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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동상 제막식엔 600명, 이건희 땐 6명…무슨 사연이길래 [삼성연구]

중앙일보

입력

삼성그룹을 창업한 고 이병철 창업주의 동상이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뒤편 공원에 세워져 있다. 오른쪽 건물은 신라호텔. 김상선 기자

삼성그룹을 창업한 고 이병철 창업주의 동상이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뒤편 공원에 세워져 있다. 오른쪽 건물은 신라호텔. 김상선 기자

오는 19일은 삼성그룹을 창업한 고(故) 호암 이병철(1910~1987) 회장의 34주기다. 당초 이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주재로 오너 일가와 주요 계열사 사장단이 참석한 가운데 경기도 용인의 선영에서 추도식이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14일 해외 출장에 나서면서 변수가 생겼다.

연수원 창조관에 이건희 흉상 설치

지난 8월 가석방으로 풀려난 이 부회장이 참석하는 행사라 이병철 창업주 추모식은 일찌감치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또 한 가지 재계의 관심거리는 ‘이건희 흉상’이었다. 삼성은 지난달 25일 고 이건희(1942~2020) 회장의 별세 1주기에 맞춰 용인에 있는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이건희 회장 흉상 제막식을 했다고 밝혔다. 제막식에는 이 부회장과 삼성 사장단 5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딱 이것뿐이다. 삼성 측은 이건희 회장 흉상의 사진이나 작가, 참석한 사장단 명단을 지금까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동상 설치 장소와 관련해 “생전에 ‘인재제일’ 철학을 바탕으로 창의적 핵심 인재를 양성하는데 힘써온 이건희 회장을 추모하기 위해서”라고만 밝히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지침과 삼성물산 합병 관련 재판을 둘러싼 사회적 이목 등이 고려돼 행사를 최소화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 뿐이다.

코로나19, 재판 등으로 행사 최소화한 듯

이는 이병철 회장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고 이병철 창업주의 별세 1주기인 1988년 11월 19일 용인 선영에선 이병철 창업주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창업주 동상 제막식에는 이건희 회장과 삼성그룹 임원, 재계 인사 등 600여 명이 참석했다.

호암 이병철 회장의 1주기 추도식 및 동상 제막식이 경기도 용인의 선영에서 열렸다. 이건희 회장 등 참석자들이 동상을 제막하고 있다. [중앙포토]

호암 이병철 회장의 1주기 추도식 및 동상 제막식이 경기도 용인의 선영에서 열렸다. 이건희 회장 등 참석자들이 동상을 제막하고 있다. [중앙포토]

동상의 규모도 컸다. 이 창업주의 동상은 전신 좌상(坐像) 형태로 설치됐다. 이 창업주가 안경 쓴 얼굴로 양복을 입고 소파에 앉아있는 모습인데 높이 2m로 돌로 쌓은 단 위에 설치돼 지상에서 우러러봐야 한다.

이 동상은 고 김영중 조각가의 작품이다. 그는 세종문화회관 외벽 부조인 ‘비천상’, 독립기념관 내 ‘강인한 한국인’ 조형물, 서울 어린이대공원의 소파 방정환상(像) 등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호암 동상은 서울·경기·대구에 세워져

이밖에도 이병철 창업주의 동상은 서울·경기·대구 등지에 세워져 있다.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동상이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뒷편 공원에 세워져 있다. 김상선 기자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동상이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뒷편 공원에 세워져 있다. 김상선 기자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뒷편 공원에 세워진 이병철 회장 동상. 김상선 기자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뒷편 공원에 세워진 이병철 회장 동상. 김상선 기자

대구상공회의소가 제작해 대구시 오페라하우스 광장에 설치된 고 이병철 회장 동상. 현재는 삼성창조캠퍼스로 이전했다. [사진 대구상의]

대구상공회의소가 제작해 대구시 오페라하우스 광장에 설치된 고 이병철 회장 동상. 현재는 삼성창조캠퍼스로 이전했다. [사진 대구상의]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 야외조각공원에는 이 창업주의 전신 입상(立像)이 있다. 동상의 좌대 뒤쪽 안내판에는 ‘호암 이병철 회장은… 호텔이 문화의 장임을 느끼고 호텔신라를 건립하여 한국의 얼굴이 되게 하였다… 회장의 무한탐구 정신을 이어받아 가고자 호텔신라 가족 일동은 여기 모신다’고 새겨져 있다.

