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돈 줄게" 말듣다 땅치고 후회…대학들 정원 감축 버티는 이유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뉴스 ONESHOT’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남윤서 사회정책팀장의 픽: 대학 혁신지원사업 

지난 11월 29일 전국대학노조 부산경남본부 관계자들이 부산시청 앞에서 지방대 붕괴에 대한 근본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송봉근 기자

지난 11월 29일 전국대학노조 부산경남본부 관계자들이 부산시청 앞에서 지방대 붕괴에 대한 근본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송봉근 기자

2021년을 불과 이틀 남긴 12월 29일, 교육부가 대학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정원을 스스로 줄인 대학에는 재정 지원이라는 ‘당근’을 주고,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하위 대학은 정부 지원을 끊는 ‘채찍’을 내린다는 겁니다. 학생 모집에 허덕이는 대학은 물론, 모집에 어려움이 없는 서울권 대학들에도 ‘정원을 줄여라’는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교육부의 ‘대학 혁신지원사업’ 규모는 연간 1조1970억원(일반대 7950억원, 전문대 4020억원)에 달합니다. 257개 대학ㆍ전문대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3년간 지원을 받습니다.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대학 1곳당 연42억원 정도를 받게 됩니다.

정원 못채우면 ‘채찍’, 스스로 줄이면 ‘당근’

그런데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의 학생 미충원 문제가 현실화하자 교육부가 재정 지원에 일종의 ‘조건’을 붙였습니다. 대학에게 2022년 5월까지 ‘적정규모화’ 계획을 제출하게 하고, 2023년에는 ‘유지충원율’을 조사해서 학생을 제대로 채우지 못한 곳에는 지원금을 끊는다는 겁니다. 권역별로 충원율 하위 30~50% 대학이 타깃입니다. 학생을 다 채우지 못하는 대학은 정원을 줄여야 충원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최은옥 교육부 고등교육정책실장이 12월 29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후속 (전문)대학혁신지원사업 기본계획 시안' 등 관련사항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최은옥 교육부 고등교육정책실장이 12월 29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후속 (전문)대학혁신지원사업 기본계획 시안' 등 관련사항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충원율 걱정이 없는 대학을 위한 정원 감축 방안도 내놨습니다. 교육부는 선제적으로 정원을 줄인 대학에는 일반대 기준 최대 60억원까지 인센티브를 준다고 했습니다. 정원 감축의 고통 분담을 하는만큼 정부가 돈으로 보상해주겠다는 말로 들립니다.

인센티브 몇십억 받자고 '인서울'大 정원 줄일까  

교육부의 ‘당근과 채찍’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먼저 당근부터 보면 대학을 유도하기엔 별로 매력적인 미끼가 되지 못할거란 예상이 많습니다. ‘최대 60억’이라고 했지만 대체 얼마나 정원을 줄여야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도 불명확합니다.

학생들이 선호하는 소위 ‘인서울’ 대학들이 몇십억을 받고자 정원을 크게 줄일까요. 예를 들어 입학정원 3000명, 등록금 1000만원인 대학이 1%인 30명을 줄인다고 하면 연간 등록금 수입 3억이 줄어듭니다. 졸업까지 4년이라 하면 12억이 줄어드는 셈입니다. 한번 줄이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정원을 줄여서 당장 몇십억을 얻겠다는 대학이 많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미 과거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으려 정원을 줄인 대학들은 땅을 치며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전국대학노동조합,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등이 지난해 5월 부산시청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지방대 붕괴 위기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전국교수노동조합, 전국대학노동조합,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등이 지난해 5월 부산시청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지방대 붕괴 위기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신입생 미달 사태를 겪는 지방대는 어떨까요. 정부 재정 지원 의존도가 높은만큼 어쩔 수 없이 채찍을 피하기 위해 정원을 줄여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줄이냐는 겁니다. 대학은 학과 하나를 통폐합하는 데에도 큰 진통을 겪습니다. 학과에 적을 두고 있는 교수와 학계, 학생, 동문들까지 나서서 갈등을 빚습니다. 그런데 교육부 명에 따라 갑자기 한꺼번에 정원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됐으니, 대학마다 커다란 혼란은 불가피합니다.

대통령 임기 4달 남기고 뒷북 ‘대학구조조정’

학생 수 급감은 예고된 미래였습니다. 현 정부는 이 사태를 방치하다가 대통령 임기를 불과 넉달 남긴 시점에 대학 구조조정 계획을 던졌습니다. 대학들은 ‘조금만 버텨보자’고 판단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현 정부가 집권 초기 교육 정책을 뒤집어 엎었던 것처럼, 다음 정부에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