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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살 부모님 소원은 '청바지 입고 고궁 나들이'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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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디지털 서비스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새해에도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는
이어집니다.
'인생 사진'에  응모하세요.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기억과 추억,
그리고 인연을 인생 사진으로 찍어드립니다.
아무리 소소한 사연도 귀하게 모시겠습니다.

'인생 사진'은 대형 액자로 만들어 선물해드립니다.
아울러 사연과 사진을 중앙일보 사이트로 소개해 드립니다.
사연 보낼 곳: https://bbs.joongang.co.kr/lifepicture
               photostory@joongang.co.kr
 ▶11차 마감: 1월 31일

송길원 목사의 부모님은 91세, 89세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고궁 나들이를 했습니다. 이날 입은 청바지 또한 처음 입어 본 것입니다. 부모님 소원을 미처 못 챙긴 불효자식이라 자책했던 송 목사는 비로소 청바지 차림에 고궁 나들이라는 부모님의 원을 들어주게 되었습니다.

송길원 목사의 부모님은 91세, 89세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고궁 나들이를 했습니다. 이날 입은 청바지 또한 처음 입어 본 것입니다. 부모님 소원을 미처 못 챙긴 불효자식이라 자책했던 송 목사는 비로소 청바지 차림에 고궁 나들이라는 부모님의 원을 들어주게 되었습니다.

제 부모님은 현재 91세, 89세에
결혼 68년 차입니다.

아버님은 평생 교직에 몸담았습니다.
옛 시절이 그랬듯
청바지를 한 번도 못 입어 보셔서
한 번 입어보고 싶어했지요.

최근 자식들과 청바지 복장으로
제주여행을 계획해 놓았으나
코로나로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늙어가는 것은 신의 은총이요.
젊게 사는 것은 삶의 지혜’란 말이 있듯이
한번 젊음을 선물하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크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제 어머니는 병이 깊어지셨고,
더는 나들이할 기회가 없어졌습니다.
휠체어에만 의존해야 합니다.
서너 발자국 못 가
가쁜 숨을 몰아 내쉽니다.
곁에서 보기에 애간장이 끊어집니다.

지금도 스마트 폰을 가지고 노시는
아버님은 4가지 암과 투쟁 중입니다.

사실 두 분과 함께
고궁 나들이를 하고 싶습니다.
두 분 다 서울생활을 하신 일도 없으셨고,
분당에 15년 넘게 살면서
가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TV로만 보다가 문득 가보고 싶어하셨습니다.

마침 아들놈인 제가 〈앰뷸런스 소원재단〉으로
다른 사람들의 소원들을 들어주는 일을 합니다만,
정작 제 부모님 소원을
미처 못 챙긴 불효자식 같았습니다.
사실 그분들 이야기를 했더니
제 부모님들이 부러워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남산 밑에 살면서 남산에 못 가 보듯
항상 가까이 있는 사람이 소외된 겁니다.

그래서 운을 뗐더니 너무나 좋아하셨습니다.
손주 녀석하고 의논했더니
가셔서 사모관대도 씌어 드리면 좋겠다고 하네요.
그것참,
청바지에서 전통 사모관대 복장까지
한 세월이 흐르는 듯하겠네요.

그 날,
앰뷸런스 소원재단 차량을 끌고 모시고 나가
하루 효도를 찐하게 하고 싶습니다.

어젯밤에 본 중앙일보 ‘인생 사진’에 울컥하는 마음이 들어

저 또한 인생 사진 신청을 합니다.

송길원 올림


″볼에 뽀뽀를 한번 해보시라″는 사진기자의 요청에 아버님은 주저함이 없습니다. 그 바람에 온 가족 얼굴에 웃음꽃이 폈습니다.

″볼에 뽀뽀를 한번 해보시라″는 사진기자의 요청에 아버님은 주저함이 없습니다. 그 바람에 온 가족 얼굴에 웃음꽃이 폈습니다.

사연을 보낸 송길원 목사를 압니다.
알기에 뜻밖의 사연 신청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그는  〈앰뷸런스 소원재단〉을 이끌고 있습니다.
이른바 자기 힘으로 움직일 수 없는 ‘교통 약자’,
스스로 가고픈 곳으로 갈 수 없는 ‘관광 약자’를
앰뷸런스로 모셔 소원을 들어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의 소원을 들어주는 일을 하는 송 목사가
정작 당신 부모의 소원을 챙기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을 담아 사연을 보냈으니 의외였던 겁니다.

