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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400만원 스폰 알바의 절규…'위험한 해법' 밖에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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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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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디지털 성범죄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범죄로 이행되기 이전에 범죄예방의 측면에서 더욱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일 공개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연구용역 보고서에 담긴 제언이다. 연구용역을 수행한 이화여대 산학협력단 젠더법학연구소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은 ‘온라인 수색’이다. 연구소는 이에 대해 “국가가 타인의 정보기술시스템에 동의 없이 혹은 비밀리에 접근해 저장된 기록을 수집하는 것을 의미한다”라며 “쉽게 설명하자면 국가에 의한 해킹 행위”라고 설명했다.

국가에 의한 해킹은 허용돼야 할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나오는 시민들의 반응이나 법조계·학계 의견은 분분하다. ‘n번방’ 사건이나 가상공간 ‘메타버스’ 등에서 이뤄지는 신종 디지털 성범죄의 근절을 위해서는 필요한 조처라는 의견과 함께 “또 다른 인권 침해”라는 반론이 동시에 나온다.

다크웹·SNS 범죄 확산…“과거와 다르다”

연구소는 보고서에서 “과거와는 수사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짚는다. 특정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접속할 수 있는 웹사이트 ‘다크 웹(Dark Web)’이나 암호화 특징을 가진 텔레그램 등 일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의 온라인 범죄는 적발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현장에 남겨진 흔적이나 단서를 토대로 범인·증거를 찾는 전통적인 수사기법으로는 온라인 신종 범죄에 대응할 수 없다는 게 연구소 설명이다.

사이버 범죄 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경찰관은 국가의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어린 학생이 피해자였던 ‘딥페이크(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특정 인물의 얼굴을 합성하는 기술)’ 영상이 SNS에서 공유된 사건을 수사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피해자는 심각한 고통을 호소했고, 비슷한 류의 사건들이 비일비재했었다”라며 “피해자 보호 및 유사사례 예방을 위해서는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지난해 9월 시행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는 ‘온라인 그루밍(길들이기)’ 등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신분 비공개·위장 수사’를 허용하는 특례 규정이 마련됐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윤정숙 박사는 이를 언급한 뒤 “이를 통해 길이 열렸다고 보이며, 큰 틀에서의 온라인 수색 도입에 긍정한다”고 했다. 이어 “디지털 공간 내에서 이뤄지는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사실상 온라인 수색 이외 직접적·물리적 수색 방법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 2020년 3월25일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에서 열린 'n번방 사건 관련자 강력처벌 촉구시위 및 기자회견'에서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뉴스1

지난 2020년 3월25일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에서 열린 'n번방 사건 관련자 강력처벌 촉구시위 및 기자회견'에서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뉴스1

“개인의 모든 것이 사찰당할 위험성”

온라인 수색 허용은 개인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검찰 출신 김종민 변호사는 “온라인 수색을 허용하는 것은 한 개인의 모든 것을 사찰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강제처분은 최후의 수단으로, 목적의 달성에는 필요 최소한의 조치만 허용돼야 하는 게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이라며 “온라인 수색은 개인의 모든 정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과잉금지의 원칙이 위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악’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근우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온라인 수색에 대해 “디지털 성범죄라는 한 부분이 아니라 전 방위에서 개인을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게 하는 근거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라며 “신종 디지털 성범죄가 나쁘다는 이유에서 국가가 또 다른 악을 만들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가인권위원회 모습. [중앙포토]

국가인권위원회 모습. [중앙포토]

“더 큰 법익 고민해야할 시점”

연구소는 온라인 수색에 대한 단서로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과 충돌할 우려를 내포하므로, 그 요건과 절차를 정밀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라며 사회적 논의가 선행돼야 함을 전제했다. 인권위는 보고서에 대해 정책 권고 관련 참고자료 중 하나라고 했다.

성범죄 사건을 다수 다룬 이은의 변호사는 “불법을 찾아낸다는 명목으로 검열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소지도 있지만, 범죄를 예방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도 있다”라며 “온라인 수색이 과연 헌법적 가치에 맞는지 또는 상충하더라도 더 큰 법익이 무엇일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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