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해, 피해자가 「입증」 안해도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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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입법 예고된 「환경오염피해 분쟁조정법 시행령」>
최근 들어 공해피해로 인한 분쟁은 크게 늘고 있으나 경제적 약자인 공해피해자들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은 거의 막혀 있었다.
현행 제도상 민사소송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나 많은 비용과 과학적 피해입증자료 제시의 어려움, 긴 소송기간 등 때문에 엄두를 내기 어려운 탓이었다.
환경처가 이번에 입법 예고한 「환경오염피해분쟁조정법 시행령」안은 환경처와 각 시·도에 준 사법적 권능을 가진 「환경분쟁조정위원회」를 신설해 억울한 피해를 손쉽게 구제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새 제도는 빈발하는 집단민원을 제도권에서 수렴해보겠다는 뜻도 담고 있다(중앙일보 10월11일자 19면 보도).
내년2월부터 시행될 새 제도는 그동안 피해자가 져야 했던 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책임을 거의 면제해 주고 조정위원회가 증거조사 등 입증을 대행하는 한편 웬만한 사안이면 10만∼30만원정도의 적은 수수료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간소화한 것이 골자다.
종래에도 환경보전법에 의한 「조정위원회」가 형식적으로 설치되어 있었으나 신청단계에서부터 복잡한 입증자료를 요구하고 조정력도 미약해 지난10년간 10건의 신청이 있었을 정도로 유명무실했다.
새 조정제도의 내용과 신청절차 등을 알아본다.
◇조정제도=지난8월 새로 제정된 「환경오염피해분쟁조정법」과 이번에 마련된 그 시행령안은 공해분쟁에 대해 알선 및 조정·재정의 3가지 단계별 해결절차를 마련, 복잡한 민사재판을 하지 않고도 피해를 구제 받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알선은 위원회의 알선위원이 양당사자를 불러 사건의 공정한 해결을 시도하는 초보적 단계며 조정은 위원회의 조정위원 3명이 서면으로 배상책임유무, 배상액에 대한 조정안을 작성해 30일 이상의 기간을 정해 수락을 권고하는 제도다)이 권고에 대해 당사자가 기간 내에 수락거부의사를 표시하지 않으면 조정안과 같은 내용의 합의가 성립된 것으로 간주된다.
위원회는 수락권고와 함께 조정안을 공표 할 수 있다.
마지막 단계인 재정은 상당한 강제력을 가지는 준사법적 절차로 위원회의 재정위원 5명에 의해 재판과 유사한 공개 심문절차 및 전문기관 감정, 참고인 진술 등이 행해진다. 판결문에 해당하는 재정 결정서를 송달 받은 뒤 60일 이내에 이에 불복하는 소송을 제기하지 않거나 기존 소송이 취하되면 결정서대로 합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간주된다.
조정·재정절차에 있어서 특히 새로운 점은 소송에서와 달리 공해피해자에게 입증책임을 지우지 않고 위원회가 피해감정·인과관계규명 등 과학적 증거조사를 맡아 큰 걸림돌을 제거한 것이다.
재정은 환경처에 설치되는 중앙조정위원회가 전담하며 각 건·도의 지방 조정위는 알선·조정을 맏는다. 위원회는 환경전문가·법률가·환경공무원 등으로 구성되며 중앙위원회에는 증거조사 등을 맡을 전문 심사관 9명을 둔다.
◇신청절차=피해자들이 비용부담 때문에 벽에 부닥치지 않도록 소송보다 훨씬 저렴한 수수료만 내도록 하고 있다. 알선수수료는 일괄적으로 1만원이며 배상요구액 5백만원인 경우 조정 신청료는 1만원, 재정 신청료는 2만원이고 5천만원 요구사건이면 조정료가 7만7천원, 재정료가 15만원이다. <표 참조>
분쟁조정과정에서의 현지출장비용·참고인 출석비용 등 각종 절차비용은 국가예산에서 부담한다. 다만 전문기관 감정비용만은 신청인이 예납해야 한다.
피해자는 알선에서부터 단계를 밟아갈 수도 있고 조정·재정을 바로 신청할 수도 있다. <김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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