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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믿게 하는 자가 이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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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서승욱 기자 중앙일보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서승욱 정치팀장

서승욱 정치팀장

이재명·윤석열 후보의 선거전이 뜨겁다. 정책 대결과 전략적 변신, 차별화와 네거티브가 본격화한다. 살아온 궤적만큼이나 둘의 전략은 판이하다. 인물론과 정권교체론의 충돌이다. 이 후보의 무기는 정책 능력과 행정 경험이다. 윤 후보는 압도적인 정권교체 여론에 올라탔다.

비슷한 캐릭터의 대결 구도는 과거에도 있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이다. 이명박(MB)-박근혜의 대결이 미묘하게 닮았다.

MB-박근혜 대결 연상시키는 대선
진정성 부족에 비호감·불신 커져
신뢰 없이는 공약과 정책 무의미

둘 다 기겁하겠지만 이재명 후보는 MB와 비슷한 점이 많다. 도덕성보다는 능력이 무기다. 이념보다는 실용의 이미지다. 이념적 포용 범위가 넓다. 메시지는 진영을 넘나든다. “유능한 사람을 실력 중심으로 쓰려고 한다. 설거지를 많이 하면 접시를 깰 가능성도 높다.” 최근 인터뷰에서 이 후보가 밝힌 ‘이재명 정부의 인사 기준’이다.

접시론의 원조는 MB다.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릇도 깨고 손을 베일 때도 있었다”(2007년 경선 토론), “그릇 깨고 손 베일 것이 두려워 아예 설거지를 안 하는 것은 안 된다”(2008년 업무보고)가 MB의 어록이다.

김회룡기자

김회룡기자

접시를 깨더라도 일을 하겠다는 뜻이다.  둘 다 단체장 시절의 성과가 대선 도전의 기반이 됐다. 일 잘할 것 같은 경제 대통령 이미지가 먹혔다. 대신 그늘도 짙다. BBK와 대장동 개발 의혹이란 대형 스캔들에 시달렸다. 그래서 특검 도입의 표적이 됐다. 민심의 호불호가 확연하다.

반면 윤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슷한 구석이 많다. 정책 이미지보다 원칙 이미지가 강하다. 자유주의와 보수적 사고, 원칙 중시, 인내, 뚝심이 공통의 키워드다. 박 전 대통령의 대표 상품은 원칙과 애국심이었다. 윤 후보는 헌법 정신, 공정, 법치다. 박 전대통령은 ‘줄푸세’를 말했다.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 기강은 세운다고 했다. 윤 후보는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 신봉자다. 가치관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스스로 말했다. 그 역시 시장의 힘을 믿는 시장주의자다. 중도를 공략하지만 살아온 궤적은 보수색이 짙다. 고집 센 성격과 자존심도 닮았다. 참모들이 쉽게 조언하기 힘든 카리스마의 소유자들이다. 거꾸로 소통에의 우려가 제기된다. 극소수의 믿는 참모들에게만 마음을 연다는 평가도 있다. 도덕성 항목에선 경쟁자들에 앞서있다. 대신 정책 능력과 말하기 능력이 자주 도마에 오른다.

비슷하지만 다른 게 있다. MB와 박근혜는 호감도가 비호감도를 압도했다. 당 대선 후보로 나섰을 때 비호감도는 30% 남짓에 불과했다. 비결은 진정성에 대한 공감이다. 경제살리기에 대한 열정(MB), 나라를 바로세우겠다는 신념(박근혜)을 꽤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

이 후보와 윤 후보의 비호감도는 참담한 수준이다. 60%를 넘나든다. 비호감의 이유 중 하나는 불신이다. 진정성이 자주 의심받고 공격당한다.

이 후보는 말과 약속이 신뢰감을 못 준다.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님이라고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란 발언이 압권이다. 손바닥 뒤집히듯 말이 뒤집힌다. 아무리 내공이 실린 정책도,아무리 기막힌 공약도 못 믿는 사람 앞에선 힘을 쓰기 어렵다. 계속 이렇게 가다간 백약이 무효가 될 수 있다. 신뢰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반면 윤 후보의 지지율은 정권교체론에 한참 못미친다. 비전의 빈곤과 실력 부족이 자주 거론된다. 메시지 전달도 서투르다. 하지만 불신을 부르는 근본 소재는 따로 있다. 검찰총장에서 최고 권력자로의 직행에 대한 거부감이다. 대선 도전의 순수성에 대한 의심도 있다. 적폐 청산으로 포장된 전직 대통령 구속, 이후 현 정권과의 대결이 정치적 도약을 위한 큰 그림 아니었느냐는 의심이다. 이런 의심과 불신을 불식해야 검찰공화국에 대한 우려도 중화된다.

양 진영이 급속하게 결집하고 있다. 박빙의 지지율은 그 징표다. 제3지대는 날이 갈수록 빈약해진다. 중도층과 스윙보터를 향한 총력전이 불 보듯 하다. 파괴력 큰 공약 한 방, 깜짝 놀랄만한 인사 영입이 모색된다. 세상을 뒤집을 듯한 솔깃한 약속이 난무할 것이다.

그러나 비호감의 대선, 불신의 대선판이다. 신뢰가 사라진 빈약한 토양 위에 공약과 정책은 위태위태한 모래성이다. 결국 승부는 누가 신뢰를 주느냐로 갈린다. 사람을 못 믿겠다는데 공약과 정책, 다짐, 중도공략, 깜짝 인재 영입이 어떻게 먹히겠는가. 승부의 추는 믿음을 주는 쪽으로 기울 것이다. 지금부터 하기 나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