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오래]독실한 불교신자의 크리스마스 음식, 비프스튜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한재동의 아빠는 밀키트를 좋아해(4)

비프 스튜

나는 독실한 불교 신자다. 주위에 불교 신자는 많지만, 스스로 독실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렇게 자신 있게 독실한 불교 신자라고 말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모태신앙이 불교이며, 둘째 반야심경을 외우고 있다. 주위의 불교 신자를 모두 통틀어도 이 두 가지를 만족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이런 이유로 사십 년 평생 크리스마스트리를 집에서 꾸며본 적이 없다. 그러다 올해 드디어 거실 한구석에 작고 귀여운 크리스마스트리와 가렌다 등으로 분위기를 내보았다. 모두 우리 딸의 크리스마스를 위해서였다. 고백하자면 불교 신자지만 부처님 오신 날에 연등을 달거나 하지는 못했다. 자비로운 부처님은 이해해 주실 것이라 믿는다.

크리스마스트리에 반짝이는 전구까지 달고나니 제법 파티 분위기가 나서, 어울리는 요리를 하나 해보고 싶었다. 크리스마스에는 무엇을 먹어야 할까? 도저히 모르겠다. 크리스마스 음식이라고 포털에 검색하니 홈파티 음식들 사이에 비프 스튜를 발견했다. 몇몇 블로거들이 이국적이면서도 따뜻한 국물 요리라서 크리스마스 어울린다고 한다. 스튜? 그러고 보니 소설이나 영화에서 본 적은 많은데 직접 먹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난생 처음 먹어보는 스튜. [사진 이마트]

난생 처음 먹어보는 스튜. [사진 이마트]

포털의 지식백과를 보면 스튜를 ‘우리나라의 찌개와 같은 서양의 일상 요리’라고 정의한다. 나야 크리스마스라고 날 잡고 만드는 요리지만, 지구 반대편 찰스는 매일 고된 노동 후에 먹는 김치찌개 같은 소울푸드인 건가. 고기 등을 먼저 볶은 후에 물을 넣어 뭉근히 끓여내는 조리법도 찌개와 비슷하다. 어쩌면 인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시 국물이 있어야 끼니를 든든히 채울 수 있는 것인가!

밀키트 포장을 벗겨보면 일단 소고기의 푸짐한 양에 놀라게 된다. 양송이버섯, 브로콜리, 당근 등은 요리하기 편하게 잘려서 포장되어 있다. 고기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려져 있어서 세척만 하면 바로 조리할 수 있다. 흡수 패드가 붙어 있어서 핏물을 잘 흡수해 주기 때문에 키친타월로 표면의 핏물만 조금 닦아주면 된다. 딱 필요한 만큼의 올리브 오일, 버터, 허브 솔트와 소스가 들어 있어 간을 맞추지 못할 걱정은 없어 보인다.

레시피

① 키친타올로 소고기의 핏물을 제거하고, 브로콜리는 30초간 데친다.
② 강한 불로 30초간 냄비를 예열한 후 오일과 소고기를 넣고 3분간 볶는다.
③ 양파, 당근, 허브솔트를 넣고 2분간 더 볶는다.
④ 물 300ml와 소스, 양송이버섯을 넣고 끓기 시작하면 중불로 10분간 더 끓인다.
⑤ 버터, 브로콜리를 넣고 약한 불에서 1분간 저어가며 끊이면 완성.

밀키트를 처음 열어보았을 때, 채소가 깔끔해 미리 세척된 것이면 바로 조리해도 되나 싶었다. 나 같은 사람이 많은지 뒷면 주의사항에 꼭 물에 세척해 먹으라는 문구가 있었다. 고기의 경우 어느 정도 익으면 한 번 더 잘라주면 딱 한입에 들어갈 크기가 된다. 스튜의 정수는 결국 소스에 있는 것 같은데, 유명 셰프가 미리 조리해 파우치에 담아주니 망할 걱정은 없었다. 비결이 궁금해 소스의 원산지를 유심히 보았으나 스페인산의 무엇이 들어갔다는 것 외엔 없었다. 사실 본다고 내가 그 맛을 구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연복 셰프도 찾아오는 사람마다 조리법을 알려주었지만 맛을 만들어 낸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하지 않는가.

비프 스튜에 바게트나 밥을 곁들여 먹으면 좋다. [사진 한재동]

비프 스튜에 바게트나 밥을 곁들여 먹으면 좋다. [사진 한재동]

처음 먹어본 스튜의 맛은 생각보다 짭짤해 따로 준비한 바게트 하나를 전부 다 먹어버리고 말았다. 밥과 같이했다면 아마 두 그릇은 너끈히 먹었을 것 같다. 아빠는 마흔이 되어 처음 먹어본 음식인데, 밀키트 덕에 딸은 두 살에 먹게 되었다. “딸, 맛있어?”라고 물으니 엄지를 척하니 올려주는 것이 아닌가! 산타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저에게는 이게 바로 크리스마스 선물입니다.

글머리에 반야심경을 외운다고 했는데, 사실 순수한 의도에서 외우게 된 것은 아니다. 반야심경을 외우게 된 가장 큰 동기는 바로 훈련소 초코파이였다. 훈련소에서는 일요일마다 종교 참석을 허락해주는데, 군대에 가지 않은 분도 익히 들어 알다시피 초코파이를 준다. 군대에서 초코파이의 위력은 자신이 믿고 있던 신도 부정하게 되고, 믿지 않던 신도 믿게 하는 위력이 있다.

훈련소 절에 계신 군종 스님이 반야심경을 다 외우는 훈련병에게 초코파이를 더 준다는 농담 반 진담 반 약속을 했다. 독실한 불교 신자인 데다 마침 입대 직전 동양 철학 수업에서 반야심경을 외우는 시험까지 봤었다. 이게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인가 싶었고, 공교롭게도 그때가 크리스마스 즈음이었다. 그때 먹었던 초코파이야말로 종교를 뛰어넘은 크리스마스의 기적이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