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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저 바다 너머 백제가 있었구나”…‘백제망향선’에 서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63)

“저 끝에 백제가 있었나?”
“그럼 저쪽에 한국이 있다는 거네?”

백제망향선을 의식하며 바라본 경치. 저 멀리 백제(지금의 광주)를 바라보며 고향을 그렸을 백제인들의 심정을 상상해 본다. [사진 양은심]

백제망향선을 의식하며 바라본 경치. 저 멀리 백제(지금의 광주)를 바라보며 고향을 그렸을 백제인들의 심정을 상상해 본다. [사진 양은심]

일본에서 한국이라면 반나절이면 갈 수 있건만, 코로나 19에 발목이 잡힌 지도 벌써 2년을 넘기려 하고 있다. 일본 생활 30년. 이번처럼 한국 방문이 어려운 적은 없었다. 한국에 갈 수 없다면 일본 내라도 둘러보자고 마음을 돌렸다. 정들면 고향이라지. 한국에서 살아온 날보다 일본에서 살아온 날이 길어졌다.

예전부터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절이 있었다. 시가 현(滋賀県)에 있는 백제사(百済寺·햐쿠사이지)다. 일본 최대의 호수 비와호(琵琶湖)의 동쪽에 있는 절로 약 14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아스카 시대 606년 쇼토쿠 태자(聖徳太子)가 백제인을 위해 세웠다고 전해진다. 고구려에서 온 혜자(恵慈) 스님과 백제에서 온 관록(観勒) 스님이 관계하고 있다고 해 관심을 가지게 된 절이다.

두 스님을 알게 된 것은 2021년 7월 쇼토쿠 태자 서거 1400주기를 기념하는 특별전에서였다. 도쿄국립박물관에서 열린 ‘쇼토쿠 태자(聖徳太子)와 호류지(法隆寺)’(59회 글 참조). 두 스님은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었다. 혜자 스님은 23년에 걸쳐 쇼토쿠 태자와 함께했다. 고구려로 돌아갈 때는 태자와 저세상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622년 쇼토쿠 태자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은 혜자 스님은 623년 같은 날에 숨을 거두어 생전의 약속을 지켰다고 한다.

아직도 눈에 선한 관록(観勒) 스님의 조각상은 앙상한 몸에 강렬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602년에 일본으로 와서 역법과 천문 지리에 관한 지식을 전했다. 특히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백제사의 장소 선정과 방위 결정 등에 관여한 흔적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606년 절이 완성된 후에는 공양승으로 오랫동안 백제사에 머물렀다고 한다. 이제 그 백제사에 간다.

본당 안 모습. 한국의 절과는 모습이 전혀 다르다. 안에는 십일면관음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비불(秘仏)이어서 볼 수는 없다. [사진 양은심]

본당 안 모습. 한국의 절과는 모습이 전혀 다르다. 안에는 십일면관음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비불(秘仏)이어서 볼 수는 없다. [사진 양은심]

백제사는 일본의 ‘단풍 100선’에 뽑힌 절이지만 도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알려지지는 않았다. 도쿄에서 더 먼 오사카나 교토까지는 자주 가면서 시가 현은 굳이 가려 하지 않는다. 신칸센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동행한 친구들도 시가 현은 처음이라 했다.

백제인을 위해 세운 절이어서인지 백제에서 온 관록 스님이 관여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백제사와 백제(지금의 광주)는 같은 위도에 있다. 북위 35도선. 이 선을 백제사에서는 ‘백제 망향선(百済望郷線·Pecche Nostalgia Line)’이라 부른다.

백제망향선. [사진 백제사 홈페이지]

백제망향선. [사진 백제사 홈페이지]

주차장에서 절 입구를 향해 걷기 시작하자마자 벚꽃이 눈에 들어왔다. 추운 계절에 피는 벚꽃이다. 잘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꽃이 아주 작기도 하거니와 단풍에 눈이 팔려 못 볼 수도 있다. 10월에서 늦으면 2월까지, 해를 넘겨 핀다고 해서 장수 벚꽃(長寿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일본의 옛 절의 대부분은 깊은 산 속에 본당이 있다. 현대식 주차장이 있지만, 차에서 내릴 때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걷기 편한 신발은 필수다. 돌계단을 하염없이 오른다. 종종 이런 푸념이 들린다. “왜 이렇게 험난한 곳에 절을 세운 거지?” 나는 속으로 답한다. “그야 수행이 목적이었을 테니까요. 우리 같은 관광객을 불러들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을 겁니다.” 혼자서 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절이었다. 수행하듯이 묵묵히 계단을 오르며 생각에 잠기고 싶어지는 절이었다.

 지천회유식 정원. 돌다리를 건너면 연못 안에 사는 잉어들이 먹이를 달라고 달려든다. [사진 양은심]

지천회유식 정원. 돌다리를 건너면 연못 안에 사는 잉어들이 먹이를 달라고 달려든다. [사진 양은심]

본당으로 가기 전 연못이 나온다. 연못 주변을 걸으며 감상할 수 있는 ‘지천회유식 정원’이다. ‘세키가하라(関ヶ原)’라는 영화의 촬영 장소로도 쓰였다. 영상과 사진으로만 보던 연못의 돌다리를 건너본다. 팔팔한 잉어들이 입을 쩍쩍 벌린다. 동행한 친구가 먹이를 주고 있었다. 죽은 듯이 조용한 산사에 팔팔한 잉어들. ‘살아있음’을 느꼈다. 잉어도 나도 살기 위해 숨을 쉬며 먹이를 섭취한다. 1400년이란 역사를 가진 산사에서 잉어와 나는 순간을 살아내는 동지였다.

연못을 돌고 나오니 산길이 이어졌다. 다시 계단이 나오고 거대한 짚신을 장식한 문이 보인다. 문을 들어서면 다시 계단. 그 계단을 오르면 본당이 있다. 본존불인 십일면관음보살상(十一面観音菩薩)은 비불(秘仏)이어서 볼 수 없었다. 백제의 용운사에 있었던 불상과 같은 나무로 만든 불상으로 쇼토쿠 태자가 조각했다는 설도 있다. 전국시대(戦国時代),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불교탄압 때에는 스님들이 산속으로 옮겨 지켜낸 불상이라 한다. 3m에 달하는 불상을 8km나 옮겼단다. 맨몸으로 오르기도 힘든 산길을 어찌 옮겼을까. 누군가 친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걸어들어갈 수는 없으나 탄성을 지르게 되는 절경이다. [사진 양은심]

걸어들어갈 수는 없으나 탄성을 지르게 되는 절경이다. [사진 양은심]

내려올 때는 완만한 오솔길을 택했다. 무릎을 보호해야 하는 나이이기에. 산사의 경치는 오를 때 다르고 내려올 때 다르다. 바람에 흩날리는 빨강, 노랑, 갈색의 낙엽들이 축복으로 느껴진다. 전망 좋은 곳에 발을 멈추고 ‘백제 망향선’을 의식해본다. ‘저 산과 바다 너머에 백제가 있었구나.’

일본인과 한국인이 느끼는 백제사는 전혀 다를 것이다.

역사를 알면 더더욱 말이다.

백제사. 百済寺(햐쿠사이지). 다음엔 봄이나 여름에 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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