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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美 파운드리공장 테일러로 ‘낙점’...세 마리 토끼 잡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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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삼성전자는 23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주지사 관저에서 신규 파운드리 공장 부지로 테일러시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왼쪽부터 존 코닌 상원의원, 그랙 애벗 텍사스 주지사,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23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주지사 관저에서 신규 파운드리 공장 부지로 테일러시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왼쪽부터 존 코닌 상원의원, 그랙 애벗 텍사스 주지사,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 삼성전자]

미국 정부에 의해 폐기된 ‘옵티머스 프라임’은 한적한 시골 마을에 고물 트럭의 모습으로 방치된다. 이후 엔지니어의 손을 거쳐 트랜스포머로 부활한다.

옵티머스가 부활하는 시골 마을 

지난 2014년 개봉한 영화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에서 옵티머스 프라임이 발견된 마을이 바로 텍사스주 테일러시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이처럼 미국의 전형적인 농촌인 텍사스주 테일러시가 첨단 반도체 단지로 변신한다. 삼성전자는 24일 미국 내 신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생산라인 건설 부지로 테일러시를 최종 선정‧발표했다.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 때 현지에 반도체공장 조성을 공식적으로 밝힌 지 6개월 만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미국에 신규 파운드리 건설 방침을 정했지만 최종 입지 선정을 결정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미국 출장을 통해 현안을 매듭지은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4일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하고 있다. [뉴스1]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4일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하고 있다. [뉴스1]

6개월 장고…이재용 출장으로 ‘매듭’ 

이날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 주지사 관저에서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그렉 애벗 텍사스 주지사, 존 코닌 공화당 상원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고 부지 선정 사실을 발표했다. 신규 파운드리 공장은 알려진 대로 170억 달러(약 20조원)를 들여 2024년 완공될 예정이다.

삼성전자 측은 “신규 라인에는 첨단 공정이 적용될 예정”이라며 “5세대(5G) 통신, 고성능 컴퓨팅(HPC), 인공지능(AI) 등 다양한 분야의 첨단 시스템 반도체가 생산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25일 예정된 삼성물산 합병 의혹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24일 귀국해 회견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재용 “현장의 처절한 목소리에 마음 무거워”

10박11일 일정으로 북미 출장을 마치고 이날 오후 4시쯤 김포공항에 도착한 이 부회장은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의 질문에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오랜 비즈니스 파트너들과 회포를 풀었고 미래에 관해 얘기를 할 수 있어서 참 좋은 출장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파운드리 투자 관련해서는 “투자도 투자지만 현장의 처절한 목소리들,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고 오게 되니까 마음이 무겁더라”고 했다. 이 부회장은 이번 출장 중 백악관 핵심 관계자와 연방의회 의원,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버라이즌·구글 최고경영진 등 정재계 인사를 연이어 만났다.

그랙 애벗 텍사스 주지사와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 애벗 주지사 트위터]

그랙 애벗 텍사스 주지사와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 애벗 주지사 트위터]

백악관 “삼성의 반도체 투자 환영” 

브라이언 디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부지 확정 발표 직후 성명을 내고 “삼성이 텍사스에 새 반도체 공장을 건설함으로써 (반도체) 공급망을 보호하고 제조 기반을 활성화하며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게 된 것을 환영한다”며 “미국의 공급망을 보호하는 것은 조 바이든 대통령과 행정부의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삼성 투자 유치가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의 일환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현지선 “1800년대 철도 건설 이후 중대 뉴스”

현지 반응도 뜨겁다. 그렉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삼성의 테일러 반도체 생산 시설은 텍사스 중부 주민들과 가족들에게 수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텍사스의 특출한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이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지 매체인 테일러 프레스는 브랜트 라이델 테일러시장의 말은 인용해 “삼성의 이번 투자 결정은 1870년대 인터내셔널 그레이트 노던 철도가 이곳에 발을 디딘 이래로 지역경제에 가장 중요하고 중대한 발전”이라고 보도했다.

