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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 회담 소득없이 장외서 설전…우크라이나 전운 고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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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 셔먼(왼쪽) 미국 국무부 차관과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이 지난 1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러 전략안정대화에 참석해 서로 마주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웬디 셔먼(왼쪽) 미국 국무부 차관과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이 지난 1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러 전략안정대화에 참석해 서로 마주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유럽과 러시아 간 세 차례 안보보장 회담은 결국 빈손으로 끝났다. 러시아는 “나토는 동진을 멈추라”고 기존 입장을 반복했고, 미국은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라고 철벽을 쳤다.

회담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접경에 10만 병력을 집결하고 훈련을 재개한 상황에서 전개됐다. 양측은 외교적 채널이 열려 있다고 했지만, 향후 스케줄은 잡지 않았다. 빈손 회담으로 우크라이나의 긴장이 더 고조한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 귀추가 모인다.

13일(현지시간) 로이터·AP 통신 등은 미 백악관을 인용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위험이 더 커졌다며, 러시아는 이를 정당화할 구실을 찾고 있다는 정보를 24시간 이내에 공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날 러시아와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회담이 끝난 후 마이클 카펜터 OSCE 주재 미국대사는 “전쟁의 북소리가 크게 들리고, 언쟁은 날카로워졌다”고 말했다. 또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군사적 행동 위협이 높다"며 “더는 회담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다. 먼저 동맹국·파트너와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도 날 선 수사를 동원했다. 엘렉산드르 루카셰비치 OSCE 주재 러시아대사는 “쳇바퀴식 의견 교환은 모든 국가의 안전 상황을 악화시킬 것”이라며 “러시아에 대한 공세가 지속할 경우, 불가피하게 전략적 균형 확보와 위협 제거를 위해 모든 필요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차관. [AFP=연합뉴스]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차관. [AFP=연합뉴스]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 [AFP=연합뉴스]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 [AFP=연합뉴스]

러시아는 ‘쿠바 군사력 배치’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은 이날 자국 방송에서 출연해 “돌파구를 찾지 마련하지 못한다면 쿠바에 군사 인프라를 배치할 수도 있다”며 “모든 것은 미국의 행동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는 1962년 옛 소련이 쿠바에 미국을 겨냥하는 핵미사일을 배치하려 했던 ‘쿠바 미사일 위기’를 상기시킨다. 회담이 끝나자 다시 ‘으름장 전술’로 돌아간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제이크 설리번 보좌관은 “공식적인 논평에서 (벗어난) 터무니없는 발언”이라고 일축했다. 또 “러시아가 다른 길을 선택하면 미국도 동등하게 준비돼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3면 포위한 러시아군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로한 컨설팅·뉴욕타임스]

우크라이나 3면 포위한 러시아군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로한 컨설팅·뉴욕타임스]

1주일간 장내·외 싸움에서 미국과 러시아는 결국 ‘힘의 균형’이라는 현실주의를 재확인시켰을 뿐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계획을 부인하고 있지만, 군사력 증강을 토대로 미국을 협상 테이블에 오르게 했다. 그리고 나토(NATO)의 동진 금지와 이 지역에서 미국의 미사일 배치 금지 등을 전 세계에 알리는 장으로 활용했다. 뉴욕타임스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인질로 미국을 회담장으로 끌어들여, 1년 전엔 불가능했던 것들을 가능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설리번 보좌관도 “미국은 동맹국과 단결을 전면적으로 과시했다”며 “상호주의라는 핵심 전제를 고수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전망도 밝지 않다. 오히려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긴장은 더 높아졌다고 외교가는 분석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이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먼저 행동을 취할 것이라는 주장을 날조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공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고 했다. 또 러시아 제재를 강조했다. 앞서 12일 미국 민주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포함한 관료·군부 인사까지 제재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표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 대변인은 “(푸틴에 대한 제재는) 러시아와 관계를 단절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협상에 극히 부정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간 힘 대결에서 우크라이나는 소외됐다. 앞서 12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프랑스·독일과 함께 “러시아와 ‘노르망디 포맷(4자 회담)’을 통한 대화에 나설 용의가 있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4자회담이 열릴지, 여기서 돌파구를 마련할지는 미지수다. 러시아는 실리를 위해 우크라이나를 애써 외면하고 미국을 끌어들이는 전략을 취할 것이라는 게 외교가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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