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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뤼베롱 산맥 주변 보석처럼 박혀 있는 작은 마을들

중앙일보

입력

[더, 오래] 연경의 유럽자동차여행 (17)

뤼베롱의 예쁜 마을들

뤼베롱 산맥 주변에는 작고 아름다운 마을이 많다. 엑상프로방스에서 루르마랭, 쿠쿠롱, 앙수이 마을을 자동차로 하루에 둘러볼 수 있고, 루씨용이나 고르드에서 간다면 산 위 마을 풍경이 아름다운 보니유나 피카소의 연인이자 사진작가 도라 마르가 살았고, 피터메일이 쓴 책에서 지중해의 햇살이 가득한 축복 받은 마을이라고 표현된 메네르브, 사디즘을 탄생시킨 라코스테(Lacoste, 프랑스 귀족 사드는 홍등가 여성들에게 학대 성행위를 하고 남색 혐의로 사형 선고까지 받은 인물로 사드성의 주인) 같은 마을을 하루에 돌아볼 수 있다.

카피라이터로 유명한 피터 메일은 프랑스 사람보다 더 프로방스를 사랑했던 작가로 프로방스 뤼베롱 자락의 200년 된 농가를 구입해 살다가 2018년 메네르브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쓴 『프로방스에서의 1년(우리나라에서는 『나의 프로방스』라는 제목으로도 재간)』은 절판됐으니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어느 멋진 순간’을 보고 가면 영화 속 풍경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전 세계'에 500만부 이상 팔린 피터 메일의 '나의 프로방스'. [사진 연경]

전 세계'에 500만부 이상 팔린 피터 메일의 '나의 프로방스'. [사진 연경]

피터 메일이 이 책을 출간했을 당시 출판사는 3000부 정도가 나갈 것으로 예상을 했다고 한다. 어찌 보면 한 달 살기의 원조인 이 책의 반향은 대단해 전 세계에 500만 부 이상이 팔려나갔고 여행자들에게는 ‘프로방스 살기’ 꿈을 심어주었다. 책은 이미 절판되었고 중고 서점에서 책을 구한 나는 보물처럼 책을 간직하고 있다. 이 책은 단순히 프로방스에 보내는 찬사도 아니고 흥미진진하지도 않으나 프로방스에 녹아든 그가 프로방스 사람이 다 되어가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는 책이어서 실감이 난다.

뤼베롱 지역의 마을은 전형적인 프로방스 시골 마을이다. 대단한 유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위대한 역사가 깃든 곳도 아니다. 겨울에는 미스트랄이라는 혹독한 추위가 있기도 하지만 연중 내내 찬란한 햇살이 쏟아지는 산과 들이 있는 프랑스 남쪽 프로방스에 시골살이하러 온 작가는 아주 오래된 집을 고치며 인부들과 실랑이를 하고, 불르 경기(쇠공을 굴려하는 놀이)와 염소 경주 대회를 즐기며 이웃과 정을 쌓으며, 연락 한 번 없다가 숙소를 해결해 보려는 친구들의 줄지은 방문에 난감해하는 과정을 그만의 위트와 함께 그려냈다. 이 지역 특산품 송로 버섯, 올리브유, 와인의 맛을 알게 되는 과정까지도.

뤼베롱의 높고 낮은 산들 사이로 펼쳐진 구릉 속의 아주 작지만 다양하게 빛나는 마을들을 찾아 요리조리 다녀보는 기쁨이 있는 드라이브 여행을 시작해 보자!

알베르 카뮈의 루르마랭

이방인을 쓴 알베르 카뮈는 노벨 문학상 상금으로 1958년 남프랑스 루르마랭에 집을 마련해서 살았다고 한다. 스승 장 그루니에와의 인연으로 이 마을을 알게 된 카뮈는 스승과 오갔던 편지에서도 루르마랭에 집을 사게 된 일을 썼다. ‘루르마랭에서 괜찮은 집을 발견했노라고, 곰곰 생각해 본 끝에 이 참한 집을 샀노라’고.

