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교육 해결 없이 수도권 집값 못 잡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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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 건설이나 분양가 인하는 단편적이고 미봉적인 대책에 불과하다. 수도권 집값 문제는 교육 문제.지역균형 문제와 함께 봐야 한다. 이를 묶어서 해결하는 '사회종합개혁'이 필요하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가 말문을 열었다. 한은 총재직에서 물러난 뒤 모든 인터뷰를 거절해 온 그는 부동산 문제만을 다루는 조건으로 8일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최근의 집값 급등이 못내 안타까운 듯 몇 번이나 "이대로는 안 된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1988~89년 청와대 경제수석과 건설부 장관으로서 분당.일산 등 5대 신도시 건설을 주도했다.

-정부 대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울과 수도권 집값이 급등하고 있다.

"현재 서울의 주택 실질 보급률은 106%다. 집이 부족한 시대는 지났다. 5대 신도시를 추진하던 80년대 후반엔 56%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집값이 급등하는 것은 외부 가수요 때문이다. 일자리를 찾아 몰리는 데다 지방에 직장이 있는데도 가족과 집은 서울에 남겨두거나 지방에 살면서 자녀 교육 때문에 서울에 집을 갖고 있다. 소득과 교육의 소외 때문이다. 이런 외부 가수요 차단이 근본대책이 돼야 한다. 서울 주민이 더 나은 집으로 옮기려는 대체수요는 강북 등 열악한 지역의 대단위 공영재개발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외부 가수요를 차단하려면.

"지방에서 법인세.부가가치세 등 모든 세금을 30~50% 인하해 주는 '이원적 세율'을 도입하자. 그러면 똑같이 공장을 돌려도 지방이 유리해진다. 지방 신규 투자에 대해선 세금을 10년간 면제해 주고, 경제.산업정책을 지방 중심으로 전환하면 된다. 대신 현재 수도권에 공장을 못 짓게 하는 규제는 모두 풀어야 한다. 또 내신이 입시에 미치는 영향력(실질반영률)이 실제로 50% 이상 되도록 하자. 현재 각 대학이 50%로 유지하겠다는 것은 명목반영률이어서, 실제로 내신이 당락에 미치는 정도는 6% 정도에 불과하다. 대신 나머지는 완전히 대학 자율에 맡겨라. 서울은 단일학군추첨제로 가자. 안 되면 강남만이라도 공동학군제로 바꾸자."

-신도시 건설은 효과가 없나.

"당장 공급증대 효과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부 가수요는 그대로 둔 채 분당 같은 신도시를 일년에 한 개씩 짓는다면 30~50년 뒤엔 나라가 어찌 되겠나. 5대 신도시의 약발도 6~7년밖에 못 갔다. 외부 가수요에 대한 대책 없이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실행하기 쉽지 않은 일인데.

"부동산은 교육과 지역균형 문제와 얽혀 있다. 서울 집값만 따로 떼내 해결하려고 해봤자 안 된다. 셋을 한데 묶어 해결하려는 사회종합개혁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한 정치권의 합의와 협력이 필요하다."

박 전 총재는 정부의 부동산보유세 강화에 대해 "역사적 의미가 큰 조치"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분양가를 끌어내리는 것은 "입주자가 분양가와 시가의 차액을 가져가면 투기만 조장될 뿐"이라며 강하게 반대했다.

그는 금리에 대해선 끝내 함구했다. 다만 "금리는 부동산 외에도 고려해야 할 사안이 많기 때문에 한은이 잘 알아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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