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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용품 수리권’‘게임 본인인증 개선’…핀셋 공약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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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간 생활밀착형 공약 경쟁이 뜨겁다. 윤 후보는 9일 ‘석열씨의 심쿵약속’(이하 심쿵약속)으로 “전체 이용가 게임물은 청소년 본인인증 의무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개선하겠다”고 했다. 지난 2일 심쿵약속 시리즈를 시작한 이후 나온 네 번째 공약으로 게이머 표심을 파고든 맞춤형 제안이다. 윤 후보가 유권자 일상생활을 겨냥한 공약 제시에 박차를 가하자 이 후보도 최근 ▶미세먼지 안전망 구축(7일) ▶대중골프장 운영 건전화(8일) ▶생활용품 수명 연장 및 소비자 수리권 확대(9일) 등 연이은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공약을 내놓으며 경쟁이 가속화되는 모습이다.

이 후보의 소확행과 윤 후보의 심쿵약속은 유권자의 일상을 겨냥한다.

불붙은 여야 마이크로타겟팅.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불붙은 여야 마이크로타겟팅.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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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 시기는 민주당이 두 달 빨랐지만, 개설 취지는 공히 “국민의 삶을 바꾸는 작지만 알찬 공약”(지난해 11월 11일 이 후보), “내 삶 내 가족과 이어지는 생활 공약”(지난 7일 윤 후보)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경제 성장, 외교·안보 등 중·대형 공약 경쟁이 미뤄지는 상황에서 ‘마이크로타기팅(Microtargeting·세부 공략)’이 대선 격전장으로 부상했다.

마이크로타기팅은 세분화된 개별 유권자를 추적, 설득하는 선거 기법이다. 이 후보는 두 달간 43개의 소확행 공약을 냈고, 윤 후보는 선대위 내홍 수습 직후인 7일부터 ‘1일 1심쿵’ 기조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1996년 미국 대선 때 빌 클린턴 후보 측 전략가 마크 펜이 기업의 라이프스타일 조사를 선거에 도입, 극도로 작은 ‘이티비티(itty-bitty)’ 공약들을 개발한 게 마이크로타기팅의 시초”라며 “이후 2012년 미국 대선 당시 버락 오바마 후보가 빅데이터 분석을 접목해 효과를 입증했지만 국내에 제대로 도입된 전례는 없다”고 말했다.

과거 오바마 캠프는 대선 2년 전부터 ‘나월스(일각고래)’ ‘드림캐처(꿈 수집가)’라는 이름의 빅데이터팀을 운영했다. 이들은 소유 차량과 구독 신문, 선호 브랜드 등 유권자 성향을 드러내는 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해 선거운동에서 상당한 효과를 봤다. 경쟁자였던 밋 롬니 후보 캠프가 대선 7개월 전 급히 ‘ORCA(범고래·일각고래의 포식자)’란 이름의 대응팀을 꾸렸지만 데이터 분석·활용 면에서 밀려 패했다는 분석이 많다.

다만 지금의 소확행·심쿵약속은 정교한 빅데이터 분석이 아니라 아이디어 제안에 가깝다는 한계가 있다. 민주당 선대위 정책본부 관계자는 “지난해 9월부터 내부 공모전을 통해 쓸 만한 아이디어를 수집, 취사선택 방식으로 소확행을 만들어왔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선대위는 “TF팀에서 1차로 100여 개의 심쿵 아이디어를 냈고, 오디션 프로 방식으로 검토한 결과 현재까지 10여 개의 아이템이 확정됐다”고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생활밀착형 공약 경쟁을 불러왔다는 분석도 나온다. 비대면 선거운동 등 제한된 환경 속에서는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게 가장 유효한 전략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배철호 리얼미터 수석전문위원은 “과거처럼 거대 담론이나 대표 상품만으로는 개개인에게 만족감을 줄 수 없기 때문에 맞춤형 공약으로 특정 집단의 표심을 확보하는 전략이 불가피해졌다”면서 “미세 공약이라도 하나의 담론으로 묶여 양당의 시대정신 대결로 이어지는 게 바람직하지만 지금 그럴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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