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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서 판문점까지… 이찬삼특파원 한달취재기(다시 가본 북한:1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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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월북배우들 옛동료 안부 물어/촬영소엔 서울대,연ㆍ고대 모형/여우 몸사이즈 묻자 “그런 것 재지 않습니다”
『김동원ㆍ이해랑 아직 일들 합니까.』
『우리가 춘향이ㆍ평강공주 할 때 그들은 이도령ㆍ호동왕자역을 했댔는데….』
평양에서 만난 월북 여배우 문예봉(73)ㆍ김선영(76)은 옛 동료들의 안부부터 물었다.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접견실에는 이들 외에도 역시 「인민배우」라는 최상급 칭호가 붙은 유원준(남ㆍ71)이 나와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 문화봉이가 남조선에 있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문예봉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고 유원준도 『처와 아이들 둘을 두고 왔습니다. 큰 애는 47살,작은 애는 45살…. 그래서 저도 이산가족입니다』라고 했다.
그들은 최은희 부부에 대해 큰 관심을 나타내며 『미국에 있습니까. 남조선에 갔습니까』라고 묻기도 했다.
○“처자 소식 궁금해”
김현희 사건을 영화로 만들고 있다고 하자 『그게 뭡니까』라고 했다.
『KAL기 폭파사건 있지 않습니까.』
『아! 마유미 말입니까. 영화 아니라 더한 것을 만들어도 우리는 그들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말을 하던 그들은 어색하게 말꼬리를 흐리며 『어서 통일이 돼서 남조선 동무들과 다시 영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남해 바닷가 경치가 좋은데』하며 딴전을 피웠다.
『승호(김승호)가 출연한 「혈맹」을 봤는데,원래 광기가 있으니까 참 잘하더만. 나보다 10년 아랜데 물론 살아 있겠지.』
『해랑(이해랑)이는 일본 예술대 출신으로 배우로는 제일 인텔리였지. 그런데 건방졌어. 조선배우를 무식하다고 깔보고 말이야. 그 사람 아버지가 감옥소 공의(의사)였는데….』
『「신협」 지금도 있나? 누가 운영하나.』
『토월회는 참 역사에 남는 모임이었어. 복혜숙이가 거기 출신이었지. 김성진이는 복혜숙이와 헤어졌다지. 유명한 외과의사 아니야.』 그들은 자문했다가 자답하기도 하고 독백을 늘어놓기도 했다.
최근 통일원에서 북한영화도 상영하고 큰 백화점에서는 「모시조개」 「룡성맥주」도 선보였다고 말머리를 돌리자 그들은 사뭇 놀라면서 『이야! 대동강 모시조개가 남조선까지 갔구나.』 『남조선 장사치들 날치누나』라면서도 시절의 변화를 느끼는 듯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애정문제도 가미
김일성 지도자가 남조선 배우 사미자를 좋아한다고 최은희가 쓴 회고록에서 읽었다고 하자 『배우중에 미자가 넷이나 있느냐』고 물을 만큼 그들은 우리나라 연예계에 대한 소식이 깜깜했다.
아직도 노인역 등을 맡으며 현역배우로 활동하고 있다는 그들은 『이제 우리나라(북한) 영화도 혁명적ㆍ교양적(홍보성) 내용에다 남녀간 애정문제를 가미시키거나,인간문제를 많이 다룬다』라며 북한영화가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일반 주민들의 영화배우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요』라고 묻자 『존경하지요. 진짜 사랑합니다. 유치원 아이들도 만나면 인사합니다. 그리고 고집스런 어머니나 며느리 구박하는 시어머니역을 맡고난 다음에는 인사는 고사하고 대사 흉내내며 놀리지요. 참 속상합니다. 남조선과 사람들 생각은 똑같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우리 아이들도 요즘 좋고 나쁜 것을 무섭게,또 지독히 가립니다. 사람 사는 데는 다 마찬가집니다』라고 말하던 김선영은 서울 생각이 간절하다며 『어머니ㆍ애인ㆍ동생ㆍ아이들 다 버리고 왔습니다. 기가 막혀요 정말. 기자선생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혈육 만난 듯 반갑습니다. 이거 정말 「곡절많은 운명」입니다』라고 신세한탄까지 늘어놓았다.
