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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을'이면서 ‘갑'처럼 보이는 해결사…그 이름 사장에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태호 대표의 직장 우물 벗어나기(33)

대부분의 샐러리맨은 내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상상을 한 번 이상은 해봤을 것이다. 급여생활자의 입장에서 보면 회사에 기여하고 노동을 한 것에 비하면 급여는 늘 적다고 느끼기 마련이다. 물론 나도 그랬다.

회사를 직접 운영해보면 월급 300만원을 지급하기 위해 회사의 고정운영비와 영업이익률 등을 따져 얼마만큼의 매출을 기여해야 가능한 금액인지가 금방 나온다. 결코 쉬운 숫자는 아니다.

룰을 정하는 사람을 ‘갑’, 정해진 대로 따르는 사람을 ‘을’이라 한다면, 당연히 주도권을 가진 사장이 ‘갑’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을’에 가까운 사람이 사장이다.

연말이 다가오면 사장들은 회사의 성적표를 받아 쥔다. 결과가 좋든 실망스럽든 고민거리가 시작되는 시기다.[사진 pxhere]

연말이 다가오면 사장들은 회사의 성적표를 받아 쥔다. 결과가 좋든 실망스럽든 고민거리가 시작되는 시기다.[사진 pxhere]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존심을 어렵지 않게 버린다. 어쩌면 ‘을’이라 이야기되는 직원의 눈치를 더 많이 살펴야 하니 ‘을’보다 못한 ‘병’일 수도 있겠다.

회사의 비전을 바라보며 나의 노동을 제공하고 있는데 정작 회사의 얼굴마담이라는 사장이 못나 보일 때가 있다. 이래 가지고 우리 회사가 성장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내가 노력하면 할수록 능력 없는 사장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 같아 억울할 수도 있겠다. 나보다 덜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 주연을 위한 조연 노릇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세상을 꼭 실력이나 능력만으로 사는 건 아니어서 능력치가 별로 없는 사람도 사장 자리에 오르기도 한다. 사장도 사람이란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샐러리맨 생활하다가, 내 사업 한번 해봐야지 하는 똑같은 행복한 상상을 실천으로 옮긴 그나마 더 용기 있는 사람일 뿐이다. 그러니 더도 덜도 말고 그냥 좀 더 앞서서 풍파를 마주하는 안쓰러운 동료로 봐주면 좋겠다.

물론 사업이 잘되면 스포트라이트도 한껏 받고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겠다만, 잘 되지 않는다면 온갖 질책과 비난, 그리고 평생 갚아나가야 할 물질적·심적 빚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존재다.

연말이 다가온다. 사장은 성적표를 손에 받아 쥐게 된다. 성적 결과가 좋든, 실망스럽든 고민거리가 시작되는 시기다. 연봉 인상을 기대하는 입장에선 이맘때쯤이면 사장이 늘 인색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사장은 직원들 연봉 인상을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회로를 돌리며 내년 사업계획서를 희망차게 작성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게끔 누구보다도 노력할 것이다.

‘을’이면서 ‘갑’처럼 보이고, 엄청난 초능력자도 아니면서 ‘해결사’ 역할을 해야 하는, 이 세상 사장 모두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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