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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현상의 시시각각

실용주의라는 편리한 변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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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현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실장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21주년 기념식 및 학술회의'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안내 책자를 전달하고 있다. [중앙포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21주년 기념식 및 학술회의'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안내 책자를 전달하고 있다. [중앙포토]

실용주의 사상가 존 듀이가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를 만난 일이 있다. 1937년 일이다. 가장 미국적 철학이라는 실용주의의 대표 학자가 '연속 혁명론'이라는 급진 이념의 주인공을 만나다니.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만남의 계기는 멕시코 망명 중인 트로츠키에 대해 소련 스탈린 정권이 내린 사형 선고였다. 궐석재판 소식을 들은 트로츠키 측은 반박을 위해 민간 청문회를 열었다. 이때 초청된 위원장이 국제적으로 명망이 높았던 듀이. 결론은 물론 무죄. '이념의 화신'이 처지가 곤궁해지자 실용주의자에 기댄 것이 이채롭다. 더 인상적인 것은 청문회 뒤 듀이가 남겼다는 말이다. "그는 비극이었다. 천부적 재능이 절대주의에 갇혀 있었다."

고뇌 없는 입장 선회 불신만 안겨 #풀이 과정 없는 수학 답안지 연상 #자성·혁신 없는 실용은 포장일 뿐

문재인 정부의 비극은 '천부적 재능'조차 변변히 없으면서 이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 있다. 분배·복지·부동산·방역 등에서 실책을 거듭했지만 과오 인정에 인색했다. 변명의 귀결점은 늘 '좋은 의도'였다. 문 정부의 신념 과잉에 질려서일까. 이재명·윤석열 두 대선 후보가 공통으로 실용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별 감흥이 없다. 왜일까.

기본소득 및 국토보유세, 양도세, 탈원전, 전두환 평가 등에서 이재명 후보의 급변침은 어지럽다. 문재인 표 정책에 대한 진지한 반성은 사과 큰절 한 번으로 퉁쳤다. 풀이 과정 없이 답만 덜렁 제출한 수학 답안지 같다. 커닝인지, 진짜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의 경제관 실체가 도대체 뭐냐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낮은 국가 채무가 가계 부채 고통으로 이어진다" "부자는 저금리 혜택, 빈자는 고금리 고통" 같은 그동안의 이분법적 화법은 뭐였단 말인가.

이에 비해 윤석열 후보의 실용주의는 마감이 다 돼 가는데 아직도 붙잡고 있는 답안지 같다. "실용주의 정당으로 바꿔 중도와 합리적 진보까지 아우르겠다"는 구상을 밝혔지만 구체적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감세, 규제 완화를 말하지만 실체가 모호하다. 불쑥불쑥 나오는 발언이 신자유주의에 가깝더니 엊그제는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찬성의 뜻을 밝혔다. 갈팡질팡, 가늠이 어렵다.

두 후보의 실용주의에는 고뇌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믿음이 안 가는 것은 당연하다. 중도파 김성식 전 바른미래당 의원이 "이재명은 자기 반성이 없고, 윤석열은 자기 혁신이 안 보인다"고 한 지적(경향신문 12월 16일자 인터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념에서 실용으로 변신한 대표적 사례는 임기 후반 노무현 정부다. 한·미 FTA, 이라크전 파병 결정은 대반전이었다. 한·미 FTA 결정 당시 노 대통령이 남긴 메모에는 결정자의 고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FTA를 안 할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까" "소비자의 이익은 무엇인가" "농가의 피해 예상액은" 등등. 그는 "작은 장사꾼이 아니라 미래와 세계를 내다보는 큰 장사꾼의 안목으로 협상에 임했다”고 말했다. 그의 시대를 '소란'으로 평가하든, '역동'으로 평가하든 그 순간만의 진정성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실용주의는 그 자체로 이념이 될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실용 대 이념' 구도로 집권에 성공했지만 '철학 없는 정부' '이익 연합'이라는 혹평까지 받았다. 실용주의가 이념이 될 순 없지만 철학까지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다. 진리는 절대적이지 않다는 개방성과 겸손이 그 철학이다. 이정표 뚜렷한 이념보다 실용주의가 더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고뇌 없는 실용주의는 편의주의이자 기회주의일 뿐이다.

"이재명과 윤석열이 차이가 없다. 단일화하시라"는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비아냥이 그저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차이가 없으니 남는 것은 역대 최악의 네거티브 전이다. 논리 없는 말 뒤집기나 내용 없는 모호함을 실용주의로 우길 수는 없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상대주의가 실용주의일 수는 더욱 없다. 이를 잊었다간 돌아올 것은 '속물적 탈(脫)도덕주의'를 포장하는 편리한 변명이라는 냉혹한 평가일 뿐이다.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