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독자 서비스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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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인연을
인생 사진으로 찍어드립니다.
아무리 소소한 사연도 귀하게 모시겠습니다.
'인생 사진'은 대형 액자로 만들어 선물해드립니다.
아울러 사연과 사진을 중앙일보 사이트로 소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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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차 마감: 1월 31일
‘60여 년 동안 써 내려온 삶의 이야기를
2022년 1월 3일로 끝맺으려 합니다.
그동안 통술집을 찾아주시고
함께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추억으로
여러분의 기억 속에 남아있길 바라며,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통술집 할매’
30년 넘도록 다닌 단골 가게 문에 붙은 안내문을 보자마자
저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습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습니다.
이 안내문 앞에서
지난 30년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흘렀습니다.
통술집은 서울 서대문 로터리에 있는 밥집입니다.
제가 이 근처에 첫 직장을 다니면서부터 다녔습니다.
손맛, 밥맛은 물론이거니와
사람 정맛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제가 한잔하다가 일행과 담배 피우러 나갔다 오면
주인 할매는 목살, 껍데기를 노릇노릇 구워 놓으셨죠.
돼지 껍데기를 유독 좋아하는 제게
언젠가 “껍데기는 등판보다 앞판이 젤이여”라며 챙겨 주셨죠.
손님 많을 땐 멀리서 눈 맞춤하고
제가 가슴을 두 번 치면
할매가 알아서 껍데기 앞판을 가져다줄 정도였습니다.
일종의 할매와 단골 사이의 사인인 셈이었죠.
이러니 가게 밖 10m서 할매와 눈이 마주치면
그 환한 눈 웃음에 빨려들 듯
통술집으로 제 발길이 저절로 옮겨지곤 했습니다.
사실 어쩔 땐 통술집이 회사 구내식당 같았습니다.
다들 할매 손맛에 길들어 여기만 찾았던 거죠.
제가 어렸을 땐 선배들이 저도 모르게
슬쩍 계산해주고 갔었고요.
그런데 여기를 한 30년 다니다 보니
어느덧 제가 모두의 선배가 되었네요.
선배에게 배운 대로
후배들 밥값을 슬쩍 계산해주곤 합니다.
후배들을 떼로 만날 땐
솔직히 좀 부담스러울 때도 있습니다만,
통술집 가격이 이 근방에서 제일 싸니
이 또한 사는 정이지요. 하하.
가만히 보면 여기 오는 손님들이
할매를 부르는 호칭도 제각각입니다.
사장님, 할머니, 할매, 어머니, 엄마 등등이지만,
늘 웃는 얼굴,
마음 씀씀이는 누구에게나 한결같았습니다.
그간 나온 언론 보도를 살펴보니
통술집은 1961년부터 이 자리에 있었다네요.
2016년엔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고요.
60년이 넘은 서울의 미래 유산이어야 할 통술집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사라지기 전에 고수덕 할매의 손맛, 밥맛, 정맛 담긴
인생 사진을 찍어 주십사 요청합니다.
통술집 30년 단골 올림
제보인 듯한 사연 요청을 받고
저 또한 깜짝 놀랐습니다.
저도 꽤 오래 다닌 식당이니까요.
앞으로 족히 40년은 더해서
100년을 채울 것이라 믿었던 통술집이었습니다.
그만큼 주변 직장인들에게 ‘참새 방앗간’ 같은 곳이었습니다.
영업 마지막 날인 1월 3일 아침에
부랴부랴 찾아갔습니다.
할매(안내문에 스스로 통술집 할매로 호칭하였기에
할매로 호칭합니다)는
마지막 장사 준비로 분주했습니다.
그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어쩌면 다시 못 볼 모습이니까요.
모든 테이블을 닦고,
의자를 옮기고,
설거지해서 나온 밥그릇을 정리하고,
종업원들 손 부족한 데 없나 살피고,
불 위에 끓고 있는 고등어조림 상태를 살피고,
밥 불 조정하고,
주문 전화 통화하고,
빈 냅킨 채우느라 잠시도 쉬지 않습니다.
그 와중에 물건 납품 온 사람들
아침 땟거리로 샌드위치까지 챙겨 줍니다.
계속 지켜만 보다가는
말 한마디 나눌 틈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일하는 할매를
쫓아다니며 몇 마디 여쭈었습니다.
- “갑자기 왜 관두십니까?”
- “아들이 말을 안 하는 성격이라
속속들이 몰랐어요.
더구나 집주인도 재촉 안 하니
월세가 이리 밀린 줄 몰랐죠.
대충 장사가 힘든 줄 짐작했지만,
2년 동안 쌓인 적자가 너무 컸어요.
도저히 버틸 수 없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사는 집 팔아서
갚을 빚 다 갚고 정리했어요.”
“아니 여기 건물 주인이 할매 아니었어요?”
- “다들 그렇게 생각해요. 한 자리서 60년 넘게 했으니….”
“예전에 그렇게 장사가 잘되었는데,
이 가게 안 사시고 뭐 하셨어요?”
할매는 답 대신 가게 입구를 물끄러미 쳐다봤습니다.
만감이 교차하는 듯 호흡을 고르고서야 답을 했습니다.
- “오래전에 참으로 어렵게 살 때
복권이 당첨되었어요.
1등은 아니었지만,
꽤 큰돈인 60만환으로 이 가게를 시작했어요.
스물세살 때였는데
내가 받은 복으로
다 같이 밥 굶지 말고 먹고 살자는 마음으로
밥장사를 시작했죠.
그래서 밥값 싸게 받고 했죠.
그러니 무슨 큰돈 벌었겠어요.
손님들이 오죽하면 이렇게 싸게 팔아서
남는 게 있냐고 할 정도였으니….
큰돈은 벌지 못했지만, 이 만큼이면 잘 살았죠.”
- “이 자리서 시작하신 게 1961년이라던데….
말이 60년이지 어마어마한 세월이잖아요.
많이 아쉬우시죠?”
- “61년 했네요.
그러니 너무 마음 아프죠.
어떻게 해서라도 지키고,
이기고 나가려고 했는데….
우리보다 손님이 더 어려우니까 도리가 없네요.
그 손님들 모두 참말로 고마워요.
소식 듣고 찾아와서 누구는 인터넷에 올려주고,
누구는 편지 써놓고 가고,
누구는 못 오니 목소리라도 들어야겠다며
전화해주고 그러네요.
참으로 다들 고맙습니다.”
- “일 할 땐 괜찮은데
쉬면 아프시다고 하셨잖아요.
혹시 다른 계획은 없으신가요?”
- “안 그래도 생각은 하고 있어요.
늘 하던 게 이것이니
조그맣게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도 있긴 해요.
그런데 올겨울에 내가 허리가 안 좋아서
네 번이나 병원을 들락날락했어요.
한다 안 한다는 장담 못 하지만,
허리가 조금 나으면 해볼까 하는 마음은 있어요.”
점심시간이 되니 손님이 몰려왔습니다.
다들 소식을 들은 터인지
빈자리가 금세 채워졌습니다.
할매가 밥솥을 열었습니다.
설마 설마 했는데
할매는 장갑도 안 낀 맨손으로 든 그릇에 밥을 펐습니다.
놀라서 물었습니다.
“할매! 안 뜨겁습니까?”
제 얼굴은 쳐다보지 않은 채
뜨거운 김 오르는 밥솥에 얼굴을 묻고
할매가 답했습니다.
“뜨겁긴 뭐가 뜨거워요.”
함께 먹고살자고 시작한 밥장사 61년,
뜨거움도 잃은 저 손과 함께
서대문 원조 통술집의 역사는 그렇게 문을 닫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