게 당연한 이치고요.”

옆에서 듣던 오 목수가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를 곁들였습니다.
“저는 소먹이 주는 거 하나도 힘들지 않습니다.
운동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형님이 걸어오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쉬운 길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정말 필요한 일이지만,
평탄한 길이 아닌 겁니다.
이런 형님의 꿈이 이어지고,
나아가 이루어진다면야
이까짓 거 아무것도 아닙니다.”

만난 지 비록 5년이지만, 두 사나이의 우정으로 '풀로만의 꿈'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만난 지 비록 5년이지만, 두 사나이의 우정으로 '풀로만의 꿈'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겨울에도 팔뚝을 내어놓은 채
땀을 뚝뚝 흘리면서도
하나도 힘들지 않다는 아우와
그간 묵묵히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홀로 걸어 온 형의 우정으로
‘풀로만의 꿈’이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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