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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디지털 세상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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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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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상현 오터레터 발행인

박상현 오터레터 발행인

요즘 미국이 혼란스럽다. 델타 변이에 오미크론 변이까지 겹쳐 코로나 확진자 숫자가 지난해 이맘때를 넘어서며 부스터샷 접종을 열심히 권장하고 있지만 첫 백신도 맞지 않고 버티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심지어 트럼프 전 대통령까지 “나도 부스터샷을 맞았다”며 홍보하고 나섰으나 그에게 돌아온 건 오히려 지지자들의 야유였다.

이들은 왜 백신을 거부할까. 기존 매체를 믿지 않고 소위 대안언론을 찾는 사람들이 백신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믿고 소셜미디어에서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는 트럼프 지지자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트럼프가 백신을 권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을 보면 가짜뉴스와 음모론의 힘이 트럼프의 영향력을 압도한 모양이다.

최근 미국의 한 방송사에서 1년 전에 일어난 트럼프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난입사건을 재조명하면서, 그 과정에서 사망한 한 여성의 이야기를 심층 보도했다. 취재진은 그 여성이 단 몇 개월 전만 해도 트럼프 지지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랬던 그 사람을 트럼프의 당선을 간절히 바라는 열성 지지자로 바꿔놓은 건 “민주당과 진보세력 중에는 아동성애자 그룹이 있고, 그들을 저지하라고 신이 보낸 사람이 트럼프”라는, 큐어넌이라는 집단이 만들어낸 황당한 음모론이었다.

취재진과 가족이 사망한 여성이 남긴 디지털 기록을 살펴본 결과, 그가 이 음모론을 접하고 과격 지지자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4시간이었다. 기성 언론을 완전히 불신하고 음모론에 취약한 사람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기는 일이 그렇게 쉽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백신을 불신하게 만드는 일도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