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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같은 생일인데 너무도 다른 삶, 그래도 40년 지기 친구

중앙일보

입력

중앙일보 디지털 서비스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인생 사진'에 응모하세요.
기억해야할 일이 많은 12월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기억과 추억,
그리고 인연을
인생 사진으로 찍어드립니다.
아무리 소소한 사연도 귀하게 모시겠습니다.

'인생 사진'은 대형 액자로 만들어 선물해드립니다.
아울러 사연과 사진을 중앙일보 사이트로 소개해 드립니다.
사연 보낼 곳: https://bbs.joongang.co.kr/lifepicture
              photostory@joongang.co.kr
▶10차 마감: 12월 31일

같은 생일이지만 너무도 다른 삶을 살아왔다는 40년 지기 두 친구, 극과 극은 통하듯 둘은 너무 달라서 서로 통하나 봅니다.(왼쪽 이연승 오른쪽 허유선)

같은 생일이지만 너무도 다른 삶을 살아왔다는 40년 지기 두 친구, 극과 극은 통하듯 둘은 너무 달라서 서로 통하나 봅니다.(왼쪽 이연승 오른쪽 허유선)

저는 미국에 사는 다섯 아이의 엄마입니다.

미국 남편과 아이 다섯인데
이제 막내가 대학에 갔어요.

한국을 떠난 지
30년이 훌쩍 넘었네요.
이번 겨울엔 특별히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나
저와 생일이 같은 친구 이연승과 같이
차도 한잔할 수 있겠네요.

같은 생일의 친구는
저와 아주 다른 삶을 살고 있어요.

고등학교 일학년을 같이 보내고,
저는 이과로 이 친구는 문과로 서로 갈렸죠.

이후 대학에서 다시 만났고,
이 친구는 동양으로,
저는 서양으로 유학을 갔죠. 하하.

친구는 아직 싱글이고 대학교수이며,
저는 다섯 아이의 엄마이고 전업주부입니다. 하하.

모처럼의 귀국길,
생일만 같고 아주 다른 삶을 사는 이 친구와
인생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요?
저도 한번 응모해 봅니다.
참 생일이 12월 28일입니다.
Sincerely
허유선 올림


12월 28일이 생일인 것만 빼고 서로 너무 다른 삶을 산다는 두 친구, 아무리 다른 삶을 살아도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해주는 친구라는 사실은 틀림없습니다.

12월 28일이 생일인 것만 빼고 서로 너무 다른 삶을 산다는 두 친구, 아무리 다른 삶을 살아도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해주는 친구라는 사실은 틀림없습니다.

우선 생일이 같은 두 친구를 축하할
케이크를 마련했습니다.
숫자 1, 2, 2, 8로 된 초도 꽂았습니다.

마침 이 사연이 나가는 날이 생일이라서요.

케이크를 들고 카메라 앞에 선 두 친구가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둘이 이런 사진을 찍는 게 난생처음입니다.”

두 친구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난
40년 지기입니다.

하지만 둘도 없는 친구이면서도
참으로 엇갈린 삶을 살았습니다.
그랬으니 누구 보다 친한 친구이면서도
제대로 된 사진 한장 여태 찍지 못한 겁니다.

허유선 씨가 들려준 둘의
엇갈린 삶은 이러합니다.

“경기여고 1학년 때 만나
같은 생일이라 더 친밀감을 느꼈어요.
그런데 2학년이 되면서 문과 이과로 갈리었죠.
이때부터 별로 만날 기회가 없었어요.
공부 잘하던 연승이는
한 번에 서울대를 갔고요.
저는 재수해서 같은 학교에 겨우 갔어요.
그렇게 대학에서 다시 만났죠.

