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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2020도쿄올림픽 마라톤, 소말리아 난민의 쾌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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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당에 헤딩(60)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20 도쿄올림픽’이 끝났다. 어느 여론 조사에서는 60% 이상이 개최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왔다. 선수들이 준 감동 덕분이다. 그리고 무더위와 개최에 대한 비난을 감수하며 제 자리를 지켜온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건 마라톤 선수들이다. 특히 출신국이 아닌 다른 나라 국적으로 출전한 세 선수, 도중에 부상으로 기권한 한국의 오주한, 네델란드의 아브비 나게예, 벨기에의 바시르 아브디다.

2020 도쿄올림픽 마라톤 메달리스트. 케냐의 킵초게. 네달란드의 나게예. 벨기에의 아브디. [사진 NHK 중계화면 캡처]

2020 도쿄올림픽 마라톤 메달리스트. 케냐의 킵초게. 네달란드의 나게예. 벨기에의 아브디. [사진 NHK 중계화면 캡처]

세 선수 다 자기가 태어난 나라의 대표가 아니다. 오주한은 케냐 출신이다. 나게예와 아브디는 소말리아 출신이다. 오주한은 한국인 오창석 코치에게 스카우트 되어 ‘오직 한국을 위해 달린다’는 뜻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 의미는 알겠지만, 솔직히 말하라면 이름이 너무 무거워 보였다. 그래서 더 관심이 갔다.

오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마라톤 중계를 봤다. 처음부터 선두 그룹에서 달렸다. 한국 유니폼을 열심히 쫓았다. 팬들의 도움으로 찾아서 신게 되었다는 연녹색 운동화를 열심히 찾았다. 킵초게 선수 중심으로 만들어진 선두 그룹에 있어 화면에서 사라지는 일이 적었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선두 그룹에서 모습이 사라졌다. 조금 있자 오 선수가 허벅지를 쓰다듬는 모습이 보였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국 허벅지 부상으로 기권했다. 이번 대회는 기권하는 선수가 많았다고 한다.

오 선수를 쫓다 킵초게 선수에게 주목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흔들림 없는 모습이 좋았다. 자기 앞으로 나가는 선수가 있어도 서두르지 않았다. 오직 자신과 싸움하는 사람 같았다. 그러다 마지막에 속도를 냈고 명실상부 금메달 후보로 달려나갔다. 뒤에 남은 세 선수가 은메달과 동메달을 두고 싸우는 모양새가 되었다. 킵초게와 같은 케냐의 선수도 상태가 나빠 보이지 않았다. 케냐가 메달 두 개는 따겠다 싶었다.

아브디를 응원하는 나게예 선수. 둘은 소말리아 난민 출신이다. [사진 NHK 중계화면 캡처]

아브디를 응원하는 나게예 선수. 둘은 소말리아 난민 출신이다. [사진 NHK 중계화면 캡처]

그런데 의아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2위를 달리는 선수가 뒤에 있는 유니폼 색이 다른 선수를 보며 힘내라고 손짓하고 있는 게 아닌가. 아무리 금메달은 포기한 상황이라 해도 타임 기록이 중요한데 왜 서두르지 않고 저러고 있는 걸까. 그 순간 중계하는 아나운서의 해설이 들려왔다. “둘은 소말리아 난민 출신이다. 지금도 연습을 같이한다.” 아하! 납득이 갔다. 둘은 동지였다. 같은 나라 사람이었던 것이다.

은메달을 딴 네덜란드의 나게예와 동메달을 딴 벨기에의 아브디는 내전 중인 소말리아를 탈출한 난민 출신이었다. 그리고 서로 다른 나라의 대표로 올림픽에 참가하고 은메달과 동메달을 땄다. 둘은 소말리아 사람들을 위해서도 달리고 있던 것이다. 닭살이 돋았다. 서로 힘내라고 응원하는 둘을 보며, 고난을 극복해 온 동지끼리의 절실함이 전해져 왔다. 나게예의 응원 덕분에 아브디는 동메달을 땄다. 아브디는 도중부터 힘이 들었지만 나게예의 응원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나게예는 더 속도를 낼 수도 있었지만 아브디 상태가 안 좋아 보여 격려했다고 한다. 그 모습은 보는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올림픽 폐회식에서 마라톤 시상식이 있었다. 금메달은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 은메달 네덜란드의 아브비 나게예, 동메달 벨기에의 바시르 아브디였다. 대표하는 나라는 다르지만 ‘소말리아 난민’ 둘이 시상대에 올랐다. 나게예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덜란드와 벨기에뿐만 아니라 소말리아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어서 기쁘다.”

‘달리는 철학자’라 부르고 싶은 엘리우드 킵초게. 그의 꿈은 ‘이 세계를 런닝월드로 만드는 것’이다. [삿포로=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

‘달리는 철학자’라 부르고 싶은 엘리우드 킵초게. 그의 꿈은 ‘이 세계를 런닝월드로 만드는 것’이다. [삿포로=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

금메달을 딴 킵초게 선수의 꿈은 ‘이 세계를 러닝 월드로 만드는 것, 평화롭고 건강한 세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마라톤 중계 때 이 말을 들었을 때 킵초게는 달리는 철학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는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다른 선수를 견제함도 없이(실제로 했을지 모르나 영상으로는 느낄 수 없었다) 오로지 자기의 리듬을 유지하는 모습에 꿈 이야기까지 듣고 나니 그야말로 실천하는 철학자였다.

극히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폐회식 때에 화면으로 보이는 킵초게의 얼굴이 쇼토쿠 태자를 가르쳤다는 백제 출신의 관록 스님 얼굴이 자꾸 겹쳐 보였다(59회 글 참조). 깊은 눈과 커다란 귀가 닮았다. 킵초게는 달리는 수도승 같다.

8월 24일부터 9월 5일까지 ‘2020 도쿄 패럴림픽’이 개최된다. 코로나 감염자의 증가로 불안한 상황이다. 8월 말까지로 되어있는 ‘긴급사태선언’이 9월 이후에도 계속하는 쪽으로 조정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올림픽이 무사히 끝나길 기도했다. 폐회식까지 끝났으니 무사히 끝났다고 생각하고 싶다. 이어서 패럴림픽도 무사히 끝나길 빌어본다. 개최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개최되는 대회. 그 부담과 스트레스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코로나의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었다고 되돌아볼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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