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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민주당, 동맹국 미국 아닌 중국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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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존 오소프 미국 상원의원을 접견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존 오소프 미국 상원의원을 접견하고 있다. [뉴스1]

“일본에 한국이 합병된 이유는 미국이 가쓰라-태프트 협약을 통해서 승인했기 때문이고 결국 마지막에 분단도 일본이 분할된 게 아닌 전쟁 피해국인 한반도가 분할되면서 (6·25)전쟁의 원인이 됐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이다.”

이재명 후보, 미 상원의원 일행에 # “가쓰라-태프트 협약 탓 한일합병” # 시대착오적 운동권적 역사관 우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지난 12일 존 오소프 미국 상원의원 일행에게 공개 석상에서 한 말이다. 이 후보는 이어 “상원의원이 이런 문제까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전해 들어 대단하다는 생각으로 말한 것”이라며 소리 내 웃었다.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기도 했다.

정작 미국 측 반응은 싸늘했다. 오소프 상원의원이 정색하며 전날 전쟁기념관에서 유엔군과 미군 전사자와 참전용사들에게 헌화했다고 말했다. 당시 분위기를 잘 아는 인사는 “1950년이 아닌 1905년(가쓰라-태프트 협약)을 얘기한 이유는 뭐냐고 대단히 어이없어 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럴 만했다. 이 후보가 ‘객관적 사실’이라고 했지만, 역사적 맥락과 동떨어진 단순·과장·일방적 주장이어서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러일전쟁 중이던 1905년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미 육군 장관이 방일해 가쓰라 다로 총리를 만나 나눈 대화를 미 당국에 보고한 것이다.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확인한다. 한국은 일본이 지배할 것을 미국이 승인한다”는 게 골자라지만 태프트는 “개인 의견”이라고 했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동의했다곤 하나 더 진행되진 않았다. 당시 루스벨트는 일본보단 러시아의 만주·한국 진출이 미국의 이익에 더 반한다고 봤다. 하지만 일본의 손쉬운 승리 뒤엔 곧 일본을 경계했다. 한국에 대한 인식은 냉정했다. “한국은 절대적으로 일본의 것이다. (한·일 간) 조약에 한국의 독립이 명시돼 있지만 한국은 조약을 강제할 힘이 없다. 한국인들 스스로 못 하는 것을 다른 나라가 해주리라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헨리 키신저의『외교』)

실제 그랬다. “청나라와 조선의 주종 관계를 일본과 조선의 주종 관계로 바꾸려는 일본의 의도가 크게 작용하였다…1910년 8월 29일 경술년 국치일은 법적인 요식행위일 뿐, 훨씬 전부터 우리는 국치의 세월을 견디는 슬픈 백성”(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수교국이라지만 왜 미국에 안 지켜줬냐고 이제 와 탓하긴 면구하다.

그런 논리라면 영국을 원망해야 한다. 일본의 부상에 더 중요했던 건 세계 최강이었던 영국과의 1902년 영일동맹이었기 때문이다. 과문한 탓인지 영국 정치인들에게 “영일동맹 탓에 합병됐다”고 목소리 높인 걸 들어본 일이 없다.

이 후보의 ‘미국 탓=분단=6·25전쟁’도 잘못이다. 한국전쟁의 직접적 책임은 “미군이 참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은 김일성·스탈린·모택동의 무지”(이홍구 전 국무총리)에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왼쪽두번째)가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를 방문한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와 환담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왼쪽두번째)가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를 방문한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와 환담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런 대미(對美) 인식과 태도는 중국에 대한 저자세와 확연히 구분된다. 한국전까지 가지 않더라도 요소수 등 중국의 금수(禁輸) 조치로 빈번하게 고통받곤 한다. 그런데도 이 후보는 전날 부국장급인 싱하이밍 대사를 오소프 상원의원급으로 예우했을 뿐 아니라, “중국의 수출 물량의 비율이 매우 낮아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주시면 혼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요청했다. 이어 “저희가 중국에 수입을 100% 가까이 의존하는 품목이 상당히 많아 앞으로 문제가 될 여지가 있다”며 “한·중 간 경제적 협력·의존 관계를 계속 심화·확대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미리 대비해 두는 게 좋겠다”고 했다. 중국에 도대체 뭘 대비해야 한다고 한 건가.

그러니 묻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정부 이래 한·미 간 긴장을 낳곤 하던 운동권적, 특히 NL(민족해방)적 역사관을 이 후보도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않고서야 사실상 외교 데뷔 무대에서 미국이 아닌 중국이 동맹이라고 오해하게끔 행동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저 반미 표심에 기대려는 선거 전략인가. 그 어떤 것이든 대단히 시대착오적이다.

고정애 논설위원

고정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