삼성의 테일러시 파운드리 공장 선정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현지 매체 테일러 프레스. [사진 테일러 프레스 캡처]

삼성의 테일러시 파운드리 공장 선정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현지 매체 테일러 프레스. [사진 테일러 프레스 캡처]

삼성 “오스틴과의 시너지 등 종합적 고려”

삼성전자 측은 테일러시를 선정한 배경에 대해 “기존 오스틴 생산라인과의 시너지, 반도체 생태계와 인프라 공급 안정성, 주(州)정부와 협력, 지역사회 발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약 150만 평 부지에 조성되는 테일러 공장은 기존 삼성전자 오스틴 사업장과 직선으로 25㎞ 거리다. 오스틴 사업장 인근의 소재·장비업체와 협력할 수 있고, 용수·전력 등 반도체 생산라인 운영에 필요한 인프라도 풍부하다.

삼성전자 신규 파운드리 공장으로 선정된 테일러시 부지. [사진 커뮤니티 임팩트]

삼성전자 신규 파운드리 공장으로 선정된 테일러시 부지. [사진 커뮤니티 임팩트]

삼성, 1조원 넘는 세금 감면 혜택받을 듯 

테일러시의 적극적인 구애도 한몫했다. 앞서 테일러시는 삼성전자에 10년간 재산세의 92.5%, 이후 10년간 90%, 그 후 10년간은 85%에 해당하는 보조금 제공을 약속했다. 업계 관계자는 “테일러시와 테일러시가 속한 윌리엄슨카운티 등에서 삼성전자가 받는 세금 감면 혜택은 1조원을 넘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신규 파운드리 부지가 결정되면서, 삼성전자는 세 마리 토끼를 잡을 기회를 쥐었다는 평이 나온다.

먼저 미국과 반도체 동맹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원한 반도체 업계 전문가는 “이번 투자는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미국과 동맹 관계를 공고히 하는 효과가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이 부회장은 최종 부지 선정 직전 백악관 핵심 참모와 연방의회 의원들을 만나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삼성의 역할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부지 발표 직후 성명에서 “미국 내 반도체 생산 증대는 국가와 경제 안보에 매우 중요하다”며 “삼성, 그리고 다른 반도체 제조업체와의 계속되는 파트너십을 고대한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기도 평택사업장을 방문해 파운드리 생산설비 반입식에 참석해 현판 제막을 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지난 1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기도 평택사업장을 방문해 파운드리 생산설비 반입식에 참석해 현판 제막을 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화성-오스틴-테일러 잇는 반도체 체계 강화  

삼성의 시스템 반도체 생산 체계도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번 신규 라인 건설로 경기도 기흥‧화성‧평택과 미국 오스틴‧테일러를 잇는 삼성의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생산 체계가 완성됐다”며 “고객사 수요에 대해 보다 신속한 대응은 물론 새로운 고객사 확보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그래픽 이미지.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그래픽 이미지.

세계 1위 TSMC 추격전 속도 붙을 전망  

파운드리 세계 1위인 대만 TSMC 추격전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 따르면 올 2분기 기준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 58%, 삼성전자 14%였다. 하지만, 첨단 공정인 10나노미터(㎚·1㎚=10억 분의 1m) 이하 시장만 보면 약 6대 4 정도로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삼성이 미국에 신규 파운드리를 완공하면 TSMC에 치우쳤던 애플·퀄컴·AMD 등 미국의 대형 고객을 끌어올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며 “이러면 파운드리 시장 판도가 바뀔 수 있다”고 예측했다.

여기에 삼성은 내년 상반기에 최신 기술인 ‘게이트올어라운드(GAA)’를 적용한 3나노 기반의 반도체를 양산할 예정이다. GAA는 반도체 칩의 기본 소자인 트랜지스터를 더 작고 빠르게, 적은 전력만 소모하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연구소장은 “삼성이 GAA 양산에 성공하면 최첨단 서버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시스템온칩(SoC) 물량을 TSMC에서 충분히 빼앗아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파운드리 자신감 드러내는 삼성전자  

유독 파운드리 사업에서 움츠렸던 삼성전자는 최근 어깨를 펴고 있다. 지난달 열린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21’에서 파운드리사업부 출범 첫해인 2017년과 비교해 2025년까지 파운드리 용량을 3배, 2026년까지 3.2배 늘리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올해 100개 정도인 파운드리 고객사를 2025년까지 300개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업계 관계자는 “테일러 신규 공장과 최신 공정 기술 확보로 삼성 파운드리가 TSMC를 제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기남 부회장은 “올해는 삼성전자 반도체가 미국에 진출한 지 25주년이 되는 해로 이번 테일러 신규 반도체 라인 투자 확정은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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