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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우연히 찾은 임간학교…아들과 공유한 맛의 추억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62)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추억 한 조각에 웃게 됨을 실감한다. 지나온 삶이 허무할 때, 정신없이 지나가 버리는 일상 속에서, 그나마 위로가 되는 추억들. 소소하면 소소한 대로, 거창하면 거창한 대로. 지나고 보면 나쁜 기억보다 좋은 일이 오래 남더라. 살짝 각색까지 곁들이면서 말이다.

때로 상대방은 까마득히 잊은 추억을 나 혼자 소중히 간직하고 있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섭섭해진다. 그 좋았던 때를 잊었다니. 그리되면 그건 나의 추억이지 상대방의 추억은 아니다. 공유하지 못하는 추억을 버릴까 말까…. 그냥 감싸 안고 간다. 내 추억이니까. 자식이 어렸을 때의 추억은 특히 나만의 것일 때가 많다. 자식은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추억. 자식이 있어서 생긴 추억이나 자식과는 공유할 수는 없는 이야기들.

소프트크림을 파는 매점. 목장 뒤로 펼쳐진 산맥이 보이는 곳. 도회지의 아이들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사진 양은심]

소프트크림을 파는 매점. 목장 뒤로 펼쳐진 산맥이 보이는 곳. 도회지의 아이들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사진 양은심]

같이 있지는 않았어도 같은 공간과 먹거리를 공유하게 될 때도 있다. 같은 내용을 떠올리며 대화를 나누게 된다. 한 해가 가기 전에 서로가 떠올릴 수 있는 추억 하나 만들어 놓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당일치기 버스 여행 중 점심시간에 들른 곳이었다. 그저 점심만 먹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절경이다. 저 멀리 병풍처럼 산맥이 펼쳐지고, 목장의 푸르름이 가득했다. 창밖이 보이는 자리에서 멍하니 바라보았다. 풀밭에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보였다. 뭐지? 순간 ‘기요사토(清里)’라는 말이 뇌리를 스쳤다. 나도 모르게 우리 아이들이 다녔던 학교의 모자를 찾고 있었다. 보이는 듯도 했다. 설마. 그럴 리가. 아니었다. 우리 아이들이 다녔던 학교는 청색인데 풀밭에 있는 아이들은 녹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너무 과한 기대가 무안해 피식 웃었다. 옆을 지나가는 여행사 직원에게 물었다.

“혹시 이곳이 아이들이 임간학교(林間学校)로 오는 그 기요사토 인가요?”

“네 맞을 겁니다. 소프트크림이 유명하죠.”

소프트크림. 우리 아이들이 임간학교 하면 떠올리는 소프트크림.

소프트크림. 우리 아이들이 임간학교 하면 떠올리는 소프트크림.

“네 맞아요. 소프트크림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아이들이 다녔던 구립 초등학교에서는 4학년 때에 임간학교가 시작되고, 5학년 때는 임해학교(臨海学校)까지 추가되어 6학년까지 실시된다. 2박 3일이었지 싶다. 유치원생 마지막 해에 유치원에서 1박 하고 아침에 부모가 마중 가는 프로그램을 생각하면 큰 성장이다.

단체 여행에 나 홀로 참가한 여행. 서둘러 식사를 끝내고 눈앞에 보이는 건물로 향했다. 소프트크림을 판다는 곳. 소프트크림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이번만큼은 꼭 먹어보고 싶었다. 아이들이 맛있다고 했던 그 맛을 공유하고 싶었다. 디저트인 롤케이크까지 먹어 배가 불렀지만 상관없었다. 마음이 급했다. 그곳에 내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왔던 적이 있었던 곳일 뿐인데 빨리 가보고 싶었다. 내 발로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뜻하지 않은 우연이어서 더 흥분했는지도 모른다.

마침 초등학생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십여 년 전의 우리 아이들을 닮은 초등학생들이다. 재잘재잘. 꼭 참새 떼 같다. 교사들이 줄 서라고 한다. 아이들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도 줄은 선다. 삐뚤거려도 줄은 줄이다.

코로나 시대. 거리를 두어야지. 나는 잠시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기요사토를 개척한 건 미국인 선교사였다. 동상이 있었다. ‘외국인이 만든 곳이었구나.’ 지금은 그 뜻을 잇는 민간단체가 운영하고 있다. 임간학교에서는 젖소의 젖 짜기, 버터 만들기 등을 체험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오는 우유로 만든 소프트크림이 ‘기요사토 임간학교’의 꽃이다.

드디어 소프트크림. 자식들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다. 읽기만 하고 아무런 반응은 없다. 남자아이여서인지 성격이 그런 건지 이렇다 할 말이 없다. 읽은 것으로 충분했다. ‘아 기요사토 갔구나’ 정도는 생각했을 터이니까.

목장 풀맡에 모여있는 초등학생들. 임간학교에 온 아이들이다.

목장 풀맡에 모여있는 초등학생들. 임간학교에 온 아이들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나에게 아들이 말한다. “맛있었지”라고. 소프트크림은 꿀의 밀도처럼 부드러웠고 맛도 진했다. 아들도 그 맛은 기억한다고 했다. 우유를 많이 넣어서 만든다고. 그곳에서 먹은 소프트크림은 특별했다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느낌은 기억하고 있단다. 앞으로 10년 후에도 아들과 이야기하게 될까?

맛을 공유한다는 것은 생명을 공유한다는 것과 같지 싶다. 피와 살을 만드는 음식의 공유. 다른 시기에 따로 갔어도 같은 음식을 먹고 그 느낌을 나눈다. 추억의 공유다. 뜻하지 않게 자식의 추억의 장소를 방문하게 되었지만, 꽤 흥분되는 일이었다.

코로나19로 얼굴 보고 이야기 나눌 기회가 줄어든 요즘. 서로 같은 곳을 방문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으로도 추억을 만들어갈 수 있겠다 싶었다. 물론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을 함께 하는 것보다 더 좋을 수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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