1960년 파리에 가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가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한 카뮈, 루르마랭에 겨우 2년을 살았지만 카뮈의 명성은 드높고 현재 그 집에는 딸이 살고 있다. 카뮈와 앙리 보스코는 루르마랭의 매력에 매혹되고 이름을 널리 알린 작가로 기려진다. 마을 묘지에 두 사람 다 고이 잠들어 있다. 루르마랭은 공예품, 카페, 갤러리가 아주 독특하고, 매주 금요일 오전 전통시장도 활기차다.

루르마랭 주차장

① Avenue Raoul Dautry, 84160 Lourmarin / 좌표 43.764379, 5.361505
② 24 Avenue Laurent Vibert, 84160 Lourmarin / 좌표 43.763641, 5.359410
③ 투어 오피스 가까운 노상주차장 43.766367, 5.360768 (주차 면이 정말 좁다.)

루르마랭 전통시장

루르마랭 시장. [사진 Jacques on Wikimedia commons]

루르마랭 시장. [사진 Jacques on Wikimedia commons]

피터 메일도 자주 왔던 루르마랭 시장은 매주 금요일 오전에 열린다. 손으로 짠 밀짚 가방과 염소젖을 발효시켜 만든 고트 치즈, 지역에서 생산된 과일, 채소 등을 살 수 있다. 투어 오피스 앞 도로에서 열린다.

루르마랭 성

루르마랭 성. [사진 연경 제공]

루르마랭 성. [사진 연경 제공]

요새였던 곳에 건축된 성은 1920년 로베르 로랑 비베르가 고성을 사들여 보수했고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빌라 메디치’를 설립한다는 조건으로 엑상프로방스 예술 과학 프렌치 아카데미에 성을 기증했다. 성 바로 앞에 주차장이 있다. 알베르 카뮈의 스승 장 그르니에는 1930년 이 재단의 기숙생이 되어 한 달 정도 묵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알제리에 가서 교사 생활을 했었는데, 그때 만난 학생이 바로 카뮈였고 이 둘은 스승과 제자를 넘어 평생 교류하고 서로의 사상과 글에 영향을 주는 동반자가 된다.

알베르 카뮈 집

노벨 문학상 수상 직후 상금으로 ‘멋들어진 집 한 채를 사고 싶다’고 한 카뮈가 산 집은 원래는 누에를 치는 집이었다고 한다. 이 집에서 주로 서서 글을 썼다는 카뮈는 출판원고를 품에 넣고 갈리마르 출판사 미셸 갈리마르와 함께 파리로 가던 중 자동차 사고로 세상과 이별하고 만다.

카뮈의 묘지
좌표 43.759717, 5.362019

카뮈 묘지. [사진 Walter Popp on Wikimedia commons]

카뮈 묘지. [사진 Walter Popp on Wikimedia commons]

카뮈와 앙리 보스코가 잠든 마을 묘지도 도보로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데 노벨문학상을 받은 대가의 무덤이라고, 거창하게 만들어 놓지 않아 오히려 반갑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파리 판테온으로 이장하라고 권유했음에도 카뮈 가족은 ‘이미 영광스러운 아버지인지라 다시 영광스러워질 필요가 없으며 아버지 자신도 여기 묻히길 원했을 것’이라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한다.

세 개의 가면이 있는 분수
로랑 비베르 재단이 마을에 기부한 분수는 1937년 만들어졌다. 앙리 보스코는 이 분수가 이 지역의 중요한 자연 요소인 론, 뒤랑스, 뤼베롱을 대표한다고 정의했다. 세 그리스 신(바다의 신 포세이돈, 미의 신 아폴로와 양떼와 목자의 신 판으로 추정)이 떠올려진다. 루르마랭 곳곳에 오래된 분수가 있으니 갤러리와 레스토랑과 카페도 찾아보면서 루르마랭을 즐기면 된다.

‘어느 멋진 순간’의 쿠쿠롱

쿠쿠롱. [사진 연경 제공]

쿠쿠롱. [사진 연경 제공]

쿠쿠롱(Cucuron)은 두 개의 언덕에 폐허가 된 유적이 남아있는 조용한 마을이다. 마을 이름은 두 개의 젖꼭지(‘cuc’은 켈트어로 젖꼭지라는 뜻)에서 유래됐다. 로마시대부터 정착지가 있었다고 한다. 러셀 크로우 주연 영화 ‘어느 멋진 순간’은 뤼베롱 지역 여러 곳에서 촬영했는데 쿠쿠롱의 긴 사각 인공 연못도 촬영지 중 하나다. 마을의 인공 연못이 이른바 쿠쿠롱의 핫 플레이스이고 주변에 레스토랑들이 있다. 폐허가 된 성채도 있고 성벽도 있고 잔여왕의 집도 있고 주차장은 관광 안내소 건너편으로 길 가 주차장에 해도 되고 마을 밖에 무료 주차장도 있다.

