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염전노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장주영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장주영 내셔널팀 기자

장주영 내셔널팀 기자

2014년 1월, 세상을 경악시킨 ‘염전노예’ 사건이 터졌다. 전남 신안군의 한 염전에서 노예 같은 생활을 하던 장애인 2명이 경찰에 구출된 것이다. 이들은 ‘큰돈을 벌게해 주겠다’는 직업 소개업자에게 속아 지옥을 경험했다. 하루 5시간도 못 자면서 감시와 폭행 속에 고된 노동을 강요받았고, 돈도 받지 못했다. 피해자 중 한 명이 몰래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서울 구로경찰서가 이들을 가까스로 섬에서 구출해냈다.

신안군에는 국내 천일염의 3분의 2를 생산해내는 수백개의 염전이 있다. 이곳에서 잊을만하면 한 번씩 비슷한 사건이 터져 나온다. 2018년 5월에는 60대 사업주가 지적장애인을 부리면서 수천만원의 임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거짓 혼인신고를 했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사업주 장모(48)씨가 자신의 염전에서 일한 박모(53)씨에게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은 것도 모자라, 박씨의 신용카드 등을 부당사용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반복되는 사건에 신안군도 칼을 빼 들었다. 신안군은 지난 2일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수준의 강력한 ‘인권기본조례’를 제정한다”고 발표했다. 주민 범위를 체류자, 사업 종사자, 근로자까지 확대하는 내용이다. 또 지원금이나 보조금을 받는 사업장에서 인권침해 사건이 발생할 경우 전액 환수 조치하고, 해당 사업 참여를 금지하는 조항도 검토하고 있다.

조례 제정은 박수를 보낼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민들의 동참이다. 악덕 사업주는 이웃이 아니라, 범죄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해야 한다. 임금착취와 감금, 폭행 같은 불법행위에 눈을 감아선 안 된다. 침묵과 방관의 대가는 뼈아프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신안군의 이미지는 추락하고,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지역혐오 정서도 확산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선량한 주민까지 고스란히 피해자가 되는 셈이다.

신안군은 크고 작은 1004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천사섬의 고장’으로 불린다. 푸른 바다 위 누군가 흩뿌려놓은 듯 펼쳐진 섬들은 예술작품처럼 저마다 아름다운 매력을 뽐낸다. 2019년 4월 압해도와 암태도 사이 7.22㎞를 잇는 다리가 개통됐는데, 이름도 ‘천사대교’로 지었다. 이런 천사섬에 염전노예나 부리는 악마가 살아서야 되겠나.