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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축구실력 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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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임장혁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임장혁 정치부 차장·변호사

임장혁 정치부 차장·변호사

지난해 이맘때 ‘윤석열의 축구실력’이라는 글을 실었다. 기대 반(半)이었던 그 실력이 공개되고 있다. 아직 승부에 큰 영향을 주는 기세나 운까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중동식 침대축구를 지향한다는 점은 선명해졌다. 간혹 잡은 볼은 미드필더격인 ‘핵관(핵심관계자)’ 사이에서 돌리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토론 거부는 윤석열식 침대축구를 상징하는 전략이다. 자신이 밝힌 이유는 참신하다 못해 충격적이다. “토론을 하게 되면 결국은 싸움밖에 안 난다. 국민 입장에서 봤을 때 정부의 공식적인 최고 의사결정권자를 뽑고, 그 사람의 사고방식을 검증해나가는 데 정책토론 많이 하는 게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25일 ‘삼프로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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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못한 경쟁자들은 “정치인은 주권자에게 자신의 철학과 비전을 제시하고 동의를 얻어야 할 의무가 있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후보들간 토론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협의하고 조정해가는 민주주의의 과정”(심상정 정의당 후보) 등 교과서적 가르침을 건네고 있다. 그러자 나온 반응. “나와 토론하려면 대장동 특검부터 받으라.”(27일)

토론이 아니더라도 정책 현안에 대한 입장을 요구받을 때마다 체력의 한계를 드러내는 윤 후보를 볼 때 다가오는 건 실망감이 아니다. ‘한 인간에게 삼라만상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이 제도가 과연 정당한가’라는 의문이다. 역설적이지만 어떤 질문이든 감정없는 표정으로 막힘없이 답을 내는 이재명 후보를 볼 때도 같은 의문이 든다. 그에겐 ‘진짜 대통령만 되면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답과 답 사이의 모순은 확인하고 하는 말일까’ 등등의 의심도 덧붙는다.

안타깝게도 두 후보는 자신을 옭아매는 제도를 바꾸는 일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제도를 바꾸고 싶지 않다면 삼라만상에 응전해야 하는 게 대통령이 되려는 자의 숙명이다. 그 맞은 편엔 “저 후보만은 뽑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다음 5년을 맡길 대통령을 골라야 하는 60% 이상의 국민이 있다.  전대미문의 위기에 처한 국민이 두 사람에게 경제·정치·사회 모든 이슈에 대한 최소한의 입장과 진정성을 확인하겠다는 건 권리행사를 넘어 절박함의 표출이다.

서로 반갑지 않을 테니 얼굴을 맞대고 싶지 않은 심사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그건 윤 후보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댓글창만 열어 봐도 국민의 명령이 들린다. 토론하라. 질문에 답하라. 그리고 한 가지. 높은 정권교체 여론이 홈그라운드 응원처럼 느껴져도 드러누운 채론 골을 넣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