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꾼주미경의자일끝세상] 불효 자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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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등반에세이집 '하늘길 타는 여자'를 냈다. 마침 어머니 생신 즈음이라 모인 가족들 앞에 책을 내놓았다. 책에 간단한 글을 적어 어머니께 드리니 이렇게 좋은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다며 몹시 기뻐하셨다. 형제들로부터도 축하인사를 받았고,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늦게까지 이야기꽃을 피우다 헤어졌다. 하지만 책으로 인한 화기애애함은 거기까지였다. 다음날 걸려온 전화는 책에 대한 감상이 아니라-하긴 그것도 감상은 감상이다-우려와 근심이 담긴 질책이었다.

먼저 어머니. "아니 산에 다닌다더니 절벽을 타냐? 그 위험한 걸 어쩌자고 네가 한단 말이냐! 옛날부터 사람 놀래키더니 나이 먹어서도 어째 이러냐?" "아녜요 엄마, 장비 다 갖추고 안전하게 해요." "밧줄에 대롱대롱 달려서 안전이 어딨냐? 제발 하지 마라. 죽어도 바로 못 죽는다." "네, 알았어요 네, 네…." 이런 일을 예상 못 한 건 아니었다. 해서 책을 드릴까 말까 망설이기도 했다. 잠깐 후회가 고개를 내민다.

다음 전화는 언니다. "너 그거 너무 위험하다. 그거 꼭 해야 되니? 나 데리고 그냥 산에 다니면 안 되니?" 언니는 "왜인지는 몰라도 엄마가 책을 보고 우셨다"고 했다. 가슴이 싸했다. 가뜩이나 마른 딸내미가 위험한 바위를 타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타셨을까? 먹고 사느라 하는 일도 아니고 나이 먹은 딸내미의 유별난 취미 때문에 노심초사하실 어머니가 안쓰러웠다. 차라리 모르시는 편이 나았을까?

30대 초반의 직장인이자 내 등반 동료 중 하나인 L씨는 기어코 등반을 그만 두었다. 아들 보러 오신 어머니께 꼭꼭 감추어 놓았던 등반 장비를 들킨다고 말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모르긴 해도 그 장비들을 보고 기함하시는 어머니께 "하지 않겠다"는 약속 말고 뭘 더 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나라 산악사에도 등반으로 산화한 산악인이 허다하거니와 주말 뉴스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이 등반 사고이니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안위에 대한 어머니의 절박한 심정이야 십분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어려운 바위 루트를 오르는 그의 날렵한 몸짓과 선량한 웃음을 다시 볼 수 없게 되었음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딱히 이유를 댈 순 없지만 언젠가 그는 다시 인수봉 밑에 나타나리란 생각도 한다. 그렇게 등반을 접기에는 그가 너무도 산을 좋아했고, 또 아직 젊기 때문이다.

그의 어머니, 또 내 어머니가 주말 인수봉 밑에 가 보신다면 아마도 많이 놀라실 게다. 그 많은 사람이 그렇게 유쾌하게 바위를 오르고 있으니 말이다. 열 살 남짓한 어린애도 있고, 환갑을 훌쩍 넘긴 노인도 계시다. 등반은 더 이상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이 목숨 걸고 하는 극한의 스포츠가 아니다.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즐겁게 몰두할 수 있는 대중적인 레저가 돼 가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의 전화도 뜸해졌다. 바위를 타는 딸내미도 이제 어머니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주미경 등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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