송 목사의 부끄러움을 덜어주기 위해,
더욱이 송 목사 부모님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창경궁 나들이를 결정했습니다.

비록 휠체어를 탔지만, 유독 아버님의 표정이 밝습니다. 선생님이던 시절 소풍 가는 마음이었나 봅니다.

비록 휠체어를 탔지만, 유독 아버님의 표정이 밝습니다. 선생님이던 시절 소풍 가는 마음이었나 봅니다.

비록 휠체어로 이동해야 했지만,
두 분의 표정이 해맑았습니다.

사진 촬영을 시작하자
아버님이 어머님께
“모자 올려 써! 얼굴 보이게끔.”이라며 꼼꼼히 챙깁니다.
그 바람에 송 목사 내외까지 환한 웃음이 터집니다.

살뜰히 어머님을 챙기는 아버님 때문에 어머님의 표정이 더없이 해맑습니다.

살뜰히 어머님을 챙기는 아버님 때문에 어머님의 표정이 더없이 해맑습니다.

“지금 아버님이 너무 좋으셔서 말씀이 많아지셨네요.
예전에 하셨던 선생님처럼
이래라저래라 말씀도 하시고…. 하하.
두 분만 저렇게 갇혀 사시다가
고궁 나들이를 하니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준비하셨더라고요.
아버님은 학교에 계셨으니
꼭 소풍 가는 기분이셨나 봅니다.
아버님 말씀에 저리 웃는 어머님 모습을 보니
시집오실 때 사진 속 그 모습 같네요.”

휴대폰 속 초음파 사진이 제대로 보일 리 만무합니다만, 송 목사 부모님은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하고 오래도록 증손녀의 초음파 사진을 들여다봤습니다.

휴대폰 속 초음파 사진이 제대로 보일 리 만무합니다만, 송 목사 부모님은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하고 오래도록 증손녀의 초음파 사진을 들여다봤습니다.

이동 중에 송 목사 내외가
부모님께 깜짝 선물을 보여드렸습니다.
그건 휴대폰으로 전송받은
증손녀의 초음파 사진이었습니다.
“손자와 똑 닮았다”며 보여 준 초음파 사진에
아버님과 어머님은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초음파 사진에 빠진 두 분의 모습을 보며
송 목사가 제게 귀띔했습니다.
“어르신들에게는 생명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제일 좋은 거 같아요.
보세요. 저렇게 생기가 돌잖아요.”

송 목사는 부모님을 위해
왕과 왕비의 옷을 준비했습니다.
“이런 데서 한번 임금과 중전이 이 되어 보시는 게
좋은 추억이 될 듯해서 준비했어요.
제가 임종 감독이 되어 장례절차를 도와보니
다들 추억할 만한 사진들이
정말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10여년 전 찍은 증명사진이
모두인 경우도 있었고요.
사실 부모님의 남은 생애가 얼마나 일지 모르지만,
그 남은 기간 추억을 가지실 것이고
이로 인해 사는 데까지
힘차게 사시지 않겠나 하는
맘으로 준비했습니다.”

″여봐라″며 아버님이 큰 소리로 호령합니다. 이 순간만큼은 두 분이 궁의 주인인 듯했습니다.

″여봐라″며 아버님이 큰 소리로 호령합니다. 이 순간만큼은 두 분이 궁의 주인인 듯했습니다.

그렇게 왕과 왕비가 되어
부모님들은 그토록 원했던
고궁에 섰습니다.

사진으로 오랜 추억이 될 것이기에
어머님은 휠체어에서 벗어나 서서 포즈를 취했고요.
아버님은 왕인 듯 호령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습을 찍은 후,
송 목사 내외에게 같이 서서 사진
한장 찍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송 목사 내외가 두 분 앞에 나서더니
갑자기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저희 부모로 살아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며 드린 절,
삶이라는 영화의 라스트 신 같았습니다.

송 목사 내외는 부모님께 진심으로 고맙다고 했습니다. 이루 다할 수 없는 고마운 마음에 큰절을 올린 겁니다.

송 목사 내외는 부모님께 진심으로 고맙다고 했습니다. 이루 다할 수 없는 고마운 마음에 큰절을 올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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