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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 "성희롱 피해자 누군지 가해자에 비공개한 징계 무효"

중앙일보

입력

성희롱을 이유로 징계 처분을 받은 공무원에게 피해자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은 것은 방어권을 침해해 무효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14일 서울고법 행정9부(김시철 이경훈 송민경 부장판사)는 최근 검찰공무원 A씨가 검찰총장을 상대로 낸 해임 취소 소송을 1심과 달리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한 지방검찰청에서 근무하던 A씨는 2019년 5월 해임 처분을 받은 데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으나 1심에서 패소하고 항소했다.

A씨의 징계 사유는 성희롱 등 품위유지의무 위반 13건, 우월적 지위·권한을 남용한 부당행위 등 품위유지의무 위반 19건, 공용물 사적 사용 등 품위유지의무 위반 1건 등 총 33건이었다.

감찰 과정에서 A씨로부터 성희롱 피해를 봤다고 진술하거나 다른 비위를 목격했다고 진술한 내부 관계자만 16명에 달했으나, 검찰은 이들의 인적사항을 A씨에게 알리지 않았다.

A씨는 "해임 처분은 검찰이 신원을 밝히기를 거부하는 피해자들의 과장되거나 왜곡된 진술이나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전언에 근거한 것으로 사실관계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감찰과 행정소송에서 피고(검찰총장)의 행위는 원고(A씨)의 방어권을 실질적으로 침해해 위법할 뿐 아니라 피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 징계 사유가 고도의 개연성이 있을 정도로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직장 동료인 피해자 등의 인적사항을 전혀 특정하지 않아 원고는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피해자 등에 대한 증인 신문을 신청할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재판부는 최근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근거로 제시했다. 성폭력처벌법에 따르면 성폭력 범죄 피해자가 19세 미만이면 법정에 직접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더라도 진술을 녹화한 동영상이 증거로 인정됐는데, 헌재는 이를 위헌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에서 문제되는 피해자 등은 모두 원고와 같은 검찰청에 근무한 성년인 공무원"이라며 "미성년 피해자가 문제 된 사건에서조차 헌재는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박탈하는 것이 헌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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