이후 연승이는 대만으로 유학을 갔고요.
저는 동생이 먼저 결혼하는 바람에
부모의 강권으로 쫓기다시피
외국에 나가야 할 상황이었어요.
당시 그런 시절이었잖아요.
이때 연승이를 찾아 대만으로 가려 했으나
하필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 갔죠.
이때 까지만 해도 편지를 주고받았어요.
제가 결혼하고 애를 낳으면서
연승이랑 연락이 끊어졌어요.
제가 이후 줄줄이 제왕절개로만
애 다섯을 낳고 살았죠. 하하.

2013년엔가 연승이가
어찌 사는지 너무 궁금한 거예요.
한국에 온 김에 서울대에 전화해서
종교학과 졸업생 이연승을 찾는다고 했죠.
마침 전화 받은 조교가
자기 교수님인 거 같다는 거예요.
공항에서 빌린 제 전화번호를
조교에게 남겨 놓았는데
전화가 안 오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연락처 전달이 안 되었더군요.
미국으로 돌아가서 연승이에게 편지를 썼죠.
그래서 연락이 다시 이어진 겁니다.

우린 정말로 생일만 같을 뿐이지
달라도 너무 달라요.
이렇게 다른데도
나를 제일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친구가
바로 이 친구예요.”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친구, 서로를 품는 마음만큼은 똑같았습니다.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친구, 서로를 품는 마음만큼은 똑같았습니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있듯
둘은 너무 달라서 서로 통하나 봅니다.

다른 듯 같은 두 친구가
서울 정동의 옛 경기여고 터를 찾았습니다.
학교는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겼고
빈터만 덩그렇습니다.
하필 그 터에서 문화재를 발굴 중이라
안으로 들어 가 볼 수 없었습니다.

둘이 함께 다녔던 옛 경기여고 터를 찾았습니다. 학교는 이전했고 빈터만 덩그렇습니다만, 둘이 함께했던 추억은 여태도 거기에 남았습니다.

둘이 함께 다녔던 옛 경기여고 터를 찾았습니다. 학교는 이전했고 빈터만 덩그렇습니다만, 둘이 함께했던 추억은 여태도 거기에 남았습니다.

둘은 닫힌 철문 사이로나마
옛 흔적을 열심히 더듬었습니다.
“어머 저기 회나무( 회화나무인 듯 보입니다만,
그들은 당시에 그렇게 불렀답니다)는 그대로 있네.
저 나무 앞에 있던 ‘책 읽는 소녀상’은 옮겼던데….
여기 수위실은 그대로네.
여기 뒤에 수영장이 있었잖아.
다들 여기서 수영 배운 터라
경기여고 출신은 물에 빠져 죽는 일은 없다고 했지.”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두 친구가
기억하는 학교는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이 둘의 40년 전 추억이 고스란히 배어 있을 옛 경기여고 터를 찾아가는 길입니다.

이 둘의 40년 전 추억이 고스란히 배어 있을 옛 경기여고 터를 찾아가는 길입니다.

이들의 추억 소환은 줄곧 이어집니다.
“이 길로 나가면 덕수궁 돌담길과
배재고등학교가 이어지잖아요.
그런데 그쪽으로는 거의 안 다녔어요.
우리가 지나가면 돈, 회수권을 달라며 보채는
배재 할아버지라는 양반 때문에 안 갔어요.
평상시 안 다녔지만, 청소는 제법 했어요.
경기여고 특징이 청소 당번 없이
모두가 한꺼번에 청소하는 거예요.
음악 흘러나오는 청소시간이면
앞치마 두르고 나와서
덕수궁을 한 바퀴 돌며 휴지를 주웠죠.”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두 친구,
함께한 추억만큼은 같았습니다.
그 시절 쌓은 추억이 같기에
지금껏 각자 갈 길로 가 있어도 친구이겠죠.

사진 찍는 도중
허유선 씨가 마침 생각났다며 말했습니다.

둘은 그저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40년 지기니까요.

둘은 그저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40년 지기니까요.

“참, 우리 같은 거 하나 있어요.
둘 다 젓가락질 못 해요.
아직도요. 하하”
이 말끝에 순간 둘은 한참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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