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 영화처럼 실리콘으로 만든 인조 손가락 지문 등을 이용해 남의 땅을 판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가짜 토지주를 내세우고 신분증을 위조하는 등 치밀함을 보였지만, 실제 땅 주인에게 발송된 법원 등기 때문에 일망타진됐다.
"사정이 급해서 싸게 판다"며 타인의 제주 땅 판매
경기 용인동부경찰서는 사기와 공문서·사문서 위조 등 혐의로 A(60)씨 등 5명을 구속하고, B씨(50대 중반) 등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7일 밝혔다.
A씨 등은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용인시에 사는 땅 주인(74)의 신분증 사본을 도용해 그의 제주도 땅 1만6500㎡를 피해자(50대 초반)에게 판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피해자에게 “70억원이 넘는 땅을 사정이 급해서 급매로 내놓는다”며 15억원에 팔기로 했다. 지난 3월 계약금으로 5억원을 받았다. 하지만 잔금을 받기 전인 지난 4월 초 법원에서 땅 주인에게 “제주도 땅에 근저당이 설정됐다”는 내용의 등기를 보내면서 범행이 발각됐다.
실리콘 지문·신분증 위조·대역까지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지난해 말 우연히 입수한 땅 주인의 신분증 사본을 이용해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땅 주인은 다른 땅을 팔기 위해 부동산에 신분증 사본 등을 넘겼는데 이를 일당 중 한 명이 확보했다고 한다.
범행 수법은 첩보 영화를 떠올릴 정도로 치밀했다. A씨 등은 땅 주인의 신분증 사본에 있는 지문을 범행에 이용하기 위해 실리콘 전문가인 B씨를 끌어들였다. B씨는 실리콘으로 땅 주인의 오른손 엄지손가락 지문을 본떴다.
이후 가짜 토지주 역할을 맡은 공범(구속)이 실리콘 지문을 손가락에 부착하는 방식으로 주민센터에서 땅 주인의 인감증명서 등을 발급받았다. 가짜 토지주의 사진이 들어간 신분증도 만들어 피해자와 땅 매매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피해자에게 계약금을 받은 뒤 현금을 쌓아놓고 기념사진까지 찍었다고 한다.
A씨 등은 범행 전·후 대포폰과 공중전화 등을 이용해 연락하는 등 은밀하게 행동했지만, 경찰의 추적을 피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이 범죄 수익 대부분을 다음 범행을 설계하는 데 써버리면서 경찰은 현금 520만원만 확보해 압수 조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A씨 일당이 대부분 동종 전과가 있어 고도의 위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것으로 조사돼 다른 범행이 더 있는지 조사하고 있다”며 “부동산 거래를 할 때 반드시 상대방의 신분을 확인하는 등 각별하게 주의해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