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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민석의 Mr.밀리터리

북한과 충돌은 피했지만 핵 위협 더 커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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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민석
김민석 기자 중앙일보 전문기자
1년 전인 2021년 1월 1일 오전 인천 강화군의 한 해안 초소에서 해병대 2사단 장병들이 경계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사진 해병대]

1년 전인 2021년 1월 1일 오전 인천 강화군의 한 해안 초소에서 해병대 2사단 장병들이 경계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사진 해병대]

문재인 정부 안보정책, 무엇을 남겼나

북한 물리적 도발하지 않은 건 성과
북핵·미사일 전력은 급속도로 증강
미·중 양다리 외교로 한미동맹 이완
국군 전투력 약화·기강해이 숙제 남겨

2021년도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2017년 5월 10일 출범한 지 4년 8개월가량 지났다. 문 정부의 안보정책은 한반도 운전자론, 남북관계 개선과 종전선언, 북한 비핵화 등에 올인했다. 그러나 임기 말인 지금 돌아보면 달성한 목표는 거의 없다. 한 가지 성과라면 북한의 물리적 도발은 없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엔 북한의 천안함 공격과 연평도 포격 도발이 있었다. 박근혜 정부 때엔 북한이 비무장지대에 목함지뢰를 몰래 매설해 우리 장병을 다치게 했고, 전방에서 고사총 사격을 했다. 당시 북한은 준전시 상태를 명령한 적도 있었다.

남북, 북미회담이 북한 도발 억지

 문재인 정부 동안 북한이 도발하지 않은 것은 분명히 성과라면 성과다. 2018년 2월 평창 겨울 올림픽에서부터 시작한 남북 관계 개선과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북한 비핵화를 위한 북ㆍ미 정상회담 등에 기인한 효과로 볼 수 있다. 북한 도발을 차단하기 위한 유인책이었다면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북한 비핵화 동력은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회담 파행으로 끝났지만, 김 위원장이 한ㆍ미의 눈치를 보며 적극적으로 도발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9ㆍ19 군사합의를 체결해 북한 도발을 억지한 것도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9ㆍ19 군사합의는 여전히 불안한 합의다. 북한이 합의를 어기고 있는 데다 후속 조치에도 나서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 합의로 한국군은 연대급 이상 훈련을 중단해 전투력이 크게 저하됐다. 또 한ㆍ미 연합훈련은 축소 또는 건너뛰고, 그 명칭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한국군을 월드컵에 비유하면, 본선 앞둔 대표팀이 전원 시범경기가 아니라 3∼4명이 모여 소규모 연습을 하는 식이다. 반대로 북한은 전군 차원에서 훈련했다. 지금도 동계훈련 중이다.

방치된 북핵과 증강된 미사일 위협

 북한 핵ㆍ미사일의 획기적 증강을 막지 못한 것은 엄청난 패착이다. 북한 핵과 미사일은 이번 정부에서 중대한 위협으로 변했다. 어쩌면 북한은 문재인 정부가 심혈을 기울인 남북관계 개선을 역이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 정부의 남북관계 희망 아래 그늘진 빈틈을 파고든 것이다. 김정은은 겉으로는 비핵화 협상과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는 척하면서, 뒤로는 핵ㆍ미사일 개발에 전력투구했다. 문 정부가 그런 시간을 벌어준 셈이 됐다. 그 결과 남북의 전략적 군사력 격차는 커졌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 25일 VOA(Voice of America) 인터뷰에서 "한국 군사력이 (북한보다) 많이 뒤처져 있다”며 “(북핵ㆍ미사일에 대한) 전략타격 능력과 통합미사일 방어체계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북한의 핵ㆍ미사일은 문 정부 들어 경이적으로 진화했다. 2017년 9월 수소탄으로 6차 핵실험을 성공한 북한은 핵탄두를 본격 생산했다. 미 중앙정보국(CIA) 등 전문기관의 분석이다. 미 랜드연구소는 북한이 핵탄두 67∼116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2027년에는 151∼242개를 가질 것으로 지난 4월 전망했다. 최근에도 북한이 영변 원자로를 다시 가동해 플루토늄을 추출하고, 우라늄 농축시설도 확장하고 있다는 인공위성 영상이 공개됐다.
 북한은 현 정부 동안 가장 많은 미사일을 발사했다. 다양한 미사일도 개발했다. 단ㆍ중거리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다 잠수함용 탄도미사일(SLBM)과 극초음속 미사일까지 발사했다. 북한은 문 대통령 취임 나흘 뒤인 2017년 5월 14일부터 미사일을 30여 회, 50여 발 발사했다. 이명박 정부 때의 3배, 박근혜 정부의 6배다. 미국을 직접 겨냥한 ICBM은 유사시 미군의 한반도 지원 차단과 미국과의 군축협상용이다. 극초음속 미사일과 단거리 미사일(대구경 방사포 포함) 4종은 우리 군이 요격하기에 쉽지 않고 일부는 핵탄두 장착도 가능하다.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 SLBM을 탑재한 신포급 잠수함은 내년에 실전 배치될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급속하게 팽창한 북한 핵ㆍ미사일 위협은 이제 현실이다. 한ㆍ미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걱정이 크다. 과거 나토가 소련의 핵 위협을 우려했던 상황이 한반도에서 재연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서울을 방어하기 위해 뉴욕을 포기할 수 있을지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런 우려에 미국의 확장억제력 강화, 나토식 핵 공유와 미 전술핵무기 한반도 재배치, 한국 핵무장 등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는 흉측하고 무시무시한 우주 괴물 에일리언(북핵)이 인간 몸속에서 배양되도록 방치한 셈이다.

