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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세계를 바꾼 사과 그림…세잔 루트를 따라서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연경의 유럽 자동차여행(16)

물의 나라 액상프로방스 (2)

남프랑스 여행길에서 만나는 세잔의 자취는 어떤 것일까. 엑상프로방스 로똥드 분수 옆에서 세잔의 동상을 만나는 것을 시작으로 세잔의 흔적을 따라가 보자.

엑상프로방스의 세잔 루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카페 회원이 추천해 준 한 편의 영화를 본 후였다. 영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은 제목으로 본다면 에밀 졸라의 시선에서 본 세잔의 이야기다. 그러나 실제 내용은 작가·정치가로 대단한 성공을 거둔 졸라와 생전에는 그다지 이름을 날리지 못했지만 피카소가 유일한 스승이라고 칭했고, 근대와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추앙받은 세잔의 삶을 그린 영화다.

그림을 좋아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천리만리 엑상프로방스 가서 한 달 살아 봐’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한 예술가의 삶은 애처롭기도, 안타깝기도 하면서 응원도 보내고 싶기도 했다. 그의 수줍은 성품과 모남과 고집, 그러나 그림에 대해서는 굽히지 않았던 열정이 한없이 경외롭기도 했다.

영화의 마지막 신에서 울컥했으니 엑상프로방스에서 세잔을 느껴 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보고 발걸음을 떼기 바란다. 세잔에 대해 깊이 있게 알지도 못하므로 나는 여행자의 시선으로 엑상프로방스에서의 세잔 루트를 따라가 본다.

엑상프로방스 세잔 루트

엑상프로방스 관광안내소에서는 세잔의 흔적을 따라갈 수 있는 지도를 준다. 이른바 세잔 루트인데 장소가 많고 방문 처에 따라서 호불호도 갈리므로 주어진 시간에 따라 갈 수 있는 곳을 정하면 된다. 엑상프로방스에서 적어도 1박 이상은 해야 가능하겠다.

도로의 세잔루트 마크. [사진 cezanne-en-provence]

도로의 세잔루트 마크. [사진 cezanne-en-provence]

엑상프로방스의 세잔 코스는 시내는 도보로 보고(세잔 아틀리에나 화가들의 들판까지) 그 이후의 코스는 대중교통이나 택시나 자동차를 이용하면 되는데 투어를 이용해야 하는 코스도 있다. 소뵈르 성당까지는 이전 편에서 다루었으므로 이제 그 다음 코스로 가 보자.

세잔 도보 루트 편도 1km 정도.

세잔 도보 루트 편도 1km 정도.

세잔의 집(Maison Cezanne)

세잔 생가. [사진 Vestemocoso on Wikimedia Commons]

세잔 생가. [사진 Vestemocoso on Wikimedia Commons]

미라보 거리 르네 왕 분수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다. 현재 개인 소유로 들어가 볼 수 없다. 모자 사업으로 자수성가한 뒤 은행을 세운 아버지를 둔 세잔이라 중심가에 이런 집에 살았었다. 어린 시절 따돌림받았던 에밀 졸라를 진정한 벗으로 대했던 의리의 세잔이 떠올려진다.

세잔 아틀리에(Atelier de Cezanne, Cezanne's studio)

세잔 아틀리에(좌). 엑상프로방스 관광안내소. [사진 Bjs on flickr]

세잔 아틀리에(좌). 엑상프로방스 관광안내소. [사진 Bjs on flickr]

세잔 아틀리에는 화가의 삶이나 그림에 관심 없으면 호불호가 있다. 말년의 세잔이 혼신의 힘을 쏟아 그림을 그렸던 집인 만큼 그의 온기가 남아있는 곳이다. 화실은 예약만 했다면 금방 둘러 볼 수 있고 정원이 있어 잠시 쉴 수도 있다. 아버지로부터 큰 유산을 받은 세잔은 이 터를 사서 직접 설계도면을 그렸고 주변의 산책로를 가꾸었다. 채광을 위해 북쪽의 벽은 전체가 유리창이고 남쪽 벽에도 큰 유리창이 두 개 있다. 매일 출근해 2층 스튜디오에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날씨가 춥거나 비가 오면 실내에서 정물화를 그렸던 세잔이 썼던 오브제며 도구며 편지들이 보존되어 있다. 이 집은 세잔 사후 15년간 닫혀 있다가 1921년 지역 문화애호가 마르셀 프로방스가 상속자인 세잔의 아들에게 이 집을 사들여 보존해오고 있다고 한다. 그 후 다시 지역 개발로 헐릴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세잔 기념위원회가 발족돼 대대적인 모금으로 아틀리에를 인수했고 엑스 마르세유 대학에 기증됐고, 1954년부터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개방시간이 짧으니 계산에 넣어야 하고 채석장과 묶어보는 여행자라면 그때 보면 된다.

세잔 아틀리에 영업시간(점심시간 휴관)
3월 : 9:30~12:30 / 14:00~17:00
4·5월 : 9:30~12:30 / 14:00~18:00
10·11월 : 9:30~12:30 / 14:00~17:00
12월 : 9:30~12:30 / 14:00~17:00(일요일 휴관)

세잔의 문(Portail Cézanne)

세잔의 문. [사진 Georges Seguin on wikimedia commons]

세잔의 문. [사진 Georges Seguin on wikimedia commons]

세잔의 아틀리에에서 화가들의 언덕 가는 길에 볼 수 있는 기념문이다. 두 기둥 사이로 생트 빅투아르 산이 잘 보인다.

