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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또 구멍난 ‘자회사 리스크’...카카오페이 사태후 김범수의 숙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카카오가 ‘스톡옵션 먹튀’ 논란에 휩싸인 류영준(45) 공동대표 내정자에 대한 선임 계획을 철회했다. 회사는 류 내정자가 사의를 밝혔다고 10일 공시했다. 앞서 류 대표 내정자는 카카오페이의 임원 7명과 함께 900억 원 규모(44만 993주)의 스톡옵션 주식을 블록딜(시간 외 대량 매매)로 한꺼번에 매각해 ‘먹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상장 한 달만에 경영진이 대량 매도에 나서면서 카카오페이 주가는 한달새 24.2% 추락했다.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 장진영 기자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 장진영 기자

왜 사퇴하나?

코스피 시가총액 8위 카카오의 공동대표 내정자가 선임도 되기 전에 비난에 휘말렸다. 그것도 주주 이익을 침해한 ‘무책임 경영’ 낙인이 찍혔다. 류 대표 내정자가 2011년 카카오에 개발자로 합류해 카카오페이를 키워낸 일등공신이라 해도, 이젠 카카오에 부담이 됐다.

부메랑이 된 카카오 대표직 : 카카오 수장으로 내정된 류 대표가 이해 상충 문제(카카오 페이에 유리한 결정을 할 위험)를 해결하겠다며 급하게 스톡옵션을 행사한 게 화근이 됐다. 현 대표인 류 내정자를 비롯해, 최고재무책임자, 차기 대표 내정자 등 핵심 경영진 8명이 상장 한 달만에 주식을 팔아치웠다. 전례 없는 매도에, 시장에선 ‘도덕적 해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류 내정자는 경영진의 판단을 믿고 투자한 주주와 직원에 대한 성실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책임감 없이 최악의 수를 둔 상황이라, 본사 대표 사퇴는 당연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결정적 변수 노조·직원 압박 : 시장의 신뢰만 잃은 게 아니었다. 내부 반발이 사퇴의 결정타가 됐다. 지난 4일 류 대표 등 카카오페이 경영진은 직원들과 온라인 간담회에 나섰다. 사과는 했지만, 구체적인 수습 조치는 없었다. 다음날 카카오 노동조합은 류 내정자의 퇴진을 요구하며 쟁의 의지도 내비쳤다. 카카오 사내망에선 카카오 직원 1900여 명이 실명으로 류 대표에 사퇴를 요구하는 노조에 동의 의사를 밝혔다. 대표 취임도 하기 전에 구성원의 신뢰를 잃은 셈이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지난 10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위원회 소관 감사대상기관 종합감사에 출석해 의원질의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지난 10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위원회 소관 감사대상기관 종합감사에 출석해 의원질의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김범수 의장은 왜?

류 대표는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신임하는 카카오맨으로 꼽혔다. NHN(네이버의 전신)이나 다음을 거치지 않고 카카오 사원에서 CEO 내정자에 오를 만큼 성과를 스스로 입증했다. 지난해 11월 그를 공동대표로 내정하며 김 의장은 “카카오가 기술기업이란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한 적임자”로 평가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사퇴를 수락한 이유는 지난해 경험이 컸다.

 불씨 조기 차단 : 지난해 8월 카카오모빌리티의 스마트호출 수수료 인상 당시 여론의 비난을 간과하다 카카오 그룹 전체가 ‘탐욕 기업’, ‘갑질 기업’이란 비판에 휩싸였다. 이번 카카오페이 사태도 그룹 전체로 번지기 전에 차단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특히, 올해 상장을 목표로 하는 자회사(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에 미칠 악영향도 고려됐을 테다.

쇄신 리더십으로 부적절 : 김 의장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 출석해 “10년간 추구한 성장방식을 버리고, 근본적 변화를 꾀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배구조 논란이 있던 케이큐브홀딩스를 개편하고, 골목상권에서도 철수하는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류 내정자가 다름 아닌 ‘먹튀’ 당사자가 되면서, 카카오 쇄신을 주도할 리더십 회복은 힘들어졌다. 카카오 측은 “여러 종합적 의견을 고려해 이사회에서 사퇴를 수락했다”며 “주주가치를 향상시키고 신뢰 회복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카카오 논란 일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카카오 논란 일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카카오, 남은 숙제는

① 새 공동대표는 누구
 : 카카오는 2014년 다음과 합병 이후부터 줄곧 공동대표 체제를 유지해왔다. 재선임 예정인 여민수 공동대표는 2018년 취임했다. ‘개발자 출신 카카오맨’ 내정자가 낙마하면서 이 자리를 누가 채울지 주목된다. 공동대표 체제를 유지할 경우, 김범수 의장이 믿을 만한 젊은 리더들 중에 후보자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난해 11월 류영준 공동대표 내정 이후, 핵심 리더들이 주요 계열사 및 싱가포르 블록체인 사업부로 대거 이동했다는 점에서 선택지가 많지 않아 보인다.

② 또 구멍난 리스크 관리 : 카카오 본사는 카카오모빌리티의 요금 인상 때처럼 이번 카카오페이 경영진의 주식 매각도 뒤늦게 알았다. 개별 자회사의 빠른 판단으로 성장을 거듭하는 카카오식 ‘성공 방정식’의 허점이 반복된 것. 카카오 내부에선 공동체 전반의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카카오 노조는 “지난 한 달간 본사의 컨트롤타워는 작동하지 않았고, 위기 대응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본사와 계열사 간 시너지와 현안을 챙기는 공동체성장센터의 역할이 커질 수 있다.

③ 내부 신뢰 회복 : 경영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카카오 직원들의 마음을 돌리는 것도 과제다. 스톡옵션을 행사한 직후 매각한 경영진과 달리 카카오페이 직원들이 보유한 우리 사주는 올해 11월부터 매각할 수 있어 상대적 박탈감과 배신감이 더 컸다. 익명을 원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카카오 내부에서 일탈 행위를 하거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경영진이 승진하는 경우가 반복되며 경영진에 대한 신망이 떨어진 상황"이라며 "류 대표의 사퇴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경영진이 책임감을 갖고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사진 카카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사진 카카오]

이날 오후 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는 사내 공지를 통해 “실망을 드려 죄송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가이드라인 정비 등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상장 준비중인 자회사가 많은 만큼 스톡옵션 행사 등 경영진의 주식 매각 관련 규정이 마련될 가능성이 크다.

카카오페이가 남긴 것

이번 논란을 계기로, 경영자의 윤리에 기댈 게 아니라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거래소는 신규 상장기업 경영진의 스톡옵션 행사를 일정 기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상장 기업 경영진이나 최대주주 등 기업 내부자가 주식을 대량 매도하면 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큰데도 현재는 아무 제한이 없어 문제”라며 “내부자의 매도 가능 물량을 일정 기준을 정해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회사를 물적 분할해 상장시킨 카카오식 덩치 키우기에 대한 지적도 다시 나온다. 김우진 교수는 “카카오페이 사례는 모회사(카카오)를 물적 분할해 ‘쪼개기 상장’을 한 단계부터 이미 주주 이익을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원용진 서강대 교수도 “결국 이번 사태는 수익성 극대화를 위해 회사를 자회사로 쪼갰다가, 경영 관리가 안 되는 상황에 이른 것”이라며 “플랫폼 기업 스스로 사회적 책임을 깨닫지 못한다면, 사회가 플랫폼 기업에 대한 감시의 수준을 더 높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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