문재인 정부의 안보정책 평가

문재인 정부의 안보정책 평가

급격하게 흔들린 한미동맹

 바이든 미 대통령이 주한미군 병력을 현 수준으로 유지하는 ‘2022년 국방수권법(NDAA)’을 지난 27일 서명했지만, 문 정부 내내 한ㆍ미 관계는 흔들렸다. 발단은 문 정부의 통북(通北)ㆍ친중(親中)ㆍ탈미(脫美)ㆍ반일(反日) 기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과 종전선언에 트럼프 대통령을 활용하려 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통 큰 비핵화로 권위를 세우려 했다. 김 위원장은 핵전쟁을 불사하는 벼랑끝 전술을 먼저 구사한 뒤, 평화공세로 문 대통령을 돌다리 삼아 트럼프와 핵군축 협상을 시도했다. 세 사람의 동상이몽은 하노이 회담에서 깨졌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임기 말인 지금까지 종전선언에 집착하고 있다.

 문 정부의 미ㆍ중 양다리 외교는 동맹 훼손에 중요 요인이었다. 2017년 10월 발표한 정부의 사드 3불(不) 정책(사드 추가 배치 배제, 미국 미사일 방어체제 불편입, 한ㆍ미ㆍ일 군사동맹 금지)은 전형적인 중국 눈치 보기였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 반중연대(인도-태평양전략)를 구축 중이었다. 그런데 정부는 인도-태평양전략에 참여를 주저했다. 이 전략의 핵심인 4개국 협력체(쿼드ㆍQUAD)에 대한 정부 입장은 지금도 불투명하다. 미국과 중국 사이 줄타기 외교의 결과다. 이에 따라 미국은 한국을 의심했고, 중국은 한국을 무시했다. 이런 가운데 반일정책에서 비롯된 한ㆍ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는 한미동맹 갈등의 하이라이트다. 일본과 안보협력은 유사시 미군 증원과 북한 미사일 대응에 필수다.
전시작전권(전작권) 조기 전환도 갈등 이슈였다. 문 대통령은 임기 안에 전작권을 가져오겠다고 했지만,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갈 길이 더 남았다”고 했다. 현재로썬 한국군 지휘로 북핵에 대응하는 건 어렵다.

군의 정치화, 약화한 전투력

문재인 정부 동안 군 대비태세는 크게 취약해졌다. 군의 전투력은 무기가 기본이지만, 훈련과 기강 그리고 사기에 좌우된다. 그런데 군 인사가 정치에 휘둘리자 기강이 해이해졌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육군 중장을 2단계를 뛰어 육군참모총장(대장)에 앉히면서 경험 많은 군 수뇌부를 순식간에 제거했다. 군 의사결정 시스템에 공백이 생기자 정치가 판을 쳤다. 문제가 많은 남북 9ㆍ19 군사합의가 제대로 검증받지 않고 나온 이유다. 그때 정치에 순응한 군 수뇌부는 국방부 장관 등으로 승승장구했다.
 군 인사 난맥상은 더 심각하다. 과거에는 육ㆍ해ㆍ공군 본부에서 장성 진급심사를 마친 뒤 진급 정원의 120∼130%를 추려 서열을 매겨 청와대에 보냈다. 합격권에 든 진급 대상자가 인사검증에 문제가 있을 땐 그다음 순위가 올라간다. 그런데 현 정부에선 원칙이 무너졌다고 한다. “진급하려면 청와대 행정관 다리라도 잡아야 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단적인 사례가 2019년 1월 청와대 인사수석실 행정관이 부적절하게 국방부 인근에서 당시 육군총장과 만난 사건이다. 당시 언론은 행정관이 육군총장과 만나 인사청탁을 하려고 했다고 비판했다.

 군 인사가 혼탁해지니 강한 훈련과 군 기강보다 줄 대기와 눈치 보기가 성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계망이 연거푸 뚫리고 군내 성추행 사건과 은폐가 반복되는 이유다. 군대가 훈련은 하지 않고 기강이 무너지니 사기도 자연 떨어진다. 유사시에 어찌 싸울지 걱정이다. 군대가 군대답지 못하게 됐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온다. 본분을 망각하고 정치화된 군이 안보 대비태세를 회복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더구나 북한은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도발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