쿠쿠롱 연못. [사진 연경 제공]

쿠쿠롱 연못. [사진 연경 제공]

원래 제분소와 풍차가 있었던 곳이었는데 19세기에 풍차가 없어지면서 유원지가 됐다가 정비된 곳이다. 200년 이상 된 비행기 나무들이 아치를 이루고 있고 레스토랑 카페가 줄지어 있어 여행자가 쉬어가기 좋다.

우리나라 최초의 김대건 신부에게 사제품을 준 파리외방 선교회 소속 조선 3대 교구장 페레올주교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이기도 하다. 쿠쿠롱에 간다면 아주 작은 노트르담 드 볼리외 성당을 찾아보면 좋겠다. 페레올 주교는 서울에서 선종해 미리내 김대건 성인 묘지 옆에 묻혔으며 1839~46년 순교자 82명의 자료를 교황청에 보내 시복시성을 청원했다고 한다. 이 중 70명이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시성됐다고 하니 우리나라와 인연이 닿아있는 쿠쿠롱 마을이다.

앙수이 마을(Ansouis)

언덕 위에 세워진 전형적인 프로방스 작은 마을로 이브 몽땅 주연의 '마농의 샘' 촬영지인데 마을을 굽어보고 있는 성이 핵심 포인트이다. 주차는 마을 한 가운데에도 있고 성 앞에도 있다.
Visitor Parking / 주소 5567F Rue de France, 84240 Ansouis

앙수이 성

앙수이 성. [사진 연경 제공]

앙수이 성. [사진 연경 제공]

10세기 요새로 17~18세기 증축했고 2008년 개인이 성을 매입 정성스럽게 가꾸었다. 옥상에서 포도밭과 생뜨 빅투아르 산까지 보인다. 성 방문은 사전 예약해야 하고 목요일에서 일요일까지 오후 3시와 4시 30분의 가이드 투어로만 볼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휴업 중이니 방문 시절에 개장 여부를 확인해 보자. 성인 10유로.

앙수이 마을에 프로방스 전통 인형인 상통을 만드는 장인이 하는 작업실이자 가게가 있다. 상통은 진흙으로 만드는 인형인데 색채도 다양하고 프로방스 사람들이 주인공이며 이들의 문화가 담겨 있다.

상통을 만드는 사람을 산토니에라고 하는데 앙수이 마을의 프랑스 최고의 산토니에 중 한 명인 다니엘 갈리는 프랑스 최고의 산토니에 중 한 분이다.

프로방스 전통인형 상통. [사진 pixabay]

프로방스 전통인형 상통. [사진 pixabay]

사실 상통 인형 상점은 고르도에도 있고 퐁텐 드 보클뤼즈에도 있다. 엑상 프로방스 시장에도 나오고 마르세유에도 있으니 구경해 본다. 상통을 처음 봤을 때 진흙으로 빚은 이 인형의 정체가 무엇일까 참 궁금했는데 대략 18세기 말부터 만들어졌다고 한다. 프랑스 혁명 때 교회에 가지 못한 사람들이 성탄절에 등장하는 인물의 조형물을 집에서 만들면서 시작된 것이다.

예수 탄생 장면을 만든 상통을 ‘크레슈’ 라고 하는데 프로방스 사람들은 12월에 집에서 크레슈를 만드는 전통을 200여년이나 지켜왔다고 한다. 크레슈에는 24일 자정에는 아기 예수 상통이 추가되고 1월 6일 주현절에는 3명의 동방박사가 추가된다. 재밌는 것은 예수 탄생 장소는 베들레헴으로 묘사되지만 이들이 입고 있는 옷은 전통 프로방스 복장이다. 등장인물 또한 프로방스의 보통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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