화가들의 들판(Field of the Painters)

좌표 43.544558, 5.444229

세잔의 문에서 북쪽 생 빅투아르 산을 보는 길로 올라가다 좌측 계단을 만나면 접어든다. 좌측 사진의 표지판을 보고 우측 사진에서 오른편 계단 길로 올라가는 것이다.

구글 스트리트 뷰로 본 표지판과 계단.

구글 스트리트 뷰로 본 표지판과 계단.

생 빅투아르산은 고대 로마 장군 카이우스 마리우스가 토이톤 족을 포위했던 곳으로 승리의 산이라는 의미다. 해발 1100m의 돌산이고 나무가 없어 멀리서 보면 만년설을 머리에 인 듯 하얗게 보인다. 세잔은 이 산을 좋아해 많이 그렸다. 이 포인트에서 그리기도 하고 채석장에서도 그리기도 했다.

이 산을 대상으로 유화 44점 수채화 43점을 남겼다니 계절마다, 시시각각 변하는 생트 빅투아르의 모습을 담으려 고집스럽게 캔버스와 붓을 놓지 않았던 그를 떠올려 보게 된다.

커다란 소나무와 생트 빅투아르 산. [사진 영국 코톨드뮤지엄 소장]

커다란 소나무와 생트 빅투아르 산. [사진 영국 코톨드뮤지엄 소장]

자 드 부팡(Bastide du Jas de Bouffan)

세잔 그림과 아름다운 자드부팡. [사진 cezanne-en-provence]

세잔 그림과 아름다운 자드부팡. [사진 cezanne-en-provence]

이제 엑상프로방스 외곽으로 가본다. 세잔의 아버지가 소유한 별장으로 1859년에서 1899년까지 무려 40년 동안 유화 36점과 수채화 17점을 그렸다고 한다. 집 앞 공원, 농장, 숲과 밤나무 가로수길, 연못과 동상들 곳곳에 이젤을 세웠다.

현재 수리 중이고 가이드 투어로만 볼 수 있다. 세잔과 아버지는 세잔이 법률가가 되기를 원했지만 세잔은 학업을 중간에 그만두었고 아버지 은행에서 잠시 일하다가 에밀 졸라가 있는 파리로 떠나 그림을 그리게 되는 바람에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생활비 지원이 끊어질까 봐 결혼 사실도, 아이가 있는 사실도 오래 숨겨야 했다고 한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세잔의 아버지는 이 별장 1층에 세잔이 12개의 벽화를 그리도록 허락해 주었다. 아버지 사후 유산으로 받았지만 세잔은 이 집을 팔고 새로 아틀리에를 마련했다.

비베무스 채석장(Carrières de Bibémus)

채석장에서 보는 생트 빅투아르 산. [사진 cezanne-en-provence]

채석장에서 보는 생트 빅투아르 산. [사진 cezanne-en-provence]

세잔이 말년에 많이 찾았다는 채석장은 가이드 투어로만 볼 수 있다. 이 채석장의 돌들은 철 성분이 많아 붉다고 한다. 여기서 생트 빅투아르 산을 세잔의 시선으로 보는 체험을 할 수 있겠다. 세잔이 마련해 그림을 그렸던 오두막도 있다고 한다.

채석장 투어

엑상프로방스 관광안내소에서 9시 30분 출발, 영어와 프랑스어로 진행.
세잔 아틀리에 보고 해산 3시간 15분 소요, 비용 35유로.
6~9월은 당일 기상에 따라 폐쇄될 수 있음.

생피에르 묘지(CimetièreSaint-Pierre)

 세잔의 묘. [사진 SHERWOOD on flickr]

세잔의 묘. [사진 SHERWOOD on flickr]

주차는 묘지 앞에 한다. 생애 마지막을 오로지 그림에 바친 세잔, 괴팍하고 때로는 수줍고 불같이 화를 내는 성질이라(세잔의 어머니도 참지 못하는 성질이었다고 하니 유전일까?) 친구도 아내도 오래 둘 수 없었던 세잔은 비바람이 몰아치는 그날도 그림을 그리러 나갔다가 쓰러지고 만다. 열이 나는 상태에서도 정원지기를 그린 그림은 마지막 유작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폐렴으로 고인이 됐다.

따돌림당하던 에밀 졸라를 도운 감사의 표시로 받았다는 우정의 사과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고 집요하게 화폭에 담았던 세잔을 생각하면서 엑상프로방스 세잔루트 따라가기를 마쳐보려 한다.

당대 유행에 따르는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세운 세잔, 자연을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고 본질을 파악해 담아보고자 했던 세잔, 모든 사물의 형태를 원형과 구와 원뿔로 단순화시켰던 세잔. 그의 그림은 사후 날개를 달아 전 세계 미술관에 걸리게 되었으며 근대와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고까지 불리게 되었다.

세계를 바꾼 세 개의 사과가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세잔의 사과라고 하니 이제 미술관에 가면 세잔의 사과를 관심 있게 봐야겠다. 다행히 어느 곳에 가든 한 두 점은 꼭 있으니 많은 작품을 남긴 그가 고맙다.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세잔이 태어났고 사랑했던 고장이며 그의 마지막까지도 함께 한 엑상프로방스야말로 세잔에게 향하는 갈채를 함께 받을 만한 하다. 한때 절교했지만 다시 화해했던 에밀 졸라의 위대한 친구 세잔과 함께 영원한 영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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