글을 쓴 날짜가 1990년 5월 9일인 것으로 봐 설치 연도를 짐작할 수 있지만, 작품을 만든 작가는 알려지지 않았다. 신라호텔 측은 “오래 전의 일이라 정보를 알기 어렵다”고 답했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의 경주이씨 중앙화수회(종친회) 회관 입구에서도 이병철 창업주의 동상을 만날 수 있다. 상반신만 표현한 흉상이다. 이 창업주는 1968년부터 87년까지 경주이씨 중앙화수회 총재를 지냈다. 역대 총재 중 재임 기간이 가장 길었다.

경주이씨 화수회 관계자는 “이병철 총재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 1997년 8월 모금을 통한 흉상 제작에 나섰다”며 “이듬해인 1998년 9월 10일 화수회관 준공에 맞춰 흉상 제막식을 했다”고 말했다.

“만지면 부자 된다” 소문에 인파 몰리기도

2010년에는 대구상공회의소가 이병철 동상을 세웠다. 이 창업주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사업으로, 대구는 삼성의 모태가 된 곳이다. 이병철 창업주는 28세였던 1938년 대구 중구 인교동에 직원 40명 규모의 ‘삼성상회’를 열었다. 청과물·건어물 등을 취급했으며 별이 3개 들어간 ‘별표국수’도 만들어 팔았다.

이병철 동상은 당초 대구시 북구 칠성동 오페라하우스 광장에 세워졌지만 이후 북구 침산동 삼성창조캠퍼스로 이전했다. 이곳은 이 창업주가 1954년 설립한 제일모직 공장 터다. 삼성창조캠퍼스는 삼성이 900억원을 들여 옛 제일모직 자리에 조성한 벤처·스타트업 육성 단지다. 이곳 삼성존에는 1997년 철거된 삼성상회 건물이 복원돼 있다.

이병철 동상은 금세 관광 코스로 유명해졌다. “(동상을) 만지면 부자가 된다”는 소문이 나면서 대구 시민은 물론 다른 지역에서도 동상을 보려는 인파가 몰리기도 했다.

이병철 창업주 동상.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병철 창업주 동상.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동상을 만든 김규룡 작가(계명대 명예교수)는 2010년 언론 인터뷰에서 “동상은 얼굴 모양만 닮았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인품과 덕, 혼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며 “(이병철 회장 관련한) 사진 자료가 많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얼굴 상만 30여 번을 부수고 새로 만들기를 반복했다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서울 중구 쌍림동 CJ제일제당 본사 로비에는 CJ그룹이 2011년 설치한 이병철 창업주 홀로그램 흉상을 볼 수 있다. 미디어 아티스트 문경원·전준호 작가의 작품으로 CJ 측은 “고인의 선도적 이미지와 미래지향적 비전, 인본주의에 대한 생각을 형상화하기 위해 홀로그램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이 창업주의 흉상은 삼성 영빈관인 서울 용산구 한남동 승지원에도 있다고 알려졌다.

“평생 200명 동상…이건희 가장 어려워”   

이건회 회장 동상은 현재까지 흉상만 두 개가 제작, 설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달 삼성인력개발원 창조관에 제막된 흉상과 경기도 수원의 삼성전자 정보통신연구소에 설치된 흉상이다.

삼성전자 정보통신연구소에 전시 중인 이건희 흉상은 2002년 만들어졌다. 당시 삼성 측은 “이 회장이 기술 개발을 독려하고 연구원의 사기 앙양에 남다른 관심을 표해 연구소 측이 연구개발의 상징물로 제막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소는 현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R3 건물로 주로 네트워크사업부가 사용한다. 흉상은 지금도 로비에 전시돼 있다.

서울 강북구 이영학 조각가 작업실에 놓여 있는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두상. 김성룡 기자

서울 강북구 이영학 조각가 작업실에 놓여 있는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두상. 김성룡 기자

이 흉상을 제작한 이영학(73) 조각가는 지난 12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당시 삼성의 의뢰로 이건희 회장 두상과 흉상 3~4개를 만들었다”며 “이제껏 200명 넘는 유명인의 동상을 만들었지만 이건희 회장이 가장 만들기 어려운 얼굴이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이 회장의 모습을 담으려고 사진도 보고 실물도 봤습니다. 이미지 면에서 아주 면밀한 부분이 있어 굉장히 까다로웠어요. 단순히 눈·코·입 얘기가 아니에요. 그분의 성품이라든지 여러 입장 등을 넉넉하게 끌어내야 하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과연 이분을 면밀하게 표현할 수 있는 누가 있을까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이병철·이건희 동상 하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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