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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강요되는 ‘디지털 디바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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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지영 기자 중앙일보
최지영 경제에디터

최지영 경제에디터

이태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할 때, 방역당국이 그 지역에 간 사람을 휴대전화 위치 추적 데이터로 추적한다고 하자 “그래, 급속도로 퍼지는 걸 막아야겠지”라면서 마지 못해 수긍했다.

방역당국이 해외에서 들어온 격리자의 휴대폰을 추적해 집 밖으로 한발이라도 벗어나면 벌금을 때린다고 할 때도 “그래, 그래야 효과적으로 격리자 관리가 가능하겠지”라며 대놓고 반대하지 않았다.

백신 예약 이어 접종확인서까지
디지털 소외자, 일상생활 힘들어
“모르면 알아서 배우라”는 정부
디지털 격차에 대한 대책 없어

코로나19 상황이 점점 악화하면서 이제 또다시 일상을 잃어버리게 됐다.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밀어붙이는 방역당국은 드디어 백신 접종 여부를 확인해주는 방역패스 없이는 일상생활 자체가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신분증에 접종완료 스티커를 붙이거나, 접종완료서를 보여줘도 되지만, 대부분 영업 현장에서는 휴대폰 QR코드로 된 방역패스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 방역패스가 없으면 이젠 카페에 가서 음료수도 못 마시고, 식당에 가서 밥도 먹지 못한다. 식당·카페 등에 입장한 이용자는 1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하고, 확인하지 않고 입장시킨 업소 운영자는 과태료 150만원과 영업정지 10일 처분을 받는다.

방역패스 의무화가 시작된 13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식당에 방역패스 적용 안내문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방역패스 의무화가 시작된 13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식당에 방역패스 적용 안내문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질병관리청의 COOV 앱에 들어가서 백신 접종 증명을 받는 일은 인터넷과 모바일에 익숙한 성인들에게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소비자뿐 아니다. 방역패스를 확인해야 하는 디지털 소외 자영업자는 눈앞이 캄캄하다. 시장이나 동네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어르신 중 일부는 주변의 젊은 자영업자 도움을 받아 겨우 방역패스 확인 시스템을 갖췄지만, 아직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고 한숨만 쉬는 소상공인도 꽤 된다.

온라인 백신 예약 때도 “스스로 하기 어려운 노령층은 자녀들의 도움을 받으라”고 정부는 당당히 얘기했다. 빅 브러더 논란에 디지털 디바이드까지 얹은 형국을 정부가 자처했다는 평가를 지나치다고 할 수 있을까.

왜 이렇게 디지털 소외 계층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된 걸까. 혹시 인터넷 보급률이나 휴대전화 보급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높아 여기서 소외된 일부는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된 걸까.

하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 휴대전화가 보급될 대로 보급돼 보급률이 몇 년째 정체라는데, 올해 조사에서는 아직 60대 이상 남성의 10%, 여성의 23%가 휴대전화를 쓰지 않는다고 답했다. 또 휴대전화를 가진 것과 모바일 앱까지 잘 쓸 수 있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안 그래도 코로나19로 비대면, 디지털 전환이 사회 각 부문에서 급속도로 빨라졌다. 인터넷과 휴대전화에 익숙지 않거나 이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계층의 디지털 소외가 코로나19 이후 더 심각해진 상황을 여러 조사 결과가 말하고 있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은 지난해 코로나19 관련 인터넷·모바일 신청 정보 서비스 이용 경험이 정보 취약계층은 26.1%, 일반 국민은 57.7%로 큰 격차를 보인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그나마 방역패스나 백신 온라인 예약 등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전인 지난해 상황이다.

지금으로써는 자치단체나 복지관에서 해주는 정보화 교육이 소외 계층의 디지털 격차를 줄여 주는 그나마 유일한 대안이다. 그런데 정보화 교육 관련 예산은 2016년 71억4000만원에서 2019년 58억8000만원으로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다. 게다가 대부분 국비와 지방비의 일대일 매칭 사업 형태로 운영돼 지자체별로 편차가 큰 실정이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지난해 말 코로나 19가 확대한 디지털 디바이드에 관한 보고서를 내고 “이용자에게 배우고 습득하기만 하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대응일 수 있다”고 꼬집으며 민간과 정부의 대책을 요구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선 디지털 격차 해소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는커녕, 정부가 나서서 디지털 디바이드를 강요하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당장 일상생활에 차질을 주는 방역패스에 대한 대책이라도 속히 마련하길 요구한다. 일단 접종 완료 확인서 스티커를 발부받아 신분증에 붙이는 절차를 철저히 안내하라. 그리고 디지털 소외 계층 자영업자에겐 방역패스 확인 시스템 도입을 지원하라.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른 시일 내에 코로나19로 더 심각해진 디지털 디바이드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방안을 마련하라. 아쉬운 이용자가 알아서 배우거나, 주변의 도움을 받으라는 현재의 정부 대응은 무책임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