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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창업가는 돈 없어도 배짱 있어야…시건방짐은 곤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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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이태호 대표의 직장 우물 벗어나기(30)

최근 한 업체 대표와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기분이 매우 언짢았던 기억이 있다. 미팅하는 시종일관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말이 맞다, 내가 해봐서 안다. 내가 어떻게 지금까지 안 망하고 살아있겠냐’는 업체 대표의 태도 때문이다.

물론 그도 사업 초기에는 그렇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조그만 사업체라도 운영 기간이 길어지면, 사업 초기 불분명해 보이던 창업가의 철학과 신념이 뚜렷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다 자기중심적 사고와 자존감이 바깥으로 배출되는 시기가 온다. 혹여 단기간 내 입지라도 생기기 시작한다면, 자존감을 넘어 일종의 ‘건방짐’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신념과 철학에 다소 맞지 않는 미팅의 요청에 적극적이지 않게 된다. 설상 미팅이 성사되더라도 자기 생각대로 이야기만 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상대 업체에서는 나와 똑같이 언짢았던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이처럼 창업가에게 ‘해봐서 안다’라는 말은 매우 위험하다. 먼저 상대방은 못 해봤으니 모른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못 한 것인지 안 한 것이지는 두고 볼 일이다. 두 번째, 해본 거와 아는 거는 또 다른 차원이다. 해봤다고 해서 무조건 아는 건 아니다. 나 역시 4년째 같은 일을 해오고 있지만 아직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사실상 더 많다. 마지막으로 과거에 해본 거와 앞으로 하는 건 다르다. 실행에는 여러 요소가 얽혀있기에 과거에 해본 경험으로 앞으로 해야 할 것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섣부를 수도, 완전 다른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창업가에게 ‘해봐서 안다’라는 말은 매우 위험하다. 못 한 것인지 안 한 것이지는 두고 볼 일이고, 해본 거와 아는 거는 또 다른 차원이다. [사진 pixabay]

창업가에게 ‘해봐서 안다’라는 말은 매우 위험하다. 못 한 것인지 안 한 것이지는 두고 볼 일이고, 해본 거와 아는 거는 또 다른 차원이다. [사진 pixabay]

물론 창업가에게 ‘배짱과 고집’ 역시 무척 중요한 요소다. 창업이 일종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인데, 자본력은 없을지 몰라도 창업가가 배짱조차 없다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창업가는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고집과 배짱을 키운다. 그래서 ‘내가 해봐서 안다’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경영 도서에서는 창업가는 안 되는 것을 안 된다고 말해서도, 생각해서도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오히려 무딘 대표보다 고집이 센 대표가 회사를 더 성공시킬 확률이 높다는 조사결과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 역시 4년 차가 넘어오면서 알게 모르게 나만의 고집이 생겼고, 사업 초기에 가지고 있었던 겸손보다는 ‘내가 해봐서 안다’이라는 이유로 누군가와 미팅 때 똑같은 무례함을 안겼을지도 모르겠다.

사업가는 한없이 겸손하고 끊임없이 부족한 점을 개선하려고 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더 맞는 것으로 보여도 ‘모른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렇기에 ‘무’에서 ‘유’를 창조해나가는 창업가에게 필요한 건 ‘내가 해봐서 안다’는자신감보다는 ‘내가 안 해봐서 모른다’라는 겸손함이 더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

올댓메이커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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