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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계보로 톺아본 사회학 100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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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0호 21면

한국 사회학의 지성사 1~4

한국 사회학의 지성사 1~4

한국 사회학의 지성사 1~4
정수복 지음
푸른역사

1929년 출간 당시 독일뿐 아니라 서구 지성계에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기념비적 저서가 있다. 칼 만하임의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 20세기 이데올로기의 난투장에서 살아남아 지금도 서구 사상사의 고전으로 꼽힌다.

이 명저에 한국인 학자가 인용(1936년 영어판)된 걸 아시는지. 칼 마르크스, 막스 베버, 게오르그 짐멜 등 거장들과 나란히 ‘하경덕’이란 이름이 등장한다. 1930년 『사회 법칙』이란 제목으로 출간된 하경덕의 하버드대 박사(1928년) 논문을 칼 만하임이 참고문헌에 올린 것이다.

20세기 초 서양 고전 사회학의 거장이 인용했던 한국인 사회학자, 이후 21세기에 이른 지금까지 한국의 사회학은 어떤 지적 전통을 쌓아왔을까. 『한국 사회학의 지성사』는 사회학자 정수복이 한국 사회학 100년의 계보학을 정리한 책이다. 10년에 걸친 작업이 원고지 7300매 분량, 총 네 권의 묵직한 대작을 낳았다.

저자는 유럽 사회학이 한반도에 상륙한 시기를 1906년으로 본다. 일본을 통해 사회학을 수입한 이는, 뜻밖에도 신소설 작가 이인직이다. 일본 학자의 책을 소개한 정도였지만, 잡지 ‘소년 한반도’에 5회에 걸쳐 ‘사회학’이란 신학문을 소개했다. ‘사회학’은 다른 명칭이 될 수도 있었다. ‘시일야방성대곡’의 장지연은 중국 학자를 인용해 ‘군학(群學)’이란 이름으로 사회학 창시자 오귀스트 콩트를 언급하기도 했다.

『한국 사회학의 지성사』 가 대표적 학자로 소개하는 11명. 이 책은 이들의 학문적 업적을 각자의 삶과 시대를 아울러 조명한다. [사진 푸른역사, 중앙포토]

『한국 사회학의 지성사』 가 대표적 학자로 소개하는 11명. 이 책은 이들의 학문적 업적을 각자의 삶과 시대를 아울러 조명한다. [사진 푸른역사, 중앙포토]

한 세기 전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이 불러낸 ‘사회학’은 역사의 격동 속에서 굴절과 좌절을 겪는다. 식민체제에서 조선의 지성은 질식했고, 해방정국과 전쟁 속에 지식사회도 분단됐다. 북으로 간 걸출한 학자들도 있지만, 이 사회주의 사회에서 ‘사회학’은 불온하거나 무용했다. 한국의 사회학은 자신의 역사와 단절된 채, 1946년 미군정 때 설립된 서울대에 ‘학문’보다는 ‘학과’로 이식된 혐의를 받는다. 당시 실증주의 사회학은 ‘미국의 학문’으로 자부심이 높았고, 이후 사회학계 주류는 미국 유학파로 경도된다.

이렇게 한국 사회학의 뿌리와 뿌리 뽑힘, 그럼에도 끈질긴 가지 뻗기 등 100년의 분투를 다룬 1권 『한국 사회학과 세계 사회학』은 사마천의 ‘사기’에 비유하면 ‘본기(本紀)’ 성격이다. 이어 ‘열전(列傳)’ 격으로 대표적 학자 11명을 2~4권에 소개한다.

2권 『아카데믹 사회학의 계보학』은 제도권 혹은 강단 사회학의 창설자들을 다룬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설립한 이상백, 대구·경북 사회학을 주도한 배용광, 사회발전론의 대가 김경동 등 5명이 주인공. 주로 미국식 실증주의 사회학을 수용하고 초창기 학계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한 이들이다.

이어 『비판사회학의 계보학』의 세 학자는 일반인에게도 낯익다. 여성사회학의 대모 이효재, 민중사회학을 개척한 한완상, 민중·민족사회학자로 변혁운동에 실천적으로 개입했던 김진균 등이다. 끝으로 『역사사회학의 계보학』에선 구도적 자세로 가족·농촌사회학에서 고대사까지 방대한 업적을 남긴 최재석, 대중적 저술로도 널리 알려진 민족주의 사회학의 신용하, 기독교의 요람에서 도덕적 사회주의를 모색한 박영신 등 3명을 다룬다.

저자는 11명의 학문뿐 아니라 그 삶과 시대도 함께 다뤘다. ‘사람에 대한 논의가 빠진 역사는 주체가 없는 역사 서술’이란 이유에서다. 학문적 업적을 개인의 삶과 역사적 배경 속에서 풀어내는 평전 형식을 취한 덕분에 방대한 분량에도 대하소설처럼 쉽게 읽힌다. ‘어느 기관에도 소속되지 않은 독립적 사회학자’를 자부하는 저자는 특정 학파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이방인의 시선으로, 되레 ‘특정 학파’가 손대기는 어려웠던 한국 사회학 100년의 역사를 과감하게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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