그가 말한 『곡절많은 운명』은 요즘 북한에서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는 영화제목이다.
○김정일이 스카웃
영화 『도라지 꽃』의 여주인공으로 북한 제일의 스타가 되어 제1회 평양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오미란(36)과는 평양 봉화예술극장에서 만났다. 그녀는 뉴욕에서 열리는 「제1회 남북영화제」에도 참석한다고 했다.
오미란 역시 서울 출신 부모가 모두 연예인으로 연극배우였던 아버지 오향문과 어머니가 남한에서 활동했었다고 한다.
그녀는 현재 북한 최고배우로 『곡절많은 운명』을 비롯,『샛별』 『생의 흔적』 『새 정권의 탄생』 『그들의 모습』 등에 모두 주연배우로 등장한다.
그녀는 원래 이름없는 연극배우로 조역만 해오다 79년 영화 『축포가 오른다』에 첫 여주인공을 맡았으나 전망없는 배우로 낙인 찍혔는데 김정일이 이 영화를 보고 『연기가 소박하다』해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행운아다.
29세 때 미술하는 남편과 결혼해 6세된 아들 하나를 둔 그녀는 최근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아내에 대해 남편이 불안해하지 않느냐고 묻자 금방 정색을 하며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으로 『왜 말입니까』라고 반문했다.
「선생님을 특별히 좋아합니다」 「영화 내용에 감동했다」 「나도 주인공처럼 살고 싶다」 「연기수업에 방조(도움)를 받고 싶다」는 등의 편지를 하루 수십통씩 받고 있다는 그녀는 기자가 「몸의 사이즈」를 묻자 『그게 무슨 말입니까』라고 의아해했으나 설명을 듣고 『여긴 그런 것 재지 않습니다』라며 얼굴빛이 홍당무가 됐다.
○배우는 3백여명
자신의 몸매가 1백63㎝에 53㎏이라는 것 외에는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하나된 조국에서 여러분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1990.8.29. 오미란」이란 멋들어진 사인은 잊지 않았다.
기자는 남자 최고 인기배우 최창수(『임꺽정』 주인공)ㆍ김익승,『꽃파는 처녀』 주인공 홍영희,인기여우 김정화ㆍ백영희 등과도 영화계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북한에는 모두 3백여명의 배우가 있으며 이들은 극영화 전문인 「조선예술영화촬영소」와,군사물ㆍ혁명물 중심의 「조선 2ㆍ8예술영화촬영소」에 소속돼 있다.
책임연출(감독)과 부연출(조감독)이 각각 50여명 수준. 75만평방미터의 촬영거리(세트장)는 일본ㆍ유럽ㆍ남한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이중 남한부분은 다시 일제시대ㆍ자유당 정권ㆍ공화당 정권시절로 구분,학원가 소요를 촬영하기 위한 서울대ㆍ고려대ㆍ연세대 본관모형까지 벽돌로 지어 세트로 쓰고 있었다.
음악계 인물 가운데 만수대예술단(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겸 국립교향악단 겸임지휘를 맡고 있는 김일진(34)은 북한의 떠오르는 별.
6세 때 바이얼린으로 시작,8세 이후 첼로를 공부한 그는 평양음악무용대학을 졸업한 후 모스크바에 유학,호주ㆍ동독 등에서 수업하며 폰 카라얀을 사사해 85년도 폰 카라얀 국제콩쿠르에서 1등 없는 2등의 영예를 차지했었다.
○“아리랑이 좋아요”
김일진은 『북남 음악가들의 교환지휘를 중앙일보가 제의해왔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서로 오고 가는 것 막지 말아야지 통일되지 않겠습니까』라고 크게 환영했다.
그는 『나는 조선 관현악쟁이니까 차이코프스키곡보다는 아리랑이 좋습니다』라며 『북반부에도 크라시크(클래식)에 재간있는 일꾼들이 많으며,우리는 민족기악과 양악기를 배합해 제3의 울림을 찾아냈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그의 지휘로 된 「명곡」은 들어보니 혁명가곡을 뜻했으며 해금ㆍ가야금ㆍ죽관(피리)ㆍ단소 등을 오키스트라에 섞은 연주였다.
연주회에서 만난 대학생이나 일반인들이 순수 클래식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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