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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 떼로 폰 흔들고, '백신 쪽지'만 들고간 노인…혼돈의 첫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3일 세종시 나성동 한 식당에서 질병관리청 쿠브(COOV·전자예방접종증명서) 애플리케이션 앱의 QR코드 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해 '방역패스'(백신패스) 확인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세종시 나성동 한 식당에서 질병관리청 쿠브(COOV·전자예방접종증명서) 애플리케이션 앱의 QR코드 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해 '방역패스'(백신패스) 확인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첫날부터 난리가 났네요. 시스템이 먹통인데 뭘 어째야 하는지…”

13일 오전 11시 40분 서울 여의도 식당가 내 한 한식당 주인 A씨는 점심을 맞아 밀려드는 손님을 보며 난처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를 증명하는 QR코드 시스템에 오류가 나 접속되지 않는 돌발 상황이 벌어져서다. 가게 입구에 선 손님 10여명은 “이거 왜 이래요”라며 하얗게 변해버린 휴대전화 화면을 내보였다. 5분여가 지나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자 결국 손님들은 인증 없이 자리로 갔다. A씨는 “‘안심콜’을 임시방편 삼아 이거라도 해달라며 손님 양해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방역패스 앱 오류에…식당·카페 곳곳 혼란

영등포구 여의도에 위치한 카페. 이처럼 출입문 등에 방역패스에 대한 안내문을 붙인 가게가 늘어나고 있다. 석경민 기자

영등포구 여의도에 위치한 카페. 이처럼 출입문 등에 방역패스에 대한 안내문을 붙인 가게가 늘어나고 있다. 석경민 기자

식당·카페 등에 방역패스 관련 과태료가 부과되는 첫날인 이날 점심시간 질병관리청 쿠브(COOV) 등 QR코드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곳곳에서 혼란이 빚어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여의도 80석 규모의 한 카페에서는 손님을 쫓아다니며 백신 접종 여부를 확인하는 직원도 있었다. 업주 윤모(45)씨는 “과태료 무서워서 기껏 들여놓은 QR체크인 기계 3대가 전부 무용지물이 됐다”고 한숨을 쉬었다.

경기도 수원시 한 중식당에서는 자리에 앉은 손님 12명이 스마트폰을 연신 흔들어대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스마트폰을 흔들면 관련 애플리케이션(앱)이 새로 고침된다. 40대 직장인 이모씨는 “밥이 나온 후에도 휴대전화를 계속 흔들어봤는데 화면이 뜨지 않았다”며 “가게도 포기한 눈치라 인증 없이 밥을 먹었다”고 말했다.

사정은 도서관 등도 비슷했다. 이날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중앙도서관에서도 방역패스 인증 앱이 한때 멈춰 학생들이 불편을 겪었다. 대학원생 송모(27)씨는 “평소에는 이런 적 없었는데 방역패스앱 접속이 잘 안 되면서 출입구에 20명이 일시적으로 몰렸다”며 “방역패스를 쓰라고 했으면 서버 같은 시스템적 준비를 미리 해놨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꼬집었다.

노인은 발길 돌리고, 무인점포는 여전히 사각지대 

식당·카페 등에서 '방역패스'(백신패스) 미확인 시 이용자와 운영자에게 과태료가 부과되기 시작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백신패스를 증명할 QR코드 서비스가 장애를 일으키자 식당 관계자가 관련 안내를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식당·카페 등에서 '방역패스'(백신패스) 미확인 시 이용자와 운영자에게 과태료가 부과되기 시작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백신패스를 증명할 QR코드 서비스가 장애를 일으키자 식당 관계자가 관련 안내를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방역패스는 스마트폰 사용 등이 어려운 노인에게 여전히 넘기 힘든 벽이었다. 이날 오전 11시쯤 서울 강남구 선릉로 강남도서관. 70대 B씨는 “스마트폰을 쓰지 않아 QR 인증이 뭔지도 모른다. 나 같은 노인을 배려해줬어야 한다”며 혀를 찼다. 이날 3차 백신을 맞는다는 B씨는 관련 내용이 적힌 쪽지만을 들고 도서관을 찾았다. 강남도서관 관계자는 “정해진 규정대로만 한다면 노인 등 어려움을 겪는 이용자가 분명 있기 때문에 방역 지침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백신 접종을 확인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방역패스 사각지대’로 떠오른 무인점포에서는 별도 방역 관리 인원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날 오후 서울 대치동 학원가 내 스터디 카페 10곳을 살펴보니 방역패스 점검 인원을 둔 곳은 단 1곳도 없었다. 키오스크에서 QR 인증을 요구하는 곳도 1곳뿐이었다. 사실상 돈만 내면 스터디 카페 이용에 제약이 없던 셈이다. 스터디 카페 업주 최모씨는 “1시간에 2000원 버는 업종에서 24시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을 두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인건비보다 과태료가 싸게 먹히기 때문에 ‘배 째라’ 식의 태도를 보이는 업주가 많다”고 전했다.

단속 지침도 없고…“탁상공론” 비판 여전한 방역패스

자영업자 사이에서는 방역패스에 대한 불만 목소리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점심·저녁처럼 손님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업무가 가중되면서 방역패스를 하나하나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날 점심시간 대치동 일대 식당 곳곳은 방역패스 없이 입장이 가능했다. 백반집 업주 정모(61)씨는 “방역패스 확인하랴 주문받으랴 정신없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몇 년째 적자만 보는데, 직원을 굳이 새로 뽑을 순 없다. 장사하는 사람 무시하는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했다.

단속 권한이 있는 지자체는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서울시 한 자치구 관계자는 “계도기간이 끝난 첫날인 만큼 단속을 하진 않았다”며 “단속 계획을 마련해야 하는데, 상급기관에서 구체적인